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 단편소설 = 신인배우 연재 제7회
신인배우(新人俳優)
아무래도 내 행동이 이상해 진 것을 본 어머니는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반드시 외출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나를 방안에 가두어 놓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구었다. 그리고 자살할 만난 도구는 없는지 면밀히 살폈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혼자 방안에 갇혀 있는 것이 좋았다. 사람들이 무섭고 온통 나를 해치는 사람들만 북적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바깥 세상은 온통 괴물과 유령들만 사는 것 같았다. 나는 정신이 핑 돌았다. 미칠 것 같았다. 그날 저녁 거실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시는 말을 들었다. 먼저 어머니 말이 들렸다.
“우리 성희를 어찌하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심한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아요. 이러다가는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지 걱정이네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포항에 이대로 둬서는 안될 것 같소. 외가 집이 있는 농촌에 가서 정서적으로 휴양을 하도록 해야지...”
외가 집이란 경남 양산에 있는 배내골을 말했다. 거기가 우리 외가(外家)였다.
“거기에다 전원주택을 하나 지어 당분간 성희를 거기에 가서 살도록 해야겠소.”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에 찬성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전원주택을 지어줄테니 외할머니가 사시는 농촌에 가서 당분간 혼자 살아가라고 했다. 농촌은 정신수양에도 좋다고 했다.
그해 가을, 나는 외할머니가 계시는 경남 양산 배내골에 갔다. 간단한 이사짐을 챙겨 나와 어머니를 승용차에 태우고 아버지가 손수 운전했다. 아담한 단층주택에 마당이 넓은 전원주택이었다. 외할머니가 사시는 집과는 100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있지만 외할머니는 자주 나를 찾아 오셨다. 2년전에 남편을 잃고 외할머니 혼자 사시는 일흔의 나이지만 아직도 정정하시어 원만한 농촌 일은 혼자 하셨다. 마당을 나서면 낙동강이 보인다. 그리고 집 뒤에는 빼어난 천성산 경관이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시사철 흐르는 계곡의 물이며 산속 아담한 사찰에서 들리는 독경소리는 소음과 각종 공해에 쌓인 도시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외할머니는 나에게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희야! 여기에 오니까 좋제.. 공기가 맑고 조용하고 자동차 먼지도 없고..”
“예, 여기가 참 좋아요.”
“니 애미한테 다 들었데이..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다신 하지 말거레이. 알겄제...”
“................”
“그라고 좋은 남자 있으믄 결혼 하거레이...”
“결혼은 싫어요.”
“와 안한다카노.. 그라믄 중이 될끼가?”
“중도 싫어요..”
“그라믄 뭐가 좋노?”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내가 처녀성을 읽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마 어머니는 그 얘기만은 하지 않았는 것 같았다. 모르는데 내가 먼저 말을 하기는 싫었다. 그런데 며칠후 나는 화들짝 놀랐다. 지금 내 몸 안에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있어야 할 생리가 없어졌다. 그리고 가끔 구역질 같은 것도 났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는 징후가 분명했다. 나는 포항의 어머니에게 휴대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리적 변화를 소상히 말했다. 어머니가 급히 달려 왔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산부인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나는 의사의 말에 또 한번 깜짝 놀랐다.
“임신입니다.”
어머니도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성폭행을 당해 임신이라니 나는 기가 막혔다. 그 더러운 사기꾼 강시후 씨의 씨앗을 잉태하다니 목구멍으로 구역질이 나왔다. 그날부터 나는 몸이 아파서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점점 더 괴롭기만 했다. 마치 힘센 장사가 날카로운 칼로 찌르는 것 같아 머리가 어질어질 하고 아팠다.
“엄마 몸이 아파 못견디겠어요. 정신도 어지럽고..”
나는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나는 정신이 약간 돌았다. 남이 보기엔 아마 실성해 보일 것이다. 엄마도 그걸 아는지 눈물을 손등에 적시며 내 얼굴을 물끄럼이 바라보았다. 나는 방안에 갇힌 한 마리의 새(鳥)가 되었다. 방문은 꼭꼭 잠겼고 혹시 내가 탈출을 하여 무슨 일이라도 저질까봐 창문은 차단됐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방과 연결된 화장실과 주방 뿐이었다. 방안을 서성거리던 나는 창밖을 물끄럼이 바라보았다. 마당 한 구석에 혼자 외롭게 서 있는 대추나무는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