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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 명작소설 = 위대한 승리 제11회 (終)




권우상(權禹相) 명작소설 - 위대한 승리 제11()

 

 

위대한 승리

 

다음 순간 나는 올림픽 수영선수와 같은 속도로 구명대로 향해 헤엄쳐 나갔다. 구명대에 타고 표류한 것은 15년이나 되는 듯이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약 15분 정도로서 오끼나와호 소속의 해병대 헬리콥터 3대가 상공에 도착했다. 나와 안광휘 대위는 눈깜짝할 사이에 헬리콥터로 끌어 올려져 한숨 돌리고 있는 사이에 헬리콥터는 잽싸게 병원선病院船으로 향하고 있었다. 병원선에서 대통령에게라도 하는 듯한 특별한 대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함장부터 쿡크까지 모두가 인사차 나와 주었고 무엇인가 필요한 것이 없는지 마음을 써주었다. 군의관들은 대거 몰려와 우리들을 맞이했고 이상이 없는지 몸 구석구석을 진단했다. 내 등줄기는 상당히 당겼지만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고 우리는 다시 헬리콥터 편으로 코니(항공모함)로 귀함하게 되었다.

우리를 태운 헬리콥터가 CVA - 64(항공모함 코니)의 상공을 선회하자 갑판위에 많은 승조원들이 모여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서히 착함着艦하자 헬리콥터의 엔진소리보다 큰 환호성이 들려왔다. 나는 안대위와 같이 코니의 갑판위에 발을 딛는 순간 눈물이 한없이 흘러 나왔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눈물만이 줄줄 흘렀다. 옆을 보니까 안광휘 대위도 흐느껴 울고 있었다. 전쟁중에 적군敵軍의 총뿌리를 벗어나 이렇게 귀환한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큰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마음속의 갈등으로 한 잠도 이루지를 못했다. 아내의 이혼 제의에 나는 분노와 실의가 교차되는 갈등을 느꼈다. 군의관이 무슨 약을 투여했는지는 모르나 효과가 나타나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 정신이 든 것은 당직 사관이 깨워서였다. 비행장구를 반납하고 귀국하게 될 것이라고 귀뜸해 주었다. 나는 또 한번 실망에 잠겼다. 귀국이라니 당치도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또 다시 팬텀기를 몰고 소련군이든 북한군이든 싸우고 싶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공군사관학교를 지망했다. 그 꿈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아직 나에게는 그러한 용기가 있었다. 비행대 대장인 뉴만소령이 나타나 영어로 말했다.

권소령, 비행장구는 반납하게, 내일 자네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게 돼 있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국 명령을 받으면 가족을 만나게 돼 기뻐서 어쩔줄 몰랐지만 나에게는 돌아갈 가정이 없었다. 부모님 곁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상심한 상태로는 누구와도 얼굴을 맞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작전 수뇌부에 귀국 명령의 취소를 요구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그후 안 일이지만 미공군에서는 한번 실패한 전투기 조종사는 두 번 다시 전투에 내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국으로 귀국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튿날 나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한 후 공군본부에 들여 예편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아내와의 이혼 절차도 끝냈다. 나는 이제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이제부터 제로(0) 상태에서 시작해야 했다. 고향인 부산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나에게 접근해 온 사람은 박중배 씨였다. 그는 기독교에 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에게 기독교에 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박중배 씨는 바쁜 일을 제쳐두고 나를 하나님에게 인도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그의 노력에 감동했고, 결국 교회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나는 나 가까이에 하나님의 존재를 느꼈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나는 교회에 나가 침례의식을 받았고, 교회 여신도인 강민희 씨와 결혼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고전무용을 전공했고 지금은 부산에서 대학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녀는 춤을 어찌나 잘 추는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줌을 질금질금 싸게 했다. 내가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으니 대단한 행운이었다. 내가 비록 베트남 전쟁에서는 나의 애기愛機를 잃고 패했지만 강민희 씨와 결혼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은 나로서는 위대한 승리였다.

이듬해 아내(강민희)는 아들을 출산했다. 나는 하나님께 내 아들은 물론이요, 우리 자손 대에는 절대로 전쟁이라는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또한 핵을 가진 북한과 전쟁이 일어날 경우 그 위험도는 지금보다 훨씬 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그리고 북한과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위대한 권능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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