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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인생의 고통이 엮어낸 불후의 명작

 

 

 

칼럼

 

 

             인생의 고통이 엮어낸 불후의 명작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문장은 서한(西漢)의 양(兩), 사마(司馬)」라는 말이 있다. 양사마는 한부(漢賦)의 대가 사마상여(司馬相如) <태사공서 : 太史公書> 즉 사기(史記)의 작가 사마천을 말한다. 사마천은 역사학자이며 위대한 문학가이다. 그는 만권의 책을 읽었고 만리(萬里)를 여행했다고 한다. 그는 가장 심오한 학문인 하늘과 사람을 궁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였으며, 시대를 초월한 역사가의 최고봉에 오른 인물로 그가 남긴 작품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런 천재적인 인물을 누가 무슨 이유로 궁형에 처했는가? 궁형이란 남근(男根)을 떼어버리는 형벌로서 부형(腐刑)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떼어낸 자리의 상처에서 썩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남자가 남자의 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된다는 가혹한 형벌이기도 하다. 한(韓)나라의 형법상으로는 사형 다음의 형벌이며, 그 굴욕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사형에 비할바가 아니다. 사마천은 28세에 아버지를 잃고 사관으로 임명됐다. 그 당시 이릉은 뛰어난 명장이었다. 불과 5천 명의 군사을 이끌고 흉노군 10만 명의 기병과 싸워 그 중 1만 명이 넘는 흉노군을 무찔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포로가 되었다. 이릉이 얼마나 빛나는 전과를 올렸는가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무제(韓武帝)는 몹시 화가 나서 이릉을 처벌하기 위해 조정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신하들은 왕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모두 이릉이 저지른 잘못을 늘어 놓았다. 하지만 사마천은 이릉의 전공을 찬양하면서 왕에게 아첨을 하는 신하들을 꾸짖었다. 그러자 왕은 사실을 왜곡하고 신하들을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사마천을 감옥에 넣었다. 사실 왕은 중형까지는 처할 생각은 없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두주는 교활하고 권력에 탐욕이 많아 자신에게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제거하는 간신이었다. 이런 두주에게 모함을 당해 옥에 갇힌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었다. 특히 두주는 사마천이 왕의 총애를 받아 직위가 높아질 것을 우려하여 온갖 감언이설로 사마천을 죽여야 한다고 간청하자 결국 궁형에 처해졌다. 이때 사마천은 40세 전후의 장년이었다. 2년뒤 대사령을 받고 출옥한 사마천은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사마천을 능가하는 인물이 없어 재 등용한 것이다. 중서령이란 조정의 정무를 보고 하고 결재를 받는 재상에 해당하는 요직이었다. 더구나 궁정 안에 출입이 허용된 남자는 거세된 사람 뿐이었으므로 사마천에게 바로 그 직위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외의 인생 체험은 사마천에게 있어서는 충격적인 것이다. 사마천은 기원전 91년에 <사기>를 완성했다. 후세에 진실을 알리기 위해 복사본을 몰래 아버지 묘지에 묻어 놓고 딸(서아)에게만 알렸다고 한다. <사기>는 130권에 달하는 방대한 역사서이다. 사마천은 그것을 <태사공서 : 太史公書>라고 이름지었다. <사기>로 부르게 된 것은 삼국시대 뒤의 일이다. <태사공>이란 태사령이었던 사마천의 벼슬 이름으로 <태사공사>란 태사령 사마천의 저서란 뜻이다. 사기가 다룬 대상은 엣 제왕들이 시대로 부토 기원전 2세기 즉 사마찬의 당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등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내용에는 정치, 경제, 천문, 지리,음악, 역(易)에 이르기까지 총 망라되어 있다. 인간은 가슴에 맺힌 한(限)을 토로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체험한 일들을 엮으며, 미래에 기대를 갖기 위해 저술하게 된다. 나는 전두환 정권 시대에 언론 탄압을 받으면서 쓴 소설 <천둥소리>는 문학전집에 수록될 만큼 열정을 쏟은 작품이다. 좌구명이나 손자는 봉사가 되었거나 다리가 잘려서 이미 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붓에다가 모든 힘을 기울여 자신들의 맺힌 한을 글로 남긴 것이다. 한(韓)나라의 공자 한비(韓比)는 말더듬이여서 말은 잘 하지 못했지만 저술에는 능하였다. 그의 문장은 치밀하고도 심절(深切)하고 직절(直截), 명쾌하였으며, 조유(調喩 : 왕의 명령문서)의 명수였다. 특히 나라를 좀먹는 인물의 등용에 대하여 깊이 분개하여 <고분 : 孤憤> <오두 : 五蠹> <설림 : 設林> <설난 : 設難> 등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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