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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 천. 지. 인. 명(天.地.人.命) 제1부 다섯 번째회 (5)

 

 

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제1부 다섯 번째회 (5)

 

   천. . .

 

 

 

강만수(姜萬洙)는 당나귀 고삐를 한 손에 붙들고 눈을 감았다.

상진(相眞)은 안심이 된다는 듯이 주막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 속셈을 눈치 챈 강만수가 살그머니 눈을 떠 보니, 과연 대감의 아들 상진(相眞)이 혼자 주막집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혼자 밥을 먹겠다는 속셈이구만,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당나귀 고삐를 붙들고 사방을 휘돌아보고 있으니까 마침 점잖아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여보슈 노인장

왜 그러슈?”

노인은 매우 의아스러운 눈치로 강만수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저는 평안도 사람으로 한양에 가는 도중에 그만 노자가 떨어져 할 수 없이 이 당나귀를 파는 것이니 아주 싼 값으로 사가시오

얼마에 팔겠소?”

열 냥만 주시오

열 냥이라?”

그렇소

열 냥이라면 싼값이었다. 아무리 헐값에 팔아도 스무 냥짜리는 족히 될 짐승이었다. 노인은 두말없이 돈 열 냥을 선뜻 강만수(姜萬洙)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런데 노인장, 이 당나귀 고삐를 한 뼘 만큼만 잘라 주시오

그건 무엇에 쓰시려우?”

팔기가 아까워 그럽니다

노인이 보아하니 과연 애석해 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고삐 쯤이야 짧아도 상관이 없지를 않는가. 그까짓 고삐는 새것으로 바꾸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노인은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어 당나귀 고삐를 한 뼘 정도 잘라서 강만수에게 주고는 당나귀를 끌고 어디론가 바삐 가버렸다.

강만수(姜萬洙)가 돈 열 냥을 허리춤에 간직하고는 한 뼘 정도 되는 당나귀 고삐를 손에 쥐고 눈을 감고 태연히 서 있었다. 그러자 대감 아들 상진(相眞)이 얼굴이 빨갛게 된 채 주막집을 나와 이쪽을 향해 급히 걸어오는 것이었다.

아니 여보게 당나귀는?”

여기 있습니다

강만수는 눈을 감은 채 고삐 쥔 손을 내밀었다.

여기 있다니 당나귀가 없단 말이야

여기 있지 않습니까?”

강만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태연스럽게 고삐만을 쥔 손을 상진(相眞)의 코밑까지 내밀었다.눈을 뜨고 똑똑히 봐!”

상진(相眞)은 화가 난듯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눈을 뜬 강만수는 짐짓 놀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기랄, 어떤 못된 놈이 고삐만 자르고 당나귀를 훔쳐 갔군요. 도련님이 공연히 눈을 감고 있으라고 해서 이 꼴을 당했습니다. 내 참...이럴 수가....”

강만수(姜萬洙)는 능청스럽게 투덜거렸다.

상진(相眞)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분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였다. 하지만 당장 죽여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양(漢陽)까지 이대로 데리고 동행할 수도 없었다. 만약 같이 가다가는 이보다 더 큰 화를 당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생각다 못해 강만수를 그냥 집으로 되돌려 보내기로 했다.

네 이놈, 보자하니 네가 나를 골탕 먹일 잔꾀를 부리는 모양인데, 너의 잔꾀가 어디까지 가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 당장 몰고를 내버리고 싶지만 종놈의 신세로 초로(草露) 같은 인생을 가엾이 여겨 이대로 돌려보내는 것이니 너는 이 길로 곧장 집으로 내려 가거라

그러나 도련님 혼자서 어떻게 한양으로 가시렵니까?”

어찌 가던 내 걱정은 말아라

정대감의 아들 상진(相眞)은 강만수를 먼저 돌려보내게 된 사연을 자세히 적어 부친께 전하려고 지필(紙筆)을 꺼내 쓰려다가 문득 생각하니 강만수가 이것을 가지고 내려가다가 무슨 잔꾀를 부릴지 알 수 없기에 잠시 생각한 끝에 이렇게 말했다.

네 이놈, 저고리를 벗고 뒤로 돌아서거라

강만수가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손이 미치지 않는 잔등에 쓰기 위해서였다.

강만수는 저고리를 벗고 돌아섰다. 상진(相眞)은 붓에 먹을 듬뿍 찍어 강만수의 등에 다음과 같이 썼다.

- 前略, 강만수 이놈으로 인해서 잃지 않을 책과 돈을 잃고, 잃지 않을 당나귀마저 잃었사오니 집에 돌아가거든 즉시로 하인을 시켜 죽여 없애도록 하옵소서. 小子 相眞 上書 -

쓰기를 마친 상진(相眞)은 다시 강만수에게 엄히 말했다.

집에 돌아가거든 곧 대감을 뵈옵고 네 등에 쓴 글을 보여드려라. 알겠느냐?”

, 꼭 그리합지요

이리하여 정대감 아들 상진(相眞)은 한양길로 떠나고 머슴 강만수는 집을 향하여 떠났다.

강만수는 한양 구경을 못하게 된 것이 여간 원통한 일이 아니었으나 별도리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올라올 때보다는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가는 동안에 웬지 등에 써준 글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를 좋게 칭찬한 글이 아님은 분명해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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