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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소련 핵무기 철수시킨 서독 슈미트 총리

 

 

 

 

칼럼

 

 

 

                소련 핵무기 철수시킨 서독 슈미트 총리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전 독일 수상 헬무트 슈미트는 세계 2차대전 발발 당시 21세였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레닌그라드 포위전을 비롯한 동부전선 전투에 참가했다가 영국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될 때 계급은 중위였다. 슈미트는 함부르크 정부의 경제부서에서 근무했다. 함부르크시청에서 내부참사관(Innensenator)으로 일하던 1962년 2월, 엘베강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에는 재난대책을 진두지휘, 경찰, 군병력을 신속히 투입하여 함부르크시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크게 줄였고, 냉철한 판단력으로 인해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슈미트가 총리에 취임했을 때 서독은 정치적, 경계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독일 내부에서는 각종 납치와 테러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교훈을 얻은 슈미트 내각은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기본 기조로 내세우며, 일괄적인 강경대응을 펼쳐나갔다. 대표적인 사건은 1977년 소말리아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루프트한자의 민항기를 납치하자 특공대를 파견해서 민간인 피해없이 테러리스트들을 전부 제거한 사건이다. 슈미트는 1972년 미·중 간의 교류로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자, 서독은 동독과 군축협상에 들어갔고, 1976년 베트남 통일을 시작으로 인도차이나 반도가 공산화하면서 냉전의 기운이 유럽을 덮었다. 이때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일원인 동독에 핵탄두를 탑재한 SS-20 중거리 지대지미사일을 배치했다. 이 탄도미사일은 서독을 비롯한 서유럽 전체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였지만 유럽에는 이에 대항할 만한 핵무기가 전혀 없었다. SS-20의 동독 배치는 유럽의 군사적 힘의 균형이 사회주의 공산권으로 쏠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소련에 대한 미국의 외교협상을 믿어볼 수도 있었지만, 미(美).소(蘇)가 추진했던 전략무기 제한협정 등의 핵무기 군축은 주로 ICBM처럼 미국과 소련 영토를 직접 공격할 정도의 장거리 무기에만 국한되어 있어 SS-20과 같은 중거리 핵전력은 소련이 미국과의 군축협상에 영향 받지 않고, 서유럽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소련의 도발에 대해 미국은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난감해 하고만 있었는데, 독일 총리 슈미트는 이러한 도발에 맞서기 위한 NATO 차원의 대응전력 배치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며 미국에 압력을 가했다. 그리고 1977년 9월 「런던 연설」을 통하여 소련이 동독에서 SS-20 미사일을 철수시키지 않을 경우,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서독 역시 미국의 중거리 핵미사일 퍼싱-2를 자국에 설치할 수밖에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서독에서는 퍼싱-2 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소련-동독이 핵전쟁을 일으키겠냐?」 「미제국주의 꼭두각시가 되는 거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일부 사회주의 운동권 학생들은 헬무트 슈미트의 암살을 협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슈미트 총리는 이러한 결정이 안보와 관련된 것이라면서 핵미사일 배치를 고수했고, SS-20 미사일을 철수시키라는 서독의 요구에도 소련은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1984년 서독에는 퍼싱-2 핵미사일이 결국 배치하자 소련은 동독의 핵무기 SS-20를 철수했다. 미국의 핵군축통인 찰스 퍼거슨 미국 과학자협회(FAS) 회장은 2015년 4월 비확산 전문가 그룹에 비공개로 회람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4개의 가압중수로에서 매년 416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준무기급 플루토늄 2500㎏을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핵개발이 88% 이상 완료 됐다고 했다. 세계에서 원전 설비 용량은 5위이며, 운전기술은 세계 1위의 원자력 대국이 대한민국이다. 실제 월성 원전의 가압중수로 4개를 이용하면, 매년 400개가 넘는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2500㎏의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다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현무 미사일 등 운반체계도 이미 확보된 상태다. 이를 뒷받침 하듯 한국의 핵무장은 6개월이면 충분하고, 5년 안에 수십 개의 핵탄두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핵 전문가들은 말한다.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고 않는다. 북한의 핵을 무력화 시킬려면 서독처럼 한국도 핵무기를 갖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 원자폭탄에 죽든지 북한 독재에 항복해서 노예로 살든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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