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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 명작 단편소설 = 신인배우 연재 제5회


 

 

권우상 명작 단편소설 = 신인배우 연재 제5회

 

 

 

                                           신인배우(新人俳優)

 

 

지난해 서울의 한 여자 미인대회에서 입상한 뒤 모델 겸 연예계에 데뷔한 한채원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단역으로 잠깐 이름을 알린 후 오랜 무명의 길을 걸었다. 화보 촬영, 가수데뷔까지 끓임없는 변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대중의 인기를 사로잡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연예계에서 사라졌다.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책했던 그는 사망 한 달이 지나서야 그 아픈 사연이 알려졌다. 한채원은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운(運)이 따라주지 않았는지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박성훈 기자는 나에게 말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서울에 가서 영화배우가 될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지만 좀처럼 기회가 없어 좌절의 연속인 가운데 절박한 심정이었던 나에게는 이번 포항에서의 신인배우 모집은 나로서는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랬던 것이 사기를 당하고 만 것이었다. 나는 2년전에 서울에서 케스팅에 실패한 뒤 몇몇 사람들로부터 특정 작품에 배역을 따 줄테니 투자비를 가져오라는 제의를 받았다. 심지어 7,000∽8,000만원이란 거액을 요구받기도 했지만 신뢰성에 의문이 생겨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지만 그래도 그 별을 따는 사람이 있기에 무명 신인배우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면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신인배우들의 심리를 악용해 한 사람의 파멸로까지 몰아놓는 일이 연예계에선 종종 벌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악당들의 무서운 발톱이 지방에까지 뻗어 신인배우를 미끼로 덫을 놓고 있다는 사실은 나는 가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연예계의 실태가 이런데도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전무한 상태라는 것이 나를 더욱 화나게 했다. 사기를 칠 소지가 있으면 이를 막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이번에 포항에서의 신인배우 사기 사건은 GF연예기획사가 신인배우 모집을 하는과정에서 사업자 등록 등 아무런 하자가 없는지 포항시에서 조사라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언론에 보도되자 그제야 포항시는 GF연예기획사가 사업자 등록조차 하지 않았던 유령회사란 사실을 알았다는 것은 포항시에 세금을 납부하고 포항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울분을 참으면서 박성훈 기자와 나란히 걷다보니 어느 커피숖 앞에 왔다. 그는 나에게 좀더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커피숖에 들어가 커피나 한잔 하면서 얘기하자고 했다. 나와 그는 커피솦에 들어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서는 가수나 연기자 지망생에게 데뷔를 미끼로 벌리는 사기, 성폭력 등의 연예 매너지먼트 관련 범죄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제도적으로 헛점이 많다는 얘깁니다. 그런데도 문화 예술을 담당하고 있는 당국에서는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사기와 성폭력은 허술한 법 제도와 당국에서 눈감아 주고 있는 듯 보입니다. 더구나 전문지식이나 사회적 연륜도 없는 사람이 사무실 하나만 달랑 가지고 연예기획사를 차려 신인배우를 모집한다면서 금전적인 사기나 성폭행을 일삼은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매니저의 일은 작가나 PD를 만나서 담당 연예인이 어떤 작품을 할 것인지 고민한 뒤 이미지를 만드는 전문 영력이라 최소한 4∽5년의 경력을 거쳐 능력과 도덕성을 검증 받은 사람만 연예기획사를 등록할 수 있게 하는 매니저 제도가 마련돼야 신인배우 모집을 미끼로 한 피해가 줄 것이라고 말한 후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연예계 지원자 중 극소수만 영화배우가 되는 현실을 감안하여 차선의 길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가 말하는 차선의 길이란 뭘까? 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듣고만 있었다. 나는 흐느껴 울었다. 내가 배우가 되겠다고 날린 돈도 돈이지만 소중하게 간직하게 할 처녀의 순결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남의 사내에게 순결을 짖밟힌 여자가 무슨 얼굴로 결혼을 한단 말인가? 나는 그런 생각에 자꾸만 슬픈 마음이 회오리 바람처럼 휘몰아쳤다. 영화배우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커피숖에서 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이 일로 나는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2년전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신인배우 모집에 응모했다가 사기를 당한 적이 있었다. 신인배우모집 광고를 본 나는 을지로 4가 한 빌딩의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을 따라 12층에 있는 어느 사무실 입구에 들어섰다. 건물 입구에는 ‘신인영화배우모집’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젊은 여직원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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