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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지도자는 지혜를 터득할 줄 알아야

 

 

칼럼

 

 

   지도자는 지혜를 터득할 줄 알아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한 선비가 어느 날 아침 안방에 들어오자 부인이 밤새 정성들여 기운 버선을 내 놓았다. “아 부인, 참 잘 되었구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부터 새 버선이 있었으면 했는데 고맙소.“ 선비는 새 버선을 집어들고 기쁜 표정으로 신었던 헌 버선을 벗고 새 버선을 신을려고 했다. 그런데 여느 때와는 달리 버선이 작아서 아무리 잡아 당기며 애를 써도 발의 중간 쯤에 걸려 들어가지 않았다. 화가 난 선비는 부인 앞에 홱 던지면서 ”당신 재주는 참 이상한 데가 있어, 마땅히 작아야만 할 곳은 너무 크고 넓어서 헐렁헐렁 해서 영 재미가 없고 커야 할 버선은 이렇게 작게 기워 발이 들어가지 않으니 당신 것은 어째 매사가 이렇게 거꾸로만 되었단 말이오?“ 그러자 부인이 말했다. ”아니 당신 몸은 모두가 다 좋은 줄 아세요? 커야만 좋은 물건은 아무리 만져 키우려고 애를 써도 커지지 않고 크지 않아도 될 발만 쓸데 없이 커서 같은 치수라고 생각하고 기운 버선은 왜 들어가지 않아요?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두 사람은 부둥켜 안고 웃었다. 에도(江戶) 성안에서 죄를 범한 일곱 명의 무사들에게 오타도칸(太田道灌)이 벌을 주려하자 일제히 탈출, 성밖의 한 집으로 침입했다. 그들은 어린아이를 인질로 붙잡았다. 수 많은 병사들이 그 집을 포위했지만 일곱 명의 무사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인질로 잡힌 어린아이의 가족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아이를 구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뚜렸한 묘책이 나오지 않자 병사들의 대표 한 명이 도칸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도칸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내가 처리하지.” 도칸은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서 다시 한번 상황 설명을 들은 도칸은 부하 한 명을 불러 말했다. “저 집 대문으로 가서 이렇게 말해라. 일곱 명 중에서 한 명은 무죄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 자는 살려줄 테니까 자기가 무죄라고 생각하는 자는 인질을 안고 밖으로 나와라고 해라” 부하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집 앞으로 달려가 시키는 대로 했다. 잠시후 대문이 열리더니 무사 한 명이 인질로 잡힌 어린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네가 무죄이구나, 이제 알았으니까 그 아이를 내여 놓아라” 도칸의 말에 무사는 아이를 땅에 내려 놓았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에게 달려갔다. 아이가 부모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확인한 도칸은 표정을 바꾸어 차가운 목소리로 큰 소리로 부하들을 향해 명령했다. “이제 안심하고 즉시 공격하라!” 대문 앞에서 있던 무사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봇물처럼 밀려드는 병사들에 의해 일곱 명의 무사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사건이 마무리되자 측근이 도칸에게 물었다. “이번 사건을 해결하신 방법은 정말 훌륭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하시게 되었습니까?” 도칸은 말했다. “동료들 중에 만약 행운을 훔켜쥘 수 있는 자가 단 한 명이라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겠는가’라는 시(詩)에서 착안했다. 이 시는 내 자신에 대한 애정을 옲은 시인데 내가 이 시를 생각한 것이 이번에 도움이 되었다.” 도칸을 바라보며 부하들은 크게 감동했다.

도칸의 지식은 단순한 아름다움이나 춘추추동 사계절의 변화를 읊은 시에만 국한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시를 통해서 적을 경영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칸은 오기가야츠 우에스기의 가신이다. 사실상 오늘날의 도쿄(에도)를 최초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용맹과 지혜를 겸비한 명장으로, 여러 전투에서 활약하여 명성이 높아졌으나 주군인 우에스기 사다마사는 그를 질투하고 두려워하여 음모를 꾸며 도칸을 초대하였고, 의심없이 초대에 응해 사다마사의 저택에서 목욕을 하던중 자객에 의해 암살당했다. 도칸은 죽으면서 「당가멸망(当家滅亡)」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자신이 죽고 나면 오기가야츠 우에스기 가문 역시 쇠약해져 멸망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결국 그의 유언대로 주가인 오기가야츠 우에스기 가문은 몰락하여 호조 가문에게 점점 잠식당하고, 결국 카와고에 전투에서 호조 우지야스에게 참패하여 멸망했다. 후에 호조 가문을 괴롭혔던 명장인 오타 스케마사는 그의 증손이 되었다. 명장들을 보면 어딘가 영특한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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