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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 = 뒷일 보다 오늘 일을 생각하며 살아야

 

 

 

칼럼

 

                                   뒷일 보다 오늘 일을 생각하며 살아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극작가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있지 않다(竹影掃階塵不動)”라고 하는 이 선어를 자세히 설명하면 대나무에 바람이 불어 그 그림자가 섬돌 위를 휩쓸고 지나가지만 그것은 그림자일 뿐이라 섬들의 티끌은 그대로인 채 일지 않는 가는 것이다. 이 글에 이어 “달이 연못 속을 비추지만 물에는 흔적이 없다(月芽潭低水無痕)”이다. 즉 달빛은 깊은 연못 밑바닥까지 비추지만 물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이 모두가 집착없이 자기를 잊은 공(空)의 자유로운 행동을 잘 나타내고 있다. 어떤 일에도 얽매이지 않는 움직임 하나하나를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채근담」에서는 이런 생각을 다소 유교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유가(儒家)에서도 말한다. “물이 급하게 흘러가도 주위는 조용하고, 꽃이 자주 떨어져도 내 마음은 조용하다.” 사람이 이런 마음을 잊지 않고 일에 대처하면 몸과 마음이 자유로울 수 있다. (吾儒云水流急境常靜 花落蜼頻息自問 人常此意以應事接物 身心河等自在) “대 그림자가 섬들을 쓸어도 티끌하나 일지 않는다”와 “물이 급히 흘러가도 주위는 조용하다.”는 말은 “달은 연못속을 비추지만 물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이른바 동중정(動中靜)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지만, 선가에서는 집착함이 없는 공(空)의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상징어로 사용한다.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다리 끓어진 개울을 건너고 달이 없는 마을로 돌아간다(扶過斷橋水伴歸無月村)”라고 하였다. 중국 파초산에 살던 파초(芭焦)스님 수행자에게 한 말이다. “너희들이 지팡이를 갖고 있으면 나는 너희들에게 지팡이를 주겠지만 만일 갖고 있지 않다면 나는 너희들에게 지팡이를 빼앗을 테다.” 이에 대해 송나라 무문(無門)대사가 이렇게 평했다.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면 다리 끓어진 개울도 건널 수 있고, 또 어두운 마을에도 갈 수 있습니다.” 너희들에게 지팡이가 있으면 지팡이를 주고 너희들에게 지팡이가 없으면 지팡이를 빼앗을 것이라는 파초스님의 난해한 가르침에 대해 한 철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서에 보면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이 있다. 선사들과 예수가 본 종교의 진수에 공통점이 있다는 게 놀랍다. 있는 자는 얻게 되고 없는 자는 빼앗긴다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지만 이 모순 속에는 참된 생명의 흐름을 발견하게 된다. 절대자의 활동은 창조적인 삶의 흐름이다. 상대적 인식의 극한까지 추구하다 보면 모순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선(禪)의 진수를 깨친 고승 아래서 수행하여 그 깊은 뜻을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으로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안에 한 사람의 자기가 있다는 것을 잘 생각해 보라”는 경구도 있듯이 감정적이거나 상식적인 자기 이외에 영원한 자기가 깃들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를 분명히 깨닫게 되면 살아가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좌선을 하거나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얻기까지 이 지팡이에 관한 선어를 명심해 보기 바란다. 그것을 ‘생명의 지팡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무문대사의 선어 중에 ‘다리 끓어진 개울’이나 ‘달 없는 마을’은 단지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살아가다 보면 개울을 건너가려고 해도 다리가 없고, 앞을 내다보려 해도 달(moon) 조차 없어 한 치 앞도 캄캄하게 보이지 않는 절망에 직면할 때가 있다. 그것을 비유한 말이다. 그때 자기를 지탱하고 자기를 인도해 주는 ‘생명의 지팡이’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부처님께서 이렇게 가르쳤다. ‘지나간 일에 대해 언제까지나 번뇌하거나 아직 찾아오지 않는 일을 두고 계속 걱정하면 인간은 마른 풀처럼 될 것이다.’ 한산시(寒山詩)에도 ‘사람은 이 세상에서 백살도 살지 못하면서 언제나 천년 뒤의 일을 걱정하고 있다(人世不滿百常懷千載憂)’라고 하였다. 뒷일 보다 오늘 일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어느 선비가 깊은 산골을 지나가다가 밤이 깊었다. 인가도 없는 것을 헤매다가 집을 한 채 발견하고 찾아가서 하룻밤 자기로 청했다. 중년 여자가 혼자 있었고울이라 불을 지핀 방은 하나 뿐이어서 함께 잘 수 밖에 없었다. 이 여자는 방 가운데 줄을 그어 놓고는 절대로 선을 넘지 말자고 하기에 잠자는 것만으로 고마워서 약속을 했다. 잠을 청하려고 하자 건너편에서 자는 여자가 속살이 거의 내비치는 옷을 입고 두 다리를 묘하게 움직이면서 뒤척이었지만 이 선비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꼼짝 않고 하루밤을 지냈다. 다음날 아침 선비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 떠나려 하자 그 여자가 “먹으라고 앞에 놓아 둔 떡도 못먹소?” 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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