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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연재

어머니의 이불

 
어린 시절, 나는 우리 집 마당에서 새하얀 옥양목 홑청이 고운 실루엣으로 팔랑이는 걸 보면서 자랐다. 삶아서 풀을 먹이고 눅눅하게 말려 보자기에 싸서 자근자근 밟은 후 다듬이질까지 해야 바느질을 할 수 있었으니 그 정성이 하늘까지 치솟아 있는 가사노동 중 하나였다.

깨끗하게 닦은 대청마루에 주름 하나 없이 홑청을 펼친 후, 속통과 비단을 겹겹이 놓고 네 모서리를 곱게 접어 어머니께서 바느질을 하시는 동안 철없는 나는 그 폭신한 이불 위를 뒹굴며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 새하얀 홑청은 평생을 두고 꺼내어 볼 예쁜 추억을 참 많이 만들어 주었다. 너른 마당을 가로 질러 있는 빨랫줄 위에 널린 홑청을 동네 개구쟁이들이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 숨바꼭질을 하곤 했으니. 얇은 홑청이 술래로 부터 나의 몸을 안전하게 숨겨 줄 리가 있겠냐마는 그 사이로 숨어 들어가면 아늑함에 눈이 스르르 감기곤 했다.

새하얀 홑청은 봄이면 실바람에 한들거리는 색색의 고운 꽃을 그리는 도화지가 되어 주었고, 여름에는 뙤약볕을 가려주는 시원한 차양이 되어 주었다.

가을이면 주홍빛으로 물든 감잎이 홑청을 살짝 꼬집으며 빙글빙글 낙하하는 걸 오도카니 앉아서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겨울에는 손이 꽁꽁 어는 줄도 모르고 홑청 맨 아래쪽에 쪼르르 붙어 있는 고드름을 따서 입에 넣으며 천진난만하게 까르르댔다.

세월이 흘러 나도 어느덧 불혹의 나이 앞에 섰다. 그 시절이 아득하게 그리워지면 열병처럼 며칠을 앓곤 한다. 어머닌 섬섬옥수 고운 손을 가진 분이셨다. 그 손으로 가느다란 은빛 바늘을 움직여 수를 놓거나 바느질을 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목메는 그리움에 시작한 것이 어머니의 그림자밟기이다. 어머니의 그림자밟기는 계절이 바뀔 무렵이면 극에 달한다. 그 중 가장 비중 있는 하나가 지나친 나의 이불 욕심이다.

지난 겨울, 나는 자칫 큰 병이 될법한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서 수술을 했다. 꼼짝없이 눕거나 앉아 지내야 하는 긴 회복시간 동안 작은 들꽃이 소담스레 염색된 천을 이으며 지루함을 이겨냈다.

한 땀, 두 땀 손바느질로 이불 앞면을 잇는데 석 달이 소요되었다. 계절이 바뀌기 전에 이불을 완성할 요량으로 내 손이 분주했다. 이불 뒷면에 덧댈 눈부시게 하얀 원단을 거실 가득히 펼쳐두고 재단을 하는 내 모습이 어느새 어머니를 빼닮아 있었다. 원단과 솜을 포개어 누비고 재봉틀을 돌리며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그 아픈 겨울을 훈훈하게 보냈다.

어머니의 이불처럼 매번 속통과 함께 시치고 번거롭게 손바느질을 하는 일 없이 단번에 벗겨 낼 수 있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즘 이불이다. 사용과 세탁이 불편하지 않게 만들되 어머니의 이불을 그럴듯하게 닮아 있도록 나름대로 디자인을 했다. 오늘에야 완성한 이불에는 고심을 한 흔적이 꼬질꼬질하게 묻어 있다.

손수 수를 놓은 비단 천에 폭폭 삶아 손질한 새하얀 홑청을 덧댄 어머니의 정갈한 이불과는 비교할 순 없지만 석 달을 훌쩍 더 들인 공에 스스로 대견스럽다. 욕조에 물을 받아 세제를 풀고 이불을 속속들이 쟁여 밟아 내 손때를 제거하고 깨끗하게 헹궈 물기를 빼고 있다. 어머니께 배운 그대로 사용에 앞서 세탁을 하고 손질해서 딸아이의 침대로 갈 예정이다.

5살 되던 해 봄이었던가. 아버지께서 큰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실 때, 어머니께선 새 홑청을 여러 벌 준비하셨다. 날마다 상처로 얼룩진 홑청을 정성껏 갈아주시며 단아하게 웃으셨다. 아버지께서는 그 이불 위에서 내게 구르기 놀이를 가르쳐 주셨다. 그때마다 뼛속 깊은 통증으로 아픈 배를 쓰다듬거나 움켜잡으시며 어머니의 염려스런 눈빛을 받으시곤 했다.

시한부 목숨을 이어가며 극심한 통증으로 아팠을 아버지와 길고 힘겨운 병구완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참 그립다. 나는 그 시절, 아픔 속 행복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기억에 봄꽃처럼 화사하게 웃을 수 있고, 그 기억이 내게 휘어지지 않는 희망과 용기를 주고, 가끔 지쳐 있는 내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여 준다. 부모님께서는 부부의 끈끈한 사랑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감싸 안고 한 가닥 희망으로 웃으셨을 것이다. 새하얀 홑청처럼 순결하고 욕심 없는 내 부모님의 사랑이 애잔하게 심장을 두드린다.

수술 후, 회복을 해 가는 동안 살랑이며 스치는 봄바람마저도 마음 언저리를 우울하게 하더니 이불이 완성됨과 동시에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게 되었다. 폭신한 이불을 침대 위에 펼쳐 놓으면 폴짝 뛰어 올라 뒹굴며 좋아 할 딸아이를 생각하면 어느새 내 얼굴 가득히 미소가 번진다.
어머니의 온기가 살포시 내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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