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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부산mbc 제2회 방송작품현상공모 단편소설 수상작 권우상 作 (제2회)

 

 

 

 

 

 

부산mbc 제2회 방송작품공모 단편소설 수상작 권우상 作 (제2회)

 

 

                                재심청구(再審請求)

 

 

재성이가 자란 곳은 충청북도 중원군 앙성면의 어느 두메산골이었다. 그 두메산골에는 오랜 옛날부터 광산(모리부뎅)이 있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두더지처럼 땅을 파먹고 사는 광부들이 대부분이었다. 워낙 산골이라 벼농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밭 농사도 비탈이 심해 제대로 경작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마을 사람들은 광부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나마 이런 산골에 광산이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재성이의 나이는 지금 마흔 다섯이다. 20여 년 전 그러니까 재성이가 나이 스물 셋이 될 때까지는 아버지를 도와 광산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재성이의 아버지는 수십 명의 광부를 거느린 덕대였다. 돈도 꽤나 잘 벌었다. 그렇게 돈을 버는 아버지가 낙반 사고로 여러 명의 사상자를 내어 보상금을 털어 넣고 알거지로 몰락해 버린 것은 재성이 나이 스물 넷이 되는 해였다.

광산 사고 때문에 홧병이 나고 반년을 병석에 누워 시름시름 앓더니 아버지는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후 재성이는 광부란 직업이 싫어졌다. 그 이유는 아버지와 같은 슬픈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생각이려니와 늘 낙반 사고라는 위험을 등에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광부라는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광산업을 도박에 비유하고 있던 재성이로서는 그게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직업도 얻어 놓지 않고 당장 그만 두면 입에 풀칠할 일이 걱정이었다. 재성이는 하는 수 없이 다른 덕대 밑에서 고용살이를 했다.

말하자면 일당쟁이 광부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평생을 두메산골 광산에서 두더지 노릇만 하면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우선 코앞에 닥친하루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광부 노릇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광산촌을 떠날 것이다. 그런 결심을 한 재성이는 광산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틈틈이 읍내 책방에 가서 사온 책을 보고 열심히 시험공부를 했다. 말하자면 5급 공무원 철도공안원 공개채용시험 준비를 했다.

재성이는 어릴 때 20리나 되는 읍내를 매일 왕복으로 두 차례를 걸어다니며 증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중학교를 같이 다니던 몇몇 친구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 친구들은 죽어도 광부 노릇은 하기 싫다면서 중학교를 졸업하던 그 이듬해 어느 큰 도시로 떠났다. 무슨 기술을 배워 도시에서 살겠다고 떠난 친구들도 이제는 제법 성장했을 것이다. 아니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기반도 잡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정부의 고위 인사들과 귀빈들이 나타나 막 착석하고 있었다.

철도청장도 눈에 띄였다. 곧 사회자의 식순 선포가 있었고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일동 기립이라고 하는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전원 일어섰다. 그리고 국기에 대한 경례에 이어 애국가 봉창이 있었다. 이어 청도청장의 수상자에 대한 격려의 말씀이 이어지는 동안 재성이는 지난 날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고향의 두메산골 광산촌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이제는 많이 성장했을 것이다. 성장하구 말구... 아니 그 보다도 더 궁금한 것은 세상을 떠난아버지가 덕대로 있었을 때의 제5 남향 갱도였다.

그 갱도에서는 지금도 모리부뎅(수연)이랑 닉켈 따위의 광석이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까.. 그 때가 바로 버럭(폐광)을 뒤져 일곱 식구의 끼니를 이어가며 살아가던 갑순이가 일반인 금지 구역인 갱도에 까지 몰래 침투해 들어와서 갱속에서 캐내어 광차로 운반해 온 광석을 훔쳐 달아나던 그 모습도 아련히 기억으로 남아 어제와 같건만 벌써 20여년 전의 일이 아닌가?

재성이는 그 날도 다른 광부들과 함께 광차를 밀고 갱도 속으로 들어 갔다. 낮과 밤을 분간할 수 없었다. 영하 20도의 바같 세계와는 완전히 격리된 칠흑같이 어두운 굴속이었다. 따뜻한 온기가 서려 훈훈하기까지 하였다. 파이프를 지나는 에어(압축공기)의 숨가픈 소리가 그칠사이 없이 어둠속으로 흩어졌다. 다이나마이트 폭음이 간헐적으로 갱도안을 진동시키고 달아난 음향뒤에는 광석에서 떨어져 나온 희뿌연 흙먼지(분진)가 머리위에 튀였다. 동발(갱목) 틈에 괴었던 물방울이 튀어 목덜미에 선뜻한 찬기가 서리다간 등골로 스쳐갔다. 주먹만한 안전등이 하이바모 앞 이마에 달라 붙었다. 한 줄기 불빛이 안개처럼 자욱한 먼지를 누벼가면 광석이 부서지는 반사광이 조각조각 윤기를 띄고 고기비늘처럼 번뜩거렸다.

소백산맥 큰 줄기를 머리에 이고 있는 헝준한 준령의 허리를 가로 질러 꿰뚫은 갱도속이었다. 간성 갱도 복판에서 바른쪽 벽을 후비고 밋밋하게 기어 올라가는 수백미터의 사갱(斜坑)을 거슬려 포인트(분기점) 지점에서 다시 옆 갱도로 갈라졌다. 파다버린 폐광구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얼마동안 꼬불꼬불 들어가면 이제 더 갈 곳이 없는 막다른 한끝 의 채광장(막장)이었다.

재정이는 잡고 있던 착암기를 검은 광맥에다 대고 힘껏 눌렀다. 고막을 찟어 내는 듯한 소음과 함께 착암기가 젖혀질 때마다 무너지는 광석 덩어리가 발목을 덮었다. 이제 한자 정도만 파고 들어가면 동발(갱목) 한 톨을 새로 세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재성이는 연속 착암기를 내리 박았다. 착암기다 꽂히는 자리마다 안전등 불빛이 따라 갔다. 불빛이 다음으로 옮겨지는 대로 착암기를 대고 널찍하게 파내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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