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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역사소설 - 남이 장군 제2회 (2)

 

 

권우상(權禹相) 역사소설 - 남이(南怡) 장군 제2(2)

 

 

       남이(南怡) 장군

 

 

그러자 김종서 장군을 비롯하여 여러 장수들은 모두 어쩔줄을 모르고 그냥 갈대 밭 가운데 서 있을 뿐이었다. 김종서 장군은 수역에게

먼저 건너간 군마는 어디 갔느냐?”

하고 물으니 다들 모른다고 하였다. 또 다시 김종서 장군이

군량미는 어디 갔느냐?”

하고 물으니 역시 모르다고 하였다.

 

 

그때 수역이 저 멀리 오도리정의 모래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일행의 군마가 대부분 건너오지 못하고, 저기 모여 있습니다.”

김종서 장군이 가리키는 것을 보니 두 줄기 강물이 합류하는 중간에 섬이 있는데 먼저 건너간 군마(軍馬)는 그곳에 잘못 알고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 섬에서 대안까지 5리나 되는데 배까지 돌려보내서 더 건너 갈래야 건너갈 수도 없게 된 형편이었다. 사공들에게 명령하여 얼른 건너가서 거기 있는 군마를 데려오게 했는데, 물살이 센 좁은 강물을 거슬러서 항해하려면 오늘 낮 동안에는 도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해 왔다.

 

 

 

이렇게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간신히 모두 다 건너왔다. 군마를 조사해 보니 그래도 상한 데는 하나도 없었다. 김종서 장군이 먼저 출발했다. 기마병은 말을 타고 나팔을 불며 길 안내를 하고, 또 하나는 걸어서 바스락거리며 갈대를 헤치고 길을 만들었다. 강을 건너가자 강물이 비단결 같이 곱고 잔잔했다.

이 곳을 건너 오도리성을 향해 가는 길은 우거진 나무들이 양옆에 푸른 장막을 이루었다. 얼마쯤 가다보니 저쪽에서 다가오는 호인(胡人) 대여섯 명과 만나게 되었다. 다들 작은 당나귀를 탔으며 의복이 남루하고 용모가 초라해 보였다.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회령성을 지키는 군사로 두만강 변경을 지키는 병사들인데, 거기에 삯군을 대어 놓고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여진족을 제쳐 놓으면 중국 변경의 군비야말로 이렇듯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이놈들! 어서 나귀에서 내리렸다.”

하고 기마병 하나가 호령하자 앞에 선 두 놈은 당나귀에서 내려 길 한편으로 비실비실 비켰지만 뒤에 있는 놈은 내리지 않았다.

 

 

 

여러 기마병들이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 냉큼 내리지 못하겠느냐?”

그들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면서 말했다.

임자네의 상전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오?”

기마병이 그놈 앞으로 달려들어 채찍을 빼앗아 그 벌건 다리를 후려 갈기며 말했다.

조선국 김종서 장군이시다. 그리고 저기 만세야조선대장군(萬世也朝鮮大將軍)이라고 깃발에 쓴 것이 똑똑히 보이지 않느냐? 너희들이 눈먼 소경이 아닌 다음에야 대장군의 행차 하심도 모른단 말이냐? 에끼 고얀놈들..”

 

 

 

이렇게 호통을 치자 그 자들을 당나귀에서 내려 땅에 넙죽 엎드리고

죽여 줍소서.. 소인들이 몰라 뵈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며 사죄했고, 그 중의 한 놈이 일어나 이징옥 장군의 허리를 얼싸안으며 애걸했다.

장군, 제발 살려 주십시오. 소인들의 죄는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소이다.”

군사들은 깔깔대고 웃으며 놀렸다.

그런 줄 알거든 어서 사죄하렸다.”

그들은 모두 진흙바닥에 꿇어 엎드려 머리를 진흙 속에 처박고 빌었기 때문에 이마가 온통 흙투성이가 되었다. 군사들은 이것을 보고 모두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 그놈들을 실컷 꾸짖은 다음 돌려 보냈다.

이 무렵 두만강 변방의 경원, 온성, 종성, 경흥 부령 등에는 여진족이 자주 출몰하여 침략을 일삼았는데,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납치하는 일이 빈번하여 이 참에 두만강 건너 여진족의 본거지를 소탕 할 계획이었다.

 

 

 

김종서 장군은 좌우군 지휘관들에게 여진족의 동태를 살피게 한 후 대대적인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진족의 군사적 위협은 날로 커지면서 김종서 장군은 여진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10월이 되자 김종서 장군은 여진족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국경 경비군관의 보고가 들어오자 선제공격을 결정하고 20만의 기마병으로 여진토벌의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조선군이 한여름에 출병한 것은 북방에서 여진족의 내부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있었기 때문에 이틈을 이용해 선제공격을 감행하기 위해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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