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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 = 기뻐할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다

 

 

 

 

 

 

칼럼

 

 

           기뻐할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월리엄 바클리’는 자신의 저서 ‘보통 사람을 위한 윤리 안내서 : The Plain Man's Guide to Ethics’에서 ‘사람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므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거룩한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생명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인데도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위에 언급된 월리엄 바클리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복지는 완전히 무시하고 이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폭력적인 사람들에게 냉혹하게 살해되어 왔다.(전도 8:9) 인간의 생명을 소모품이나 일회용품처럼 경시하는 일은 여러곳에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1차 2차세계 대전이다. 역사가인 A.J.P. 테일러는 “그 끔찍한 전쟁 중에 거듭 거듭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희생되었다. 군사 지도자들은 명성과 영광을 추구하면서, 군인들을 마치 무가치하고 마음대로 써도 되는 소모품처럼 이용하였다. 프랑스의 베르됭을 점령하기 위한 전투에서는 7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기록하면서 “그 전투에서 얻거나 잃을 수 있는 전략적으로 가치 있는 소득이란 없었다. 단지 죽어야 할 군인들과 차지해야 할 영광이 있었을 뿐이다.”라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The First World War)’ 학자인 케빈 베일스는 최근 들어 “인구 폭발로 인해 세계의 노동 시장에는 가난하고 피해를 보기 쉬운 엄청난 수의 인력이 넘쳐 나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그들은 “생명이 값싼 것이 되어 버리는 압제적인 상업 제도 속에서 오로지 생존을 위해 평생 힘겹게 고투해야 한다. 사람들을 착취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노예처럼 돈을 벌기 위해 마음대로 쓰고 버릴 수 있는 일회용 도구처럼 대한다”고 하였다. ‘일회용품 같은 사람들(Disposable People)’에서는 전쟁과 불공정에 더해 가뭄, 기근, 질병, 가족과의 사별 등 수 없이 많은 참혹한 일들이 모든 인류를 괴롭히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극심한 궁핍과 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극심한 압박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조차도 고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한 다음과 같은 질문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해 아래서 열심히 일하는 그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무엇을 갖게 되는가?” 진지하게 상황을 숙고해 본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한 많은 일들이 결국 “헛되어 바람을 쫓아다니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성서에서 말한다(전도 2:22, 26)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산다는 게 고작 이게 전부란 말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하지만 공허한 삶을 살 필요는 없다. 그것은 성서에 따르면 인간을 창조한 여호와께서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시며 사람들 개개인이 참으로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삶은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이다. 생명에는 연속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직 변화와 죽음 뿐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벌거벗은 나무를 보라! 아름답지 않는가? 또렷하게 보이는 나뭇가지가 벌거벗어도 한 줌의 부끄러움도 없이 늠름한 자태로 서 있는 모습에는 시가 있고 노래가 있다. 잎을 모두 벗은 나무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봄이 오면 봄은 다시 이 나무를 수 많은 잎이 연주하는 음악으로 채울 것이다. 하지만 잎도 역시 때가 되면 떨어져 버리고 만다. 인간의 생명도 이와같다. 인간은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다시 귀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죽음에 관심도 없다. 벌레를 잡고 둥우리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고 날아다니는 것 자체를 즐기느라고 죽음엔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날개짓 한번 하지 않고 바람에 실려 하늘 높이 솟아 오르는 새를 보라. 정말 새들은 삶을 즐기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죽음에 관심에 없다. 죽음이 오면 그뿐이다. 죽음이 오고 나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데에도 관심이 없다. 새들은 이렇게 해서 순간 순간을 즐겁게 살고 있다. 죽음에 늘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인간들이다. 왜 죽음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일까? 제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라. 죽음이란 어떤 것의 끝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이 죽음 속에는 또 다른 세계의 삶이 있다. 그러므로 삶고 죽음은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죽음을 거고통스럽게 생각하면 태어나지 않아야 했는데 누가 날 태어나게 했을까? 생각해 보면 삶도 죽음도 슬퍼할 일이 아니다. “이 구석에서 저 구석까지 질투로 가득찬 인간의 세상은 쾌청하기 보다는 암울하다” 아리오스토(이탈리아 극작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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