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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정치인은 주은래의 품성을 배워라

 

 

 

칼럼

 

 

            정치인은 周恩來의 품성을 배워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중화민국 주은래(周恩來)는 삼국시대 유방을 도와 촉한을 건국한 제갈량과 매우 닮은 인물이다. 주은래 삶의 기록을 보면 그는 어렸을 때 숙부 밑에서 성장한 제갈량과 닮았고, 생전과 사후를 불문하고, 한 나라의 영원한 승상의 2인자 자리를 고수한 것도 두 사람은 닮았다. 주은래는 중국 공산당 내에서 엘리트 계층에 속하지만 모택동이 중국혁명을 이끌 당시에는 모택동을 보필하면서도 권력에서 쫓겨난 등소평을 다시 끌어 들여 중국의 2인자로 서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의 현대사에서는 모택동과 주은래는 동일한 위치에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중국 통인 하버드대학의 ‘페어뱅크’ 교수가 중국의 모택동 시대를 「모택동, 주은래 시대」라고 불렀다는 것도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전 닉슨 미국 대통령도 모택동이 없었더라면 중국의 혁명은 불가능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이는 중화민국의 실질적 기반을 구축한 인물은 주은래라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주은래의 충성심도 촉한의 제갈량과 닮았다. 승상 제갈량이 평생동안 군주 유방에게 충성하고, 나라에 보답하는 「국궁진췌(鞠躬盡瘁)」 자세는 주은래와 같다. 주은래와 관련하여 일화가 있다. 주은래는 임종이 가까워진 밤 11시 혼수상태에서 잠시 깨어 주변을 돌아본 후 옆에 있는 주치의에게 “이제 나에게는 더 이상 볼 일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이나 돌보도록 하시오. 그 사람들이야 말로 여러분들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오.”라고 했다고 한다. 주은래에게는 6가지가 없다고 해서 「周恩來六無」라고 한다. ▪사망 후 유골을 남기지 않는다는 「사불류회(死不留灰)」이다. 그는 죽기전 “내가 죽은후 화장해 유체를 논에 뿌려달라. 죽어서도 농민들을 위해 논에 기름지게 만들고 싶다”고 하여 유언에 따라 경비행기에 실어 천진과 발해만 일대에 뿌려졌다. ▪살아서 후손을 두지 않는 「생이무후(生而無後)」이다. 그의 아내 등영초는 「대혁명」의 와중에 유산이 돼 불임이 되자, 아내가 여러번 다른 여자와 결혼해 지식을 낳으라고 했으나 주은래는 듣지 않았다. ▪관직에 있었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관이무형(官而無型)」이다. 이는 관직을 출세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는 신념 때문이다.

집은 음침하고 낚은 단층집이라 이웃 사람들이 보기에 딱해 수리할 것을 건의 했으나 돈이 든다며 거절하자, 그가 외출한 틈을 타 이웃사람들이 집을 수리하고, 낡은 가구와 커튼을 바꾸자, 돌아온 주은래가 화를 내며 가구와 커튼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고 하니 그는 뇌물에 대해 매우 엄격했던 모양이다. ▪당을 조직화 했지만 개인 사조직은 꾸리지 않는 「당이무사(黨而無私)」이다. 그는 「대혁명」때 5개의 요직을 겸임하면서 소위 「중앙당 3인」에 있었다. 준의회의에서 주은래만이 당의 노선을 제결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지만 모택동에게 양보했다. ▪고생을 했어도 원망하지 않는 「노이불원(勞而不怨)」이다. 건국 후 「대약진 운동」 때 유소기 및 진운 등과 함께 모택동의 오류를 시정하는데 애썼다. 「문화대혁명」 때는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제2인자 자리를 임표에게 양보했고, 모든 회의마다 검토의견서를 내면서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질려고 하였다. ▪죽으면서 유언을 남기지 않아 풍파를 막은 「사불류언(死不留言)」이다. 그는 일생동안 고위직에 있었기 때문에 모택동을 포함해 여러 사람의 기밀을 많이 알고 있었지만, 임종 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후세인들은 그의 인생은 공자가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의 삶을 닮았다고 평가한다.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이 그를 만난 후 장개석에게 “우리에겐 왜 이런 인재가 없느냐”면서 화를 냈다고 하니 후세의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주은래가 죽었을 때 중국 인민들이 모택동이 죽었을 때 보다 더 슬프했다고 한 것을 보면 위대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도 이러한 주은래의 품성을 배우기를 바란다. 제갈량은 물론 주은래는 앞으로도 영원히 중화민국 역사속에 길이 남아있을 것이다. 국가를 경영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주와 승상의 파트너이다. 기업이든 가정이든 모든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속한 조직에도 최적의 파트너가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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