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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權禹相) 칼럼 = 역사 왜곡 백제 지명 너무 많다

 

 

칼럼

 

 

    역사 왜곡 백제 지명 너무 많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 백제 지명에 왜곡된 이름이 너무 많다. 이는 삼한통일 이후 임의대로 개명했기 때문이다. 사록에 따르면 연산은 백제때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인데 신라때 황산(黃山)으로 고쳤고, 고려초기에 연산현으로 고쳤다. 이성(尼城)은 백제때 열야산군(熱也山郡)인데, 신라때 이산(尼山)으로 고쳤다. 태종때 석성(石城)과 합쳐서 이산성이라 일컫다가 다시 나누었다. 노산(魯山)은 노성(魯城)이라고도 한다. 부여는 백제때 소부리군(所夫里郡)인데, 사비(泗沘)라고도 한다. 성왕이 이곳에 와서 도읍하고 이름을 남부여라 하는데, 신라때 부여군으로 고쳤다. 반월(半月)은 여주(餘州)라고도 한다. 석성(石城)은 백제 때의 진악산현(珍惡山縣)인데, 신라때 석산(石山)으로 고쳤고, 고려 초기에 석성으로 고쳤다.

 

 

태종(1414)때 이산(尼山)과 합쳐서 이성(尼城)을 만들었더니, 후에 고다진(古多津)이 왕래하는 요충지라 해서 다시 나누어서 현을 만들었다. 비인(庇仁)에 성이 있다. 백제때의 비중현(比衆縣)이니, 신라때 비인으로 고쳤다. 남포(藍浦에) 성이 있다. 백제때의 사포현(寺浦縣)이니, 신라때 남포로 고쳤고 공양왕이 진(鎭)을 두었는데, 세조가 진을 없애고 현을 두었다. 마산(馬山)이라고도 한다. 결성(結城)에 성이 있다. 백제때 결기현(結己縣)이니, 신라때 결성(潔城)으로 고쳤고, 고려 때 또 결성으로 고쳤다. 보령(保寧)에 성이 있다. 백제때 신촌현(新村縣)이니, 사촌(沙村)이라고도 한다. 신라때 신읍(新邑)으로 고쳤고, 고려때 보령으로 고쳤으며, 효종(1652)때 부로 승격시켰다가 도로 강등시켰다.

 

 

여미현(餘美縣)은 백제때의 여촌현(餘村縣)이니, 신라때 여읍(餘邑)으로 고쳤다. 태종때 두 현을 합쳐서 해미를 만들었고 여미고현(餘美古縣)이라고도 한다. 당진은 백제때 벌수지현(伐首只縣)이니, 부지나(夫只那)라고도 한다. 신라때 당진으로 고쳤다. 신창(新昌)은 백제때의 굴직현(屈直縣)이니, 신라때 기량(祈梁)으로 고쳤고, 고려 초기에 신창으로 고쳤으며, 공양왕이 장포(獐浦)에 성을 쌓고, 이웃 주ㆍ현의 조세를 거두어 비로소 만호(萬戶) 겸 감무(監務)를 두었다. 온창(溫昌)이라고도 한다. 예산은 백제때 오산현(烏山縣)이니, 신라 때 고산(孤山)으로 고쳤고, 고려 태조가 예산으로 고쳤다. 전의(全義)는 백제때 구지현(仇知縣)이니, 신라때 금지(金池) 혹은 금지(金地)라고도 한다.

 

 

고려때 전의(全義)로 고쳐서 청주에 예속시켰다. 태조때 현을 두었고, 태종(1414)때 연기와 합쳐서 이름을 전기(全岐)라 하였다가 병신년에 이전 이름으로 회복했다. 연기(燕岐)는 백제때 두잉지현(豆仍只縣)이니, 신라때 연기로 고쳤고, 고려때 목주(木州)를 여기에 합쳤다. 태종(1406)때 다시 나누었으며, 1414년에 전의(全義)와 합쳤다가 얼마 안되어 이전대로 하였다. 아산은 백제때 아술현(牙述縣)이니, 신라때 음봉(陰峯)으로 고쳤는데, 음잠(陰岑)이라고도 한다. 고려초기에 인주(仁州)ㆍ아주(牙州)로 고쳤고, 태종(1413년)때 아산현(牙山縣)으로 고쳤다. 세조(1459년)때 군(郡)을 줄여서 온양(溫陽)ㆍ평택(平澤)ㆍ신창(新昌) 세 읍(邑)에 나누어 예속시켰다가 이전대로 하였다. 영인(寧仁)이라고도 한다.

 

 

능천(綾川)은 백제때 이릉부리군(尒陵夫里郡)이니, 죽수부리(竹樹夫里) 또는 인부리(仁夫里)라고도 한다. 신라때 능성(陵城)으로 고쳤고, 고려때 나주에 예속시켰다. 태종때 화순현과 합쳐서 순성(順城)이라고 일컬었으나 조금 있다가 도로 회복했다. 인조때 능주목(綾州牧)으로 승격시켰다. 연주(連珠)라고도 한다. 남원은 백제때 고룡군(古龍郡)이니, 뒤에 한 나라 대방군(帶方郡)이 되었고, 조위(曹魏) 때 남대방(南帶方)이 되었으며, 신라때 소경(小京)을 두고 남원으로 고쳤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왜 나타났을까? 그것은 백제는 한반도 뿐만 아니라 중국대륙과 일본열도에도 백제(奈良百濟)가 있었는데 중국 대륙의 지명을 그대로 한반도에 인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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