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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문학상 공모 수상작 / 권우상(權禹相) 명작 단편소설 = 아라홍련의 전설 <마지막회>

 

 

 

 

 

문학상 공모 수상작 / 권우상(權禹相) 명작 단편소설 = 아라홍련의 전설 <마지막회>

 

 

                                           아라홍련의 전설

 

 

그러나 그런 아랑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합장 한 손끝만을 지긋이 바라보며 좀처럼 얼굴을 들지 않았다. 아랑은 발걸음을 조금씩 늦춰 여자와 되도록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여자는 일정한 보폭으로 조심조심 탑 주위를 돌며 낮은 목소리로 불경을 외고 있었다.

아랑이 여자와 한 서너 걸음의 간격을 두었을 때였다. 탑을 돌던 여자가 불상이 모셔진 대웅전을 향해 크게 합장을 하며 허리를 굽히고는 하얀 치맛자락을 가볍게 나부끼며 사찰 마당을 벗어나고 있었다. 아랑은 도대체 저승에 간 홍련을 닮은 이 여자가 누구일까 싶어 이내 여자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대로 여자를 보내버리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찰을 나온 여자는 아랑이 뒤를 밟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런데 여자는 마을과는 반대 방향인 산길로 접어 들더니 익숙한 발걸음으로 험한 산속을 계속 올라갔다. 아랑은 이상한 마음이 들면서도 넋을 잃고 그저 여자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가 소나무숲이 울창한 언덕에 이르렀을 때 앞서 가던 여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부처님을 모시는 스님께서 무슨 일로 아녀자의 뒤를 밟으시는지요?”

아랑은 순간적으로 당황하였지만 말을 붙일 수가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 싶었다.

“낭자의 자태가 하도 아름다워 그만 이런 무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여자는 여전히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돌아가십시오. 그렇게 하시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듯 합니다.”

그러나 아랑은 여기에서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홍련을 닮은 이 여자가 어디에 사는 규수인지 그것만이라고 알고 싶었다. 아랑은 몇 걸음 앞으로 다가서 말했다.

“내가 낭자에게 무례를 법하고 있는 줄은 알고 있지만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아랑의 말에 여자는 한동안 망설이는 듯 하더니 천천히 옆에 있는 연못가로 가서 앉았다.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아름다운 자태가 영락없이 홍련이었다. 아랑도 여자의 옆에 앉았다. 가까이 본 여자의 얼굴은 한층더 아름답고 매혹적인 자태가 홍련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죽은 홍련이 살아서 나타날 리가 없을 터이고 아마도 홍련을 닮은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나 닮은 데에는 아랑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까 탑을 돌며 무엇을 그리 간절히 빌었습니까?”

아랑의 말에 여자는 수줍어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그러시는 스님께서는 밤새도록 무얼 그리 비셨는지요?”

여자의 말에 아랑은 아무 말이 없었다. 선뜻 자기가 사랑하던 홍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었다고 말하기가 거북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산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두 사람의 목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낮은 웃음소리만이 깊은 잠에 빠진 소나무숲의 달빛을 깨우고 있었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두 사람은 급격히 서로에게 빠져 들었고 곧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소나무숲 사이로 들어갔다. 새벽녘이 가까워서야 두 사람은 소나무숲에서 나와 다시 연못으로 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 여자가 입을 열었다.

“스님께서는 마음에 담아둔 여자가 있습니까?”

“출가하여 불제자가 된 사람이 마음에 둔 여자가 있다한들 뭣 하겠습니까.”

“어떤 여자이기에 스님의 마음을 이토록 잊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까?”

“내가 중이 되기전에 정혼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가 우리 아라가야를 침공하자 내가 전쟁에 나가 적을 물리치고 돌아오자 가실왕은 정혼한 내 여자의 미색에 반해 첩실로 삼을려고 했지만 내 여자는 나와 정을 못잊어 첩실이 되기를 거부하다가 왕명을 거역한 죄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정혼한 여자를 잃은 나는 그 여자를 잊지 못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의 극락왕생을 빌려고 탑을 돌았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낭자께서 나와 정혼한 여자와 어찌나 닮았는지 처음엔 무척 놀랐습니다. 이 세상이 닮은 사람도 있을 터이지만 닮아도 너무 닮았습니다.”

“그러시다면 홍련이란 여자를 기억하세요?”

“나와 정혼한 여자가 홍련입니다.”

“서방님 내가 홍련입니다.”

“옛?”

아랑은 홍련이란 말에 깜짝 놀라 여자의 손을 꽉 잡았다.

“나는 서방님과 평생을 함께 살고 싶었는데 죽게 되어 서방님 옆에 있지 못한 것이 한이 됩니다. 억울한 죽음으로 저승에 왔지만 어찌 서방님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서방님께서 내가 보고 싶거던 이 꽃을 마당에 심어 놓고 보세요. 해마다 6월이 되면 제 영혼이 꽃으로 피어 날 것입니다. 이제 날이 밝으면 나는 저승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벌써 먼동이 트고 있습니다. 서방님! 그럼 나는 떠납니다. 내 영혼은 꽃이 되어 6월이 되면 서방님을 찾아올 것입니다.”

아랑은 그 말에 여자의 손을 더욱 힘차게 잡았지만 홍련의 모습은 이미 온데 간데 없고 손에 잡힌 것은 꽃 한 송이 뿐이었다. 아랑은 봉황사로 돌아와 그 꽃을 법당 앞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 심었다. 그러자 연꽃 닮은 그 꽃은 해마다 6월이 되면 다른 연꽃과는 달리 연분홍 빛깔의 아름다운 자태를 은은하게 뽐내며 예쁜 꽃을 피웠다. 이 연꽃을 아라가야 사람들은 아랑을 사랑하다가 죽은 홍련의 넋이라고 믿었고 이 연꽃을 아랑홍련이라고 불렀는데 그 후에 아랑을 발음하기 쉬운 아라로 바뀌어 아라홍련이라고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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