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 중편소설 = 천강홍의장군 <7>
천강홍의장군
온 집안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 세도 오늘은 커녕 며칠을 두고 세도 못 셀텐데 어쩌자고 어린애가 그처럼 태연스러울 수 있는지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와서 종아리 맞을 것을 생각하니 모두를 한심하기만 한데 곽재우는 막대기를 들고 전쟁놀이를 하듯 사람을 찌르는 장난만 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자 곽재우는 문득 무슨 생각이 난 것처럼 방안에 뛰어 들어 왔습니다. 아버지가 올 때가 거의 된 것입니다. 곽재는 방안에 얼빠진 사람들처럼 둘러 앉아 있는 여러 하인들에게 무우씨를 한 숟갈씩 나누어 주면서 세어 보라고 했습니다.
심심도 하거니와 곽재우가 걱정이 되어 초조하는 판이라 무슨 일꺼리라도 생긴듯이 모두들 방바닥에 무씨를 쏟아놓고 제각기 세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곽재우는 하인에게 저울을 갖고 오라고 하더니 집안의 모든 하인들을 불러 그 수를 세어 보라고 했습니다.
“3만 7천 32개요.”
그것을 모아서 저울에다 달아보니 더도 덜도 아닌 한 홉이었습니다.
“자아 이제는 다 세었단 말야. 한 홉이 그만한 수니 한 말이면 몇일까?"
그제야 모두들 가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하인이 얼른 두루마리를 펴서 썼습니다.
“무씨 한 말 총계 3백 70만 3천 2백알.”
곽재우 아버지는 호기심을 품고 아들 방에 왔습니다. 그리고는 곽재우를 불러들여 말했습니다.
“다 세었느냐?”
“예.”
“그래 몇 알이더냐?”
“저기 써 놓았사옵니다.”
써 놓은 것을 보자 할 말이 없다는 듯 곽재우 아버지는 그만 밖으로 휑하니 가버렸습니다. 곽재우 아버지는 하인에게 그 전말을 듣고는 만족한듯 부인(강씨)에게 이렇게 분부했습니다.
“오늘 저녁상은 재우와 겸상을 차리도록 하시오!”
이렇듯 어린 나이지만 어른들을 놀라게 하는 곽재우의 총명함을 알 수 있었는데 이런 총명함이 그 이듬 해에 다시 일어났습니다.
곽재우 집 인근에는 조그마한 대장간이 있었습니다. 목사(牧使)의 군사들이 상용하는 칼과 창 등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말 편자에 박는 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말 편자에 박는 징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만들어서는 땅바닥에 홱 던졌습니다. 다 식은 후에 모아서 목판에 담아 널빤지에 펴 놓은 위에 늘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곽재우는 언제나 여기 나와서 만들어 놓은 징을 만지작거리면서 놀다가 들어가곤 하였습니다. 목사의 아들이라 만지지 말라고 소리칠 수도 없고 설사 만지고 장난을 하기로 훔쳐가는 것도 아닌데 구태여 만지지 말라고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곽재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생전 처음보는 황라(黃羅) 개구멍 바지를 입고 나왔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