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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 = 철학적 사색, 살아가며 생각하며

 

 

 

 

칼럼

 

 

                  철학적 사색, 살아가며 생각하며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내가 TV의 드라마를 보지 않은지는 20년이 넘었다. 즉 한국 드라마는 전연 보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수준도 낮고 장면의 경우 대부분 식탁, 거실, 자동차 안이 주류를 이루면서 대화가 너무 길어 지루한 감을 준다. 대화가 길면 박진감 없고 엑션도 없게 된다. 따라서 미국의 ‘벤허’나 ‘뿌리’와 같은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는 한국 드라마는 시시콜콜하다고 보여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내가 한국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다. 이처럼 ‘드라마’를 평가는 수준도 각자 다르듯이 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세상을 보는 안목이 각자 다르다. 그것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신(情神), 사고(思考), 사유(思惟), 견해(見解), 인식(認識), 마음(心), 얼(魂) 등은 생각과 비슷한 개념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생각, 마음, 얼의 세 낱말은 그 뜻의 관계를 면밀히 관찰해 보면 다르다. 생각은 삶의 핵심이지만 마음은 생각의 핵심이고 얼은 마음이 핵심이다. 생명의 대부분은 알에서 태어난다. 새, 물고기, 곤충들은 암컷의 뱃속에서 새끼로 자라 태어나며 식물의 알은 씨알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알처럼 둥근 모양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 지기도 한다.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은 지식, 정서, 의지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고 이 셋이 합해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은 사물에 대한 앎으로서 경험이나 스스로의 까달음에서 얻어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밝혀 놓은 것을 배워서도 알게 된다. 모든 학문이 바로 이 지식을 배우거나 연구하는 일이다. 사람은 늘 ‘내가 누구인가?’라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전전긍긍 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미치지 못함을 원망하라.” 춘추시대의 명재상 관중(管仲)의 말이다. 그러나 세계사를 보면 대부분 권력욕에 몰입하다 보면 자기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반대 세력을 무리하기 억압하거나 숙청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것이 국가를 경영하는 권력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다. 따라서 권력자는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역량이나 도량이 있어야 하며 그런 도량을 갖추자면 다방면에 많은 지식과 풍부한 사회 경험과 달빛처럼 아름다운 정서와 바다처럼 깊은 지혜를 가져야 한다. 지식은 사물에 대한 앎으로서 경험이나 스스로의 까달음에서 얻어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밝혀 놓은 것을 배워서도 알게 되지만 정서는 사물에 대한 느낌으로서 기쁨이나 슬픔이나 아름다움이나 추함이나 부끄러움이나 근심이나 노여움 등 감정의 바탕을 말한다. 신념이나 끈기도 의지에서 나온 결과이며, 의지가 강하면 생각이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이 머리(頭)라고 하면 정서는 가슴(胸)이고 의지는 팔다리(手足)이다. 頭, 胸, 手足 셋이 조화를 이룬 생각을 하게 되면 그 권력자는 선정을 베풀게 된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받아야 들려야 하는 숙명적인 희생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인생의 체험은 단순하지 않으며, 늘 변화하고 바뀌면서 일생중의 하루 하루는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며, 사물을 판단하는 자신의 결정 방식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방법으로 삶이란 형태로 접근해 온다. 혹여 인생을 단 하나의 체험이라고 해석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대부분 행복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은 자기의 인생을 항상 뒤돌아보며 평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라는 것은 일련의 목적지의 연속, 바꿔 말하면 여러 가지 사건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출생∼학생∼성적∼졸업∼취업∼결혼∼등과 같은 사건은 모두 내 인생의 목적지에 가는 일련의 과정이지 목적은 아니다. 내가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한 역(驛)에서 또 다른 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나의 인생 전체는 연속되는 여행이며, 그 순간 순간은 내가 체험하기 위해 있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인생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는 수많은 여러 단계들을 한 계단씩 올라가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오른 계단에서 가장 힘들고 슬펐던 것은 절망의 늪에 빠졌을 때였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다음 계단으로 오르는 힘을 충전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획득한 성공은 나에게 인생이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인생은 한 단계 한 단계마다 오를 때 한가지 밖에 즐길 수 없는 순간의 집합일 뿐이다. 나의 모습이 어떻게 성장하는 가를 살피는 결정적인 순간은 일이 잘 진행되고 있을 때 보다 오히려 역경과 대치하고 있을 때이다. 사람은 인내라는 무기를 갖고 있다. 이 무기 앞에서는 어떤 운명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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