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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 = 전쟁의 기술, 싸움의 묘수(妙手)

 

 

 

 

칼럼

 

 

                    전쟁의 기술, 싸움의 묘수(妙手)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오나라 손권과 위나라 조조와의 싸움에 촉나라 유비는 손권과 동맹관계를 맺었다. 당시 위(魏), 촉(蜀), 오(吳) 삼국중에서 위나라가 강성했다. 오나라 군을 총지휘하는 주유는 지략과 무예가 출중했지만 조조에게 빼앗긴 형주의 남군성을 되찾을려고 싸우다가 위나라 군의 독화살에 맞아 피를 토하며 죽었다. 여기에는 조조의 계략이 숨어 있었다. 조조가 조인(曺仁)에 써주고 간 계획에 속아 넘어가 성안이 텅텅 비어 있는 줄 알고 함부로 뛰어 들었다가 잠복한 위나라 군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주유는 독화살을 가슴에 정통으로 맞았던 것이다. 주유는 사망전까지 오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죽었다. 손권의 형인 손책과 친구 사이고 동서 사이였다. 전쟁에서 승패를 가늠하는 것은 계략을 빼놓을 수 없다. 주유 역시 조조의 계략에 속아 죽었다.

 

적벽대전의 영웅으로 역사에 기록된 주유(周瑜)와 같은 명장도 적군의 계략에 넘어가면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전쟁이라는 특수 환경이다. 그러나 어떤 계략이든 기습이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춘추시대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진(晉)나라 국경 지역을 몰래 넘어가 정(鄭)나라를 기습 작전으로 탈취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재상인 건숙(蹇叔)과 백리해(百里亥)는 이를 반대하였다. 그러나 목공이 끝내 자신의 생각대로 기습 작전을 단행하자 두 재상은 장군이 되어 싸움터에 나가는 아들을 통곡하면서 전송하였다. 결국 진(秦)나라 군사는 기습 작전에 실패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를 미리 알고 산속에 매복하고 있던 진(晉)나라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전군이 포로 신세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기습 공격이 왜 실패했을까? 그 이유는 공격 지점이 너무 멀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단순히 기습 작전에서 얻을 수 있는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기습 작전은 거리가 짧아야 한다는 병법에도 어긋난다. 베트남 전에서 베트공은 미군과 전면전은 피했다. 하지만 계속 피하다 보면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베트공들은 미군을 기습한 후 번개처럼 사라진다. 이처럼 빠르게 없어지면 추격할 수가 없다. 기습은 거리가 짧아야 한다는 병법의 원칙을 베트공은 잘 알고 있었기에 미군과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 땅굴을 파놓고 숨어 있다가 미군이 잠들 무렵이 되면 땅굴에서 기어 나와 미군을 기습하여 치명적인 피해를 안겨 주고는 곧바로 땅굴에 들어가 기어나온 구멍에 초목으로 위장된 두껑을 덮어 거미줄처럼 얽히 땅굴 깊숙이 연결된 통로를 통해 사라지면 미군이 아니라 미군 할아버지라도 찾아낼 재간이 없다. 밀림지대는 베트공들에게는 미군의 최신 무기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무기인 셈이다. 기습 작전에 한가지 더 추가한다면 험이(險易)를 미리 파악해야 한다. 험의란 지형의 험준함이나 평탄함을 말하며 기습에서는 거리 다음으로 중요한 작전의 조건이다.

 

따라서 기습 작전에 능한 군대도 기습을 하고자 하는 험의를 모르면 그 기습 작전은 성공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보자. 몽골 군이 고려로 쳐들어 왔을 때 강화도를 점령하지 못했다. 그것은 기습에 능숙한 몽골군이지만 생전처럼 보는 강화도의 지형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강화도의 험한 지형을 모르니 기습 작전이 성공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만일 강화도가 평탄한 곳이였다면 몽골 기병대들에게 점령 당했을 것은 분명하다. 베트남 전에서 미군이 베트남이라고 하는 밀림의 지형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베트남 전에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손자병법에도 ‘지자(地者)는 원근(遠近)과 험이(險易)와 광협(廣狹)과 생사야(生死也)니라’라고 했다.

 

1878년 12월 영국은 현재 남아프리카에 해당하는 지역의 전사부족 줄루족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창으로만 무장한 남아프리카 줄루족 군대와 총으로 무장한 영국 군대와의 전쟁은 누가 봐도 총을 가진 영국군이 승리한다는 할 것이다. 그러나 병법이나 ‘전쟁의 기술’에서 보면 총을 가진 영국군이 반드시 승리한다고 할 수 없다. 이 전쟁에서 창으로 무장한 줄루족이 승리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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