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2부 사십 일곱 번째회 (47)
봉이 김선달
“.... 네 .. 네. 고백하겠습니다. 그 때는 제가 출가하기 전의 가을이었습니다. 집 뒤안에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들으며 감나무 밑에 앉아 있는데 놀러 온 이종사촌 오빠가 저를 넌지시 끌어 당기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오빠가 이끄는 대로 뒤안에 넓은 소나무 숲으로 들어 갔다가 그만 부지중에 정을 통하고 말았습니다. 꼭 한번 뿐이었습니다. 신령님 ! 부디 이 허물을 용서해 주셔요. 흐흐흑... ”
“ 말하자면 이종사촌 오빠하고 했구만...”
봉이 김선달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 이봐요 새댁! 울지 마시오. 그만 됐소. 말하자면 이종 사촌 오빠한테 당했다 그말인데 그만 하면 신령님도 죄를 용서해 주실 것으로 믿소! 그러니 울음은 그치시오! ”
봉이 김선달은 자기가 짜낸 장난이지만 꺼이꺼이 우는 여자를 보자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미안함이 느껴졌다.
“ 자. 다음 분 오십시오! ”
봉이 김선달의 말에 윤진사댁 젊은 며느리 다음으로 나오는 여자는 조부祖父가 관찰사를 지냈다는 양반집의 젊은 마님이었다.
“ 저는 다른 죄는 없고 지금 떠오르는 생각으로는 지난 겨울의 일입니다. 이웃 마을에 사는 친분이 있는 집에서 무슨 잔치가 있다기에 초청을 받고 가 본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때 장롱 밑에 떨어져 있는 옥비녀가 보였습니다. 여자의 헛된 욕심이 발동해서 그만 그 옥비녀를 훔쳐 오고 말았습니다. 꼭 한번의 실수로 평생에 잊지 못할 죄를 지었으니 널리 용서해 주시길 빕니다 ! ”
가문 좋고 돈깨나 있다는 부자집 마님이 물건을 훔쳤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 흠.... ”
봉이 김선달은 무엇인가를 잠시 생각하고 나서 피식 콧방귀를 뀌었다. 이렇게 해서 결국 네 명의 여자들은 봉이 김선달이 입회入會한 가운데 낱낱이 자기들이 저지른 죄를 고백하고 말았다. 이 여자들은 대부분 외간 남자와 간통을 했거나 남의 물건을 훔친 죄임을 알았을 때 김선달은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세상은 비록 겉으로는 화평스럽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푹푹 썩어 들어가고 있구나.... 국록國祿을 먹는 탐관오리貪官汚吏 벼슬아치들이 온갖 비리를 저질고 있느니 백성들만 사느라 등골이 휘어질뿐이지.... )
봉이 김선달의 입에서는 탄식하는 한숨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날 봉이鳳伊 김선달金先達은 무슨 꿍꿍이 속셈이 있는지 단군굴에서 망해사望海寺로 옮겨 갔을 때도 의외로 점잖을 빼고 있다가 망월사望月寺로 내려 왔다. 연 나흘에 걸친 구월산 꽃놀이 관광은 모두 다 무사하고 기분좋게 끝나고 봄볕 에 그을린 건강한 얼굴로 평양 선교리로 돌아 왔다.
“ 아니 여보! ”
집으로 돌아 온 그 다음날부터 봉이 김선달의 마누라는 잔뜩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 왜 그래? ”
며칠동안의 여행에 온 몸이 피곤해진 봉이 김선달은 이불 속에서 기지개를 켜면서 윗목에 고슴도치처럼 도사리고 앉아 있는 마누라의 얼굴을 넌지시 바라 보았다. 무슨 일인지 떫은 땡감을 씹은 얼굴이었다.
“ 왜냐구요? 오늘부터 입 구口 변에 한 일一자가 붙는다는 것을 모르셔요? ”
잔뜩 화가 난 앙칼진 목소리였다.
“ 입 구口 변에 한 일一자라니? ”
봉이鳳伊 김선달金先達은 어리둥절해져서 두 눈을 크게 크게 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