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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국가통치자, 외교전략 없으면 패망한다

 

 

 

 

칼럼

 

 

                                국가통치자, 외교전략 없으면 패망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유럽에 안정된 시대를 만들었던 독일제국의 재상은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k)’다. 그는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1세의 신임을 얻어 참모총장 몰트케와 함께 오스트리아 전쟁과 프랑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독일통일을 달성하여 독일제국을 완성시킨 인물이며, 1862년 9월 국회에서 「철혈연설」로 철혈재상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고, 독일 발전의 최대의 공로자가 됐다. 항상 독일 문제에 간섭하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온 3세를 프리이센∼프랑스 전쟁에서 굴복시키고 독일제국을 완성시킨 주역이 ’비스마르크‘다. ’비스마르크‘의 외교전략은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전략이론과 같다. 이 전략은 적의 계략은 사전에 없앤다는 것이다. 적의 계략을 먼저 간파하여 붕괴시키는 것이 최상의 전술이며, 그 다음은 적의 외교관계를 차단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적의 군사를 치는 것이고, 마지막에 적의 성을 치는 것이다. 따라서 용병에 능통한 장수는 전군을 굴복시키되 싸우지 않으며, 적의 성을 함락시키되 공격하지 않는다. 또한 적국을 공격하되, 장기간 끌지 않으며, 반드시 천하를 온전하게 놓아둔다. 병력의 손실이 적으면서 최대한 이익을 얻자는 것이 바로 계략으로 적을 공격하는 방법이다. 근세사에서도 손자병법을 바탕으로 외교정책을 폈던 ’비스마르크‘는 1872년에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러시아 황제 일렉산드르 2세가 베를린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하자 「3제동맹(3帝同盟)」을 성립시키고 프랑스를 고립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스마르크’의 정책도 러시아의 남하정책으로 위기를 맞았다. 1878년 러시아∼투르크의 전쟁(흑해에서 발칸 반도와 카프카스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동방정책이 일으킨 투르크와의 전쟁)을 수습하기 위해 체결된 산스테파노 조약이 오랜 대국 투르크의 존재를 위협했다. 또한 러시아가 발칸 반도와 중근동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어 그 지역에서 많은 권익을 누리던 영국과의 대립이 격렬하게 되었다.

이때 ‘비스마르크’는 「공정한 중재자」를 자칭하며 관계된 나라들의 대표들을 모아 베를린 회의를 주최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했다. 그때 체결된 「베를린조약」으로 러시아는 근동지약 영토 약간을 얻고 원래대로 축소되었다. 이러한 ‘비스마르크’의 처사는 동맹국 러시아에게는 배신행위와 같은 것이었다. 이를 불만스럽게 생각한 러시아는 독일과 멀어지고, 급속하게 프랑스에 접근하게 되었다. 러시아가 프랑스와 동맹을 맺는다면 독일은 양국으로부터 협공을 당할 위기에 놓인 ‘비스마르크’는 당시 프랑스가 지중해 진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이탈리아를 끌어 들여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간의 비밀군사동명(3국동맹)으로 대항했고, 1887년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문제로 영국과 날카롭게 대립하자, 러시아를 설득하여 「재동맹」의 비밀조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독일이 프랑스와 러시아가 영국,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하게 될 경우 각각 ‘호의적 중립’을 지킨다는 「재보장조약」을 맺은 것은 ‘비스마르크’ 외교 수완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유럽은 ‘비스마르크’라 불리는 안정되고 균형잡힌 시대를 맞이하였고, 독일은 안심하고 국내 체제를 정비하여 국력을 충실히 다질 수 있게 되었다. ‘비스마르크’ 외교전략은 「쓸데없이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립상대는 프랑스로 한정하고 다른 나라는 우방으로 최악의 경우라도 중립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위나라 조조는 전쟁은 곧 「궤도」이고, 「궤도」는 임기응변의 속임수라고 정의했다. 국가통치자가 이런 이치를 모르면 백전백패 할 것은 뻔하다. 적과 싸울 때 정의로운 전쟁인 의전(義戰)을 기치로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나 실제로 의전을 행하면 이는 패배를 자초하는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군주가 선한 품성을 구비해 행동을 옮기면 늘 해롭지만 구비한 것처럼 가장(假裝)하면 오히려 이롭다.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인간적이면서도 정직하고 신앙심이 깊은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러하는 게 좋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달리 행동할 자세를 갖춰야 하고 나아가 그리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의 사례를 보면 국가통치자는 외교전략이 없으면 반드시 패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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