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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 = 법적인 것과 인격 침해

 

 

 

 

칼럼

 

 

                  법적인 것과 인격 침해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죄책감(罪責感, guilt)은 생물이 스스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는 감정을 의미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잘못은 개개인의 양심에 의해 결정된다. 죄책감은 수치심과는 다른 것으로, 수치심이 바라는 행동을 달성할 능력이 없어서 유발되는 데 반해 죄책감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거나 비도덕적인 것으로 자각되었을 때 유발된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유사한 감정으로, 죄책감이 들 때 느끼는 여러 감정 가운데 많은 부분이 수치심에서도 공유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근거없이 남에게 지탄을 받을 만한 말과 행동을 하고도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4월 총선때 민주당 일부 후보) 이런 사람을 두고 양심도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말은 자신의 잘못(죄)에 대해 일말의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죄책이란 말은 잘못을 저지른 책임을 의미한다.

 

우리 개인과 관련된 현실적인 죄책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유형은 ‘법적 죄책(legal guilt)’이다. ‘시민적 죄책(civil guilt)’이라고도 한다. 만약 우리가 빨간 신호등이나 정지 표시를 무시하고 달리거나 조세 포탈이나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속도를 위반할 때 민법 혹은 형법을 어긴 죄에 대한 책임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책임이 있다. 만약 그런 죄로 인해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벌금을 지불하거나 감옥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규정 속도를 위반하여 달리던 차들이 저 앞에 경찰차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 것을 보면 매우 흥미롭다. 이것은 정당한 행위에서가 아니라 붙잡히거나 처벌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 마지못해 법을 지킨다는 사실이다. 심리학에서 보면 무법성은 자연적인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보이는 성향이다.

 

두 번째의 유형은 인격에 대한 침해다. 하나님(GOD)의 율법은 그 분의 본질에 대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알 것은 이것이니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딤전1:9) 사람이 분노에가득 차서 거칠고 해를 끼치는 말을 쏟아내는 것은 죄(罪)다. 하나님은 인내심이 강하고 친절하시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서로를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혼외 정사는 죄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그런 행위를 금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돌보지 않고 무시하는 것은 죄다.

 

선(善)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보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기 때문이다. 죄를 지을 때 우리는 스스로 죄책을 느끼던 느끼지 않던 간에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자신의 감정이 도덕을 가르쳐 주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객관적인 진리를 통해 옳고 그름을 가리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특성에 대한 계시를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방식은 ‘믿음을 통한 의인’이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죄책으로부터 면제된다. 요한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기록)은 너희들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예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祭物)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라(요일 2 : 1~2) 복음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책의 종결을 선언한다.

 

우리는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죄하다고, 의롭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죄 때문에 다시 정죄를 당할 위험은 결코 없다(로마서 기록) ‘죄와 죽음’은 영적인 율법이다. 마치 중력이 물리적 법칙인 것과 같다. 중력은 보다 강력한 법칙이나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인간의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공기역학의 법칙은 중력의 법칙을 압도한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중력을 극복한다. ‘심리적 죄책감(psychlogical guilt)’은 자신이 하나님이나 인간의 도덕적 기준을 어겼음을 알 때 나타나는 정신적 반응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정서적 반응을 ‘죄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성경은 그것에 대해 사용하는 용어는 근심(sorrow)이다. 이런 근심을 고린드 후서(7:9~11)에서는 두 가지 형태로 논의하고 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害)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성서는 아름답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지금 온 세상이 전쟁, 기근, 사기 등으로 혼탁한 것은 사탄이 지배하기 때문이며 하나님(GOD)이 사탄(god)을 퇴치하기 위해 벌리는 전쟁을 ‘아마겟돈’이라고 한다. 이 전쟁이 끝나면 세상은 낙원(樂園)이 온다는 것이 성서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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