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우리 집 마당에서 새하얀 옥양목 홑청이 고운 실루엣으로 팔랑이는 걸 보면서 자랐다. 삶아서 풀을 먹인 후 눅눅하게 말려 보자기에 싸서 자근자근 밟고 다듬이질까지 해야 바느질을 할 수 있었으니 그 정성이 하늘까지 치솟아 있는 가사노동 중 하나였다. 깨끗하게 닦은 대청마루에 주름 하나 없이 홑청을 펼친 후, 속통과 비단을 겹겹이 놓고 네 모서리를 곱게 접어 어머니께서 바느질을 하시는 동안 철없는 나는 그 폭신한 이불 위를 뒹굴며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 새하얀 홑청은 평생을 두고 꺼내어 볼 예쁜 추억을 참 많이 만들어 주었다. 너른 마당을 가로 질러 있는 빨랫줄에 널린 홑청을 동네 개구쟁이들이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 숨바꼭질을 하곤 했으니. 얇은 홑청이 술래로 부터 나의 몸을 안전하게 숨겨 줄 리가 있겠냐마는 그 사이로 숨어들면 아늑함에 눈이 스르르 감기곤 했다.새하얀 홑청은 봄이면 실바람에 한들거리는 색색의 고운 꽃을 그리는 도화지가 되어 주었고, 여름에는 뙤약볕을 가려주는 시원한 차양이 되어 주었다. 가을이면 주홍빛으로 물든 감잎이 홑청을 살짝 꼬집으며 빙글빙글 낙하하는 걸 오도카니 앉아서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겨
어린 시절, 나는 우리 집 마당에서 새하얀 옥양목 홑청이 고운 실루엣으로 팔랑이는 걸 보면서 자랐다. 삶아서 풀을 먹이고 눅눅하게 말려 보자기에 싸서 자근자근 밟은 후 다듬이질까지 해야 바느질을 할 수 있었으니 그 정성이 하늘까지 치솟아 있는 가사노동 중 하나였다. 깨끗하게 닦은 대청마루에 주름 하나 없이 홑청을 펼친 후, 속통과 비단을 겹겹이 놓고 네 모서리를 곱게 접어 어머니께서 바느질을 하시는 동안 철없는 나는 그 폭신한 이불 위를 뒹굴며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 새하얀 홑청은 평생을 두고 꺼내어 볼 예쁜 추억을 참 많이 만들어 주었다. 너른 마당을 가로 질러 있는 빨랫줄 위에 널린 홑청을 동네 개구쟁이들이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 숨바꼭질을 하곤 했으니. 얇은 홑청이 술래로 부터 나의 몸을 안전하게 숨겨 줄 리가 있겠냐마는 그 사이로 숨어 들어가면 아늑함에 눈이 스르르 감기곤 했다.새하얀 홑청은 봄이면 실바람에 한들거리는 색색의 고운 꽃을 그리는 도화지가 되어 주었고, 여름에는 뙤약볕을 가려주는 시원한 차양이 되어 주었다. 가을이면 주홍빛으로 물든 감잎이 홑청을 살짝 꼬집으며 빙글빙글 낙하하는 걸 오도카니 앉아서 신기하게 바라보곤
그녀는 늘 은빛 햇살 속, 푸르른 나무처럼 굳건하게 서 있다. 그녀는 나의 30년 지기 S이다. 아이들 등교 시킨 이른 아침에 S의 전화를 받았다. 달콤하고 잔잔한 수다로 오전을 마감했다. 20분 남짓 거리인데 달려가서 마주앉아 티타임을 가졌음 더 정겨웠을 텐데. 뜨끈해진 무선전화기를 충전기에 내려놓으며 아쉬움이 와르르 쏟아졌다. S는 여장부 기질이 다분하다. 미성(美聲)의 애교스러운 말투에 어울리지 않게 모습이나 행동은 씩씩하기 그지없다. S에게도 전업주부로서의 슬럼프가 있었다. 자리를 잡아 가던 일을 접어야 했던 30대 초반, 둘째를 기르며 속속들이 부딪치던 그 시절 S의 목소리는 늘 눈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는 듯 했다.끝없는 가사노동, 두 살 터울 사내아이들과의 휴전이 없는 전쟁에 꼬깃꼬깃 접어서 가슴 속에 쟁여야 했던 S의 꿈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실로 애처로운 일상이었다. S의 집에 갈 때마다 받은 느낌이 그러했다. 현관문을 열면 눈에 들어오는 무시무시한 광경에 몸서리쳐지곤 했으니.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내 작은 발 하나 디딜 틈 없이 늘어 논 장난감, 짓이겨진 크레파스, 끈적거리는 요구르트와 엉겨 붙은 과자덩어리……. 그 순간마다 큰 행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