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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 다라국의 후예들 제2부 제72회

 

 

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3부 제72회

 

 

다라국의 후예들

 

 

그러나 촌인(村人)들이 대개는 농부들이어서 서로 담화 한 마디 주고 받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답답하게 지내던 중 십여 리(里)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박운세라는 사람이 산다는 말을 듣고 서로 허교(許交)를 하게 되면서 서로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서운세는 전문적인 화가는 아니지만 제법 그림을 잘 그렸다. 부성지가 서운세를 친구로 사귄지도 어느새 벌써 5년이 지났지만 친구들을 모조리 뜯어 보아야 서운세만큼 정다운 친구가 없었다. 서운세는 예사 친구로서의 체면상 앞가림으로 무슨 일에 아는 체 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아첨을 하는 그런 성품도 아니고 다만 참되고 두터운 우정으로 연결된 든든한 사이였다. 친구라 하면 비록 오륜(五倫)의 하나요, 사람으로서는 있어야 할 사회적 존재라고 하겠지만 친구라 해도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사귀는 정분만 해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나 부성지의 서운세에 대한 우정이야말로 마치 형제와도 같아서 그 지성으로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이라든지 거리낌없이 지내는 정분은 비록 관중과 포숙(管中,

鮑叔)이 살아 온다 해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이처럼 정답게 자내던 서운세가 불행하게도 재취(再娶) 부인마저 잃었으므로 그 처량한 신세를 위로하기 위해 가깝지도 않은 길을 매일 같이 다니면서, 장기와 이야기로써 근심을 잊게 하려고 했던 것인데, 오늘 그와 같은 말을 듣고 보니 서운세로서는 자기를 생각해 주는 것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서운세는 부인을 잃은 후부터는 그림은 전연 그리지 않았다. 부인이 없는 세상에서는 그림을 그릴 마음이 통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서운세는 근심을 가슴에 담아 하루 하루 농사일로 재미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서운세에게는 부성지라는 친구가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날 밤은 부성지는 단잠을 자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문득 한동네에 사는 고팔배(高八倍)의 딸이 생각났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자기 친구 서운세로 말하면 집이 가난하고 마흔이 넘은 홀애비한테 자기 딸을 그에게 삼취(三吹)로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혼인을 말해 볼 만한 곳도 없었다. 어찌 되었던 윷이거나 걸이거나 말을 건네 보아야 알 일이라고 부성지는 생각했다. 서운세가 다시 옛날처럼 그림을 그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부인과 짝을 지어 주는 방법 밖에 없다고 부성지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고팔배가 대단한 부자도 아니요, 벼슬을 한 가문도 아니며, 더구나 딸도 과년한 딸이 아니요, 겨우 열 일곱살 꽃같이 피어나는 어여쁜 규수다. 마흔이 넘은 홀애비에게 삼취로 달라 하기에는 차마 그 말이 혀끝에서 돌지를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서운세가 재산을 가진 부자도 아니요, 그림을 그리며 좁은 땅을 일구어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가난한 화가(畵家)일 뿐이다. 생각다 못해 부성지는 한 가지 묘한 꾀를 생각해 냈다. 이 모든 것이 서운세를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사내 자식으로 나서서 안될 때 안되더라도 해 보지 못할 일이 어디 있단 말이냐’그와 같은 자신감이 들게 되어 어느 날 부성지는 자기 집에 술과 안주를 풍성하게 준비해 놓고 친구들을 초청했다. 마침 구월 구일(九月 九日)이었으므로 구월모사(九月墓祀)를 지낸하고 인근 마을까지 아는 친구를 모조리 초청했다. 물론 서운세와 고팔배도 초대되었다. 재사를 지낸후 종일 유쾌하게 놀다가 해질 무렵에는 먼 곳 손님들은 모두 돌아가고 다만 가까운 곳에 사는 몇몇 친구들만이 모여 앉게 되었다. 그때 부성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고팔배에게 술을 한없이 권하는 것이다. 재차 사양하면서 마지못해 마신 술로 고팔부는 어지간히 대취하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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