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 중편소설 = 천강홍의장군 <9>
천강홍의장군
대장장이는 사람 수십 명을 더 사서 밤낮으로 뚝딱거려 징을 만들었지만 열흘 안으로 열 섬은 커녕 다섯 섬도 만들기가 어려워 대장장이는 큰 걱정이었습니다. 그때 곽재우는 하인을 시켜 광문을 열더니 넉 섬들이 큰 독에 가득찬 말 징을 꺼내어 대장간으로 보냈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언젠가 난리가 일어날 것을 대비하여 대갈(징)을 하나씩 훔쳐 미리 집에다 갖다 놓은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곽재우는 어릴 때부터 영특함을 보였습니다. 그가 30살이 되었을 때 과거시험(별시)을 준비하느라 ‘제자백가서’를 펴놓고 공부를 하고 있던 어느 날, 도적이 그의 집에 들어와 대들보 위에 숨어서 그가 잠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책을 읽으면서 말했습니다.
“도적질을 하거나 나쁜 일을 하는 사람도 처음부터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였느라. 평소에 잘 배우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엄격하게 제어하지 못해서 나쁜 일을 반복하다가 자꾸만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니라. 그래서 원래는 군자였던 사람도 도적이나 소인배가 되었다가 결국에는 대들보 위의 군자(梁上君子)까지 되고 마는 것이니라....”
곽재우의 말을 듣고 도적은 그대로 대들보에 엎드려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고 하여 대들보에서 뛰어 내려와 곽재우 앞에 납죽 엎드렸습니다.
“나으리.. 용서하시옵소서! 나으리 말씀대로 평소에 잘 배우지 않고 내 자신을 엄격하게 제어하지 못해 나쁜 짓을 반복하다가 점차 습관이 되어 도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흐느껴 울었습니다. 곽재우는 말했습니다.
“그대는 도적이 아니오. 살아가기가 구차하여 이렇게 된 것이오. 그러니 나는 그대를 당연히 용서할 것이오.”
하면서 돈 50냥을 주었습니다. 이 도적은 이돌석(李乭石)이란 사람었는데 이런 인연으로 이돌석(李乭石)은 곽재우 장군이 훗날 의병을 일으킬 때 곽재우 장군 수하에 들어가 왜군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