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제5부 스물 일곱 번째회 (27)
천天. 지地. 인人. 명 命
“ 흥. 오징어는 어디서 나와 잡수셨나 ? ”
두 장정은 비웃으며 배비장을 마치 죄인처럼 끌고 갔다. 아직도 잠이 덜 깨 얼떨떨한 배비장은 영문도 모르고 정승댁으로 끌려 갔다. 정승댁 마당에는 사또 김인경이 꿇어 앉아 있었다. 학(鶴)처럼 몸이 비쩍 마른 정승은 사랑방의 문을 열어 젖히고 긴 장죽을 입에 문 채 추상같이 호령을 했다.
“ 그 놈을 잡아 왔느냐 ? ”
“ 예 ”
정승댁 하인이 대답했다.
“ 그 놈도 제주 목사 옆에 꿇어 앉혀라 ! ”
배비장은 사또 김인경 옆에 무릎을 꿇었다. 김인경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파랗게 질려 있었고 그 옆에 얼굴에 쭈글쭈글 주름이 낀 노파가 앉아 있었다. 이렇게 되면 배비장이 업어다 준 여자는 젊은 과부가 아니라 노파가 분명했다. 그래서 배비장과 김인경 사또가 이렇게 준엄한 정승의 문초를 받고 있었다.
이윽고 정승의 문초가 시작되었다. 정승은 자기 집 하인에게
“ 잡으러 갔을 때 그놈이 뭘 하고 있더냐 ? ”
하고 묻자
“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
하고 대답했다. 정승(政丞)은
“ 잠을 자 ? 간덩이가 제법 큰 놈이구나 ! ”
“ 예. 어찌나 곤하게 자는지 씹어 먹던 오징어 다리를 그대로 입에 물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
그러자 옆에 있던 노파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거리며
“ 오정어를 먹다니요 ? ”
정승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 그 오징어가 할망구 것인가 ? ”
“ 네. 대감님 ! 그것은 쉰네의 보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
“ 보물이라니 ? 산간 벽촌에 건어물이 귀한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 소중하단 말인가 ? ”
“ 예. 약으로 쓰던 것입니다 ”
“ 오징어를 약이라니 ? ”
계속되는 정승의 추궁에 노파는 잠시 난처한 얼굴빛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 아뢰옵기 황공하옵니다만 그 오징어로 말하면 늙은 쉰네가 약으로 쓸려고 남원장에서 한 푼을 주고 사온 것입니다 ”
“ 그래서 ? ”
“ 쉰네가 오래전부터 치질이 있어 오징어를 화롯불에 따뜻하게 구웠다가 맨 엉덩이에 깔고 않으면 치질이 가라 앉아 낫곤 했습니다. 그래서 벌써 석달 째 그걸 약으로 써 왔습니다 ”
그 말을 듣자 배비장은 갑자기 비위가 뒤틀리고 속이 뒤집어져서 얼굴이 일그러지며 구역질이 날것만 같았다. 항문에서 나오는 피고름을 빨아들여 아마 절반은 썩었을 것 같은 그 오징어를 먹었다고 생각하니 목구멍에서 똥물이라도 올라 올 것 같았다. 배비장은 속이 뒤틀려 허리를 구부리고 목을 훽웩 거리며 토하기 시작했다. 정승은 그 꼴을 보고 껄껄 웃으며 호통을 쳤다.
“ 에잇 고약한 놈 같으니라고 ! 어디 훔쳐 먹을 게 없어 소위 비장이라는 자가 늙은 할망구 엉덩이 냄새에 절은 오징어를 먹었단 말이냐 ? 에키 못난 녀석...” 잠시후 정승은 엄한 목소리로 김인경 사또에게 말했다.
“ 넌 상감의 명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牧民官)이라는 자가 아무리 계집 생각이 났기로서니 늙은 할망구에게 손을 대었단 말이냐 ? 불알을 떼어 개나 주거라 ! ”
“ ................”
사또 김인경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 입이 있으면 말을 해라. 나는 남녀가 서로 어울려 즐기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강제로 부녀자를 데려다 겁탈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해서 너는 벌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 ”
“ 대감 !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계집을 묶어 놓고 행사하였음은 옛글을 쫓아 행하였을 따름입니다 ”
“ 뭣이 ! 옛글이라고 ? 그런 글이 어느 성현의 가르침이더냐 ? ”
“ 소인이 무식해서 많은 글은 읽지 못했습니다만 역서(易書)에 남녀 관계란 결혼인(結婚姻)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결(結) 자는 묶는다는 뜻이니 묶어 놓고 행사하였을 뿐입니다 ”
그 말에 정승(政丞)은 또 한번 껄껄 웃었다.
“ 그 말이 과연 그럴 듯하구나 ”
정승은 이번에는 배비장을 준엄한 얼굴로 노려 보며 이렇게 말했다.
“ 네가 늙은 할망구를 업어다 사또께 바쳤느냐 ? ”
“ 예. 하지만 어둠속에서 급하게 젊은 과부를 업는다는 것이 그만 늙은 과부와 바뀐 것 같습니다 ”
“ 늙은 할망구가 가만히 있더냐 ? ”
“ 처음엔 가만히 있더니 갑자기 소인의 상투를 쥐어 뜯으며 앙탈을 부렸습니다 ”
“ 음. 남녀의 운우(雲雨)란 합환(合歡)인즉 서로 즐기지 않고 한 쪽만 즐기는 것은 죄가 된다. 여자가 바둥거리고 싫은 내색을 하면 여자를 풀어 주어야 마땅하거늘 싫어하는 걸 억지로 데려 갔으니 네 죄가 크다. 알겠느냐 ? ”
“ 네. 그저 죽을 목숨 대감님의 자비로운 선처만 받겠습니다 ”
배비장은 두 손은 모아 싹싹 빌면서 애걸했다. 정승(政丞)은 그런 배비장을 물끄럼이 바라 보다가 다시 엄숙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어 꾸짓었다.
“ 사또는 능히 스스로 죄 없음을 말했다. 그리고 지금 먼 길로 부임을 가는 처지이니 욕보일 수는 없는 일이다. 허나 비장(裨將)인 너는 죄가 있으니 상전을 대신하여 볼기 열 두대를 맞아야 마땅할 것이다 ”
“ 볼기를 열 두대씩이나 맞아야 합니까 ? ”
“ 열 두대가 적다면 다섯대를 더 얹어 줄까 ? ”
“ 아. 아닙니다 ”
울상을 짓는 배비장을 본 체도 하지 않고 정승(政丞)은 명령을 내렸다.
“ 여봐라 ! 저놈의 볼기를 쳐라 ! ”
그러자 하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배비장을 형틀에 붙들어 맸다.
“ 하나요. 둘이요 셋이요...”
하면서 매가 떨어질 때마다 배비장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구슬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시는 계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