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 단편소설 = 신인배우 연재 제6회
신인배우(新人俳優)
“신인영화배우모집 광고를 보고 왔어요.”
나의 말에 여직원은 영화배우 모집을 하는 것은 맞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집 규정과 제작할 영화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소정의 양식을 내밀면서 지원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나는 준비해 간 사진을 지원서에 붙여 제출했다. 40여 명의 다른 사람들도 신인배우 모집에 응모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지원서를 내밀고 있었다.
“접수비를 내야합니다.”
“얼맙니까?”
내가 묻자 여직원은 50만원이라고 했다. 나는 접수비를 냈다. 다른 사람도 접수비를 내고 있었다. 나와 함께 접수된 배우 지망자들은 그날만 해도 100여명이나 되었다. 지금까지 접수된 사람들을 감안하면 경쟁률이 상당히 치열해 질 것만 같았다. 심사는 1차와 2차와 3차로 나누어졌다. 1차는 면접, 2차는 대사 외우기 발성법, 3차는 카메라 테스트였다. 1차 면접날에 모인 신인배우 지망자들은 모두 300여 명이나 되었다. 지망자가 너무 많아 한꺼번에 면접과 테스트를 할 수 없고 날짜 별로 나누어서 실시했다. 나는 3일 후로 날짜가 결정되었다. 3일동안 나는 방에 들어 앉아 혼자 발성법 연습을 하면서 영화배우의 꿈을 안고 매일 방안에서 지냈다.
나는 다른 지망생과 함께 면접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 영화사 사무실로 나갔다. 1차 면접을 하고 2차로 발성법 테스트를 하고 3차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다. 카메라 테스트에는 희노애락(喜怒哀樂) 네 가지 감정을 얼굴에 표현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했다. 처음에 감독이 엑션 고우! 하고 소리치면 웃는 얼굴을 해야하고 두 번째 엑션 고우! 하면 성난 얼굴을 해야 하고 세 번째 엑션 고우! 하면 근심스런 표정을 해야 하고 네 번째 엑션 고우! 하면 즐거운 표정을 해야 한다. 무척 긴장된 속에서 카메라 앵글 테스트를 마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테스트를 받으면서 심사위원이 나에게 말했다.
“영화배우로 자질이 풍부합니다. 개성도 강하구요.”
나는 기분이 좋았다. 이제 영화배우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최종 합격자 발표는 2주일 후에 한다고 했다. 나는 최종 합격자 발표를 한다는 날에 영화사 사무실에 가보니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알고 보니 ‘신인영화배우 모집’을 한다고 지원서 접수비를 받고는 종적을 감춘 것이었다. 카메라 테스트는 일종의 위장전술이었다. 그때 서울에서 나와 많은 영화배우 지망생들은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얼추 100여 명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또 내가 사는 포항에서 당한 것이었다.
“바보 같은 가시나.. 쯔쯔쯔..”
하면서 작은 아버지는 한번 당했으면 두 번 다시 당하지 않아야 하는데 서울에서 당해놓고 또 당했다고 바보라고 했다. 작은 아버지의 말이 맞다. 나는 바보다. 하지만 나와 같은 대학의 선배가 이런 방법으로 나에게 피해를 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는 놈이 도둑놈’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이미 나는 되돌릴 수 없는 깊은 수령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심한 우울증에 결려 늘 방안에 들어 박혀 있었다. 그날도 나는 침대에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켜 욕실로 들어갔다.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욕실에 들어가 빨랫줄에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다. 이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나타났다. 내 행동이 이상한 것을 본 어머니는 소리치면 내 손에 든 빨랫줄을 잡았다.
“성희야, 이러면 안돼. 이런다고 네 울분이 풀리겠나. 엄마는 네가 괴로워 하는 마음을 잘 안다. 이러지 말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새롭게 살아갈 방법을 생각해 보자. 이젠 영화배우는 생각하지도 말아라. 네 꿈을 이루도록 해 주기 위해 아버지 몰래 나도 너에게 할 만큼 해 줬다. 돈도 많이 들었다. 서울까지 너를 보냈다. 하지만 이 나는 너에게 돈이 들어간 것을 억울해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몸을 더럽히고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이 안따깝고 너를 이렇게 만든 당국의 제도적인 허점에 울분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 말고도 없었다. 어머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영화배우가 뭐길래 네가 이토록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더 이상 영화배우라는 말은 입에 담지도 말아라.”
나는 역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용기도 없고 하기도 싫었다. 나는 갑자기 바보가 된 듯 멍청해졌다. 사람이 싫었다. 대인 기피증이랄까. 아버지도 싫었고 엄마도 싫었다. 그리고 친구도 싫었다. 대학동창이니 선배니 하는 것도 싫다. 나는 온종일 방안에만 들어박혀 밖에는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마음이 우울하고 세상이 싫었다. 모두가 도둑놈이고 강도처럼 보였다, 나처럼 당해보지 않고는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 누가 내 마음을 알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