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 중편소설 = 천강홍의장군 <8>
천강홍의장군
그는 언제나 하는 버릇으로 징 목판을 가지고 세어 보기도 하고 만지작거리기도 했습니다. 대장장이는 무심코 곽재우의 손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징 한 개를 집더니 얼른 밑이 터진 바지밑으로 넣어 사타구니에 끼고 냉큼 일어나더니 손을 툭툭 털면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대장장이는 곽재우가 나와서 징 목판을 만질 때마다 몰래 주의깊게 곁눈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언제나 그 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괫심하게 생각했으나 만일 목사(牧使) 아들에게 나무라든지 빼앗든지 했다가는 도리어 좋지 못한 일이 있을까 해서 은근히 제지할 방법을 생각하였습니다.
곽재우는 그런 줄도 모르고 또 나왔습니다. 대장장이는 얼른 서너 개를 만들어서 다 식지도 않는 것을 목판에다 담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일부러 곽재우에게 징 훔칠 기회를 주느라고 일어서 뒷문으로 나가 오줌을 누는 척 했습니다. 그리고는 문틈으로 곽재우의 거동을 살펴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목판에서 얼른 징 하나를 집어서 슬쩍 사타구니에 끼우고 일어섰습니다. 바로 그때 덜 식은 쇠라 어찌나 뜨거운지 그만 털썩 주저 앉아서 엉덩방아를 찧더니 아무말 없이 사라졌습니다. 대장장이는 속으로 사타구니가 뜨거울텐데 어째 저렇게 태연하지 하면서 피식 웃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곽재우가 다시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복숭아를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 한 손에는 그만한 것을 또 하나 들고 있었습니다. 대장장이는 능청스럽게 말했습니다.
“도련님! 그 복숭아 나 하나 주구려.”
“나 먹을 건데.”
“도련님은 집에 많지요. 집에서 또 잡숫고 이쪽 손에 드신 건 내게 주구려.”
“그래.”
곽재우는 복숭아 하나를 대장장이에게 주었습니다. 대장장이는 숯검정이 묻은 손으로 얼른 받아서 볼 것도 없이 입에 넣고 깨물었습니다. 그러다가 펄쩍 뛰면서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에쿠 맙소사! 생똥 구린내! 퉤 퉤 퉤 퉤 ....원 이거 무슨 짓이람... 사람을 속여도 분수가 있지...”
곽재우는 그제야 말했습니다.
“니놈이 뜨거운 대갈로 나를 속이고 아가리에 똥이 안들어 갈성 싶으
냐. 네가 나한테 한 만큼 나도 갚아줘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후에 나라에 갑자기 난리가 일어났습니다. 오
랑케(여진족)가 압록강을 넘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대장간에 전령이 내렸는데 낫이나 꼭괭이 등을 만들던 모든 대장장이에게 칼과 창을 만들게 하고 말 편자에 대갈(말발굽에 박는 징)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곽재우 집 인근에 있는 대장장이에게도 열흘 안으로 말 징 열 섬을 봉납하라는 징봉령(徵奉令)이 내렸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