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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 = 전쟁에서 휴전은 불리한 쪽의 속임수

 

 

 

 

칼럼

 

 

              전쟁에서 휴전은 불리한 쪽의 속임수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우크라~러시아 전쟁에서 중국 외교부는 입장문을 통해 두 나라가 대화를 재개하고 휴전을 모색할 것을 촉구했었다. 이 말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니아 땅은 러시아 영토로 하고, 휴전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우크라니아 대통령은 휴전을 거부했다. 이 제안을 러시아가 단번에 승낙했다는 것도 러시아에게 유익하다고 것을 알수 있다. 한국전에 참전한 중국은 북한이 전쟁에서 불리하자 휴전을 제안하여 성사시킨 장본인이다. 한국처럼 휴전을 우크라니아에 만들어 놓고 러시아가 다시 군세를 키우면 기습 공격할 속셈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휴전을 제의했지만 이스라엘은 거부했다. 한국전에서 중국이 휴전을 제의, 미국이 수락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거부하고 회담장을 떠나자 한국은 휴전 당사국에서 제외되자 휴전으로 한반도는 분단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도 휴전을 하면 한국처럼 분단되기 때문에 승리를 눈앞에 둔 전쟁이라 하마스를 궤멸시켜야 한다.

 

세계사를 보면 전쟁에서 휴전은 늘 불리한 측에서 나왔다. 오(吳)~월(越) 전쟁을 보자. 오나라 장수 손무는 일단 전쟁을 시작하면 전쟁으로 끝내야지 만일 왕이 개입하여(정치개입) 이길 수 있는 전쟁을 망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이에 대해 약속을 하지 않으면 장수로 출전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나라 왕(합려)은 손무의 의견을 받아 들였다. 전쟁에서 월나라는 불리하자 휴전을 제의했지만 오나라 왕은 휴전 제의를 거부하자 월나라는 멸망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이 하마스가 항복할 때까지 휴전하면 안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되는 이날 미국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중국의 휴전제의에 “푸틴이 환호하고 있는데 어떻게 좋은 일일 수 있겠느냐”며 “나는 중국의 계획이 이뤄질 경우 러시아 외 누군가에게 이로울 수 있는 점을 그 계획에서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중국이 우크라이나에 완전히 부당한 전쟁인 이 전쟁의 결과를 협상하겠다는 생각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휴전을 제의한 그 속셈이 궁금하다.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휴전제의는 기만전술이다. 평화협정을 맺고 미국 군대가 철수하자 북베트남 군대는 무력으로 남베트남을 공산화로 만들었다. 이것이 공산주의자의 기만적인 휴전이며 평화협정이다. 한국전쟁은 유엔군이 인천상륙 작전에 성공하여 압록강까지 북진하자 통일이 완성되는 듯 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맥아더 장군은 만주에 원폭 투하를 주장했다. 이것은 전쟁은 전쟁으로 종결한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정치(미국 의회와 대통령이 맥아더 전략을 거부)가 개입되면서 이길 수 있는 한국전쟁은 휴전이 되어 한국은 분단되고 말았다. 우크라니아도 이스라엘도 유리한 입장에서 휴전은 함정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민족간의 갈등은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유대인은 국가건설 지역을 성서에서 약속한 땅 팔레스타인으로 결정하면서 팔레스타인의 시온산은 이들의 국가건설 상징이었고, 시온산이 있는 땅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운동’을 전개하면서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시작되었다. 시오니즘에 의한 유대인의 이주가 증가하자 아랍인의 유대인 배격운동이 격화되자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민족국가를 인정한다는 ‘밸푸어선언’을 했다. 게다가 영국은 제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편에 있던 오스만제국 내의 아랍인들의 반란을 지원하면서, 아랍인에게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독립국가 독립을 약속했다.

 

1947년 10월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아랍지구 48%와 유대지구 52%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이스라엘 성립이 선언된 것이다. 그러나 시오니즘 운동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아랍민족의 독립을 반대하고 아랍주민을 추방하고 오직 유대교인만으로 나라를 세울려는 유대인들의 건국운동이라 팔레스타인 내 아랍 주민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이후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이 선포되었고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졌다. 제1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유대인은 본래 유엔 분할지역보다 50% 많은 지역을 확보하게 되었지만 분쟁이 계속되자 아랍 세계와 이스라엘은 1979년 ‘캠프데이비드 협정’이 체결되면서,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시나이반도에서 철수하지만 다른 아랍국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스라엘도 시리아로부터 빼앗아 점령하고 있던 골란고원의 반환을 거부해 갈등은 더욱 심화되면서 이스라엘을 겨냥한 팔레스타인 과격 이슬람단체들의 테러가 잇따라 감행되고 있다. 이처럼 사상과 감정이 달라 오랫동안 싸워온 두 민족이 한 지역에서 동거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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