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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독자 기고문] 조강지처(糟糠之妻)

김무경 실로암요양원(장애인거주시설) 원목/상담지원팀장

조강지처(糟糠之妻)

 

아내와 아들 셋, 그야말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열심을 다하여 살았던 서민층의 대표 영수씨 이야기입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상경하여 처음 갖게 된 직업이 건축 일이었습니다. 말이 건축이지 막노동이었습니다. 배운 것이 건물에 벽돌 쌓는 기술이어서 몇 명의 인부들을 고용할 정도로 벌이가 괜찮았습니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건축 일이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서 열심을 다 해 일했습니다.

 

자식들과 아내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몸을 사리지 않고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보름에 한 번이든지 한 달에 한 번이든지 집에 오게 되었고, 또 다른 공사를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오면 나가서 며칠씩 일을 하는 생활을 10년이 넘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식들이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주었고, 많은 액수의 돈은 아니지만, 아내에게 갖다주면 그것을 알뜰살뜰 모으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돈 버는 일에 재미가 들려서 그랬는지 남들은 가족여행이라는 것도 한다는데 영수씨는 그게 사치라고 생각되어 더욱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서울에 작은 아파트 한 채는 장만할 수 있다는 꿈을 꾸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자주 이사를 할 수 없어서 그동안 아내에게 갖다 준 돈만 잘 저축했으면 융자도 좀 얻고 하면 작은 아파트는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아내에게 그동안 저축한 통장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내놓지를 않더랍니다.

 

그래서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 혹시 누구에게 빌려주었으면 급하게 달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니 일단 언제까지 달라는 기한을 주고, 우선 전세라도 얻어 이사하기로 하고 전세를 얻으라고 몇천만 원을 더 주었답니다.

 

그리고 계속 일거리가 있어서 며칠씩 나가게 되었고, 이사를 해서 얼마간 살았는데 어느 날, 집주인으로부터 월세가 몇 달째 밀렸다고 독촉 전화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전세가 아니고 월세였습니다. 아내를 추궁하게 되었고, 그동안 모아 두었으리라 생각했던 돈도 한 푼 없었지만, 전세 얻으라고 준 돈도 다 어디다 썼는지 겨우 월세 아파트를 얻어 놓은 것입니다.

 

영수씨의 아내는 서울의 어느 대형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그 교회에 1년 정도 출석하면서 세례까지 받은 영수씨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가 그 돈을 전부 교회에다 바쳐버렸더랍니다.

 

그때부터 교회는 물론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생겼습니다.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되었고 어린아이들을 혼자 키웠습니다.

 

그러면서 영수씨는 성실한 가장으로서 또 모범적인 서민층 가정에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영수씨의 술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식들이 한참 사춘기일 때에 가정이 해체되는 바람에 더욱더 큰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자식들은조금씩 삐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술로 지새던 영수씨의 몸은 나이 60을 넘기면서 막노동의 후유증과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 절단과 시각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수씨와 상담하는 가운데, 목사로서 영수씨의 사연에 책임을 통감하며 함께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얘기하겠습니까? 다 사기치는 거지요. 그래서 영수씨의 아내에게 그 많은 돈을 바치게 한 그 교회 목사놈만 욕했습니다.

 

영수씨, 잘려나간 다리가 밤바다 쑤시고 아파도 그 다리를 감싸고 크게 소리도 못 내고 아파하면서 새벽 예배에 나와서 울면서 기도하면서 저에게 이런 얘길 합니다.

 

“목사님! 이곳은 천국입니다. 저 같은 놈도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다니 참 감사할 일입니다.”

 

영수씨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정신적으로도 조금씩 안정되어갔고, 투약 관리부터 건강 관리까지 우리의 지시를 잘 따라주어서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시력도 어느 정도 회복되어 혼자 보행도 가능할 정도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아들들이 다녀간 어느 날 저보고 그럽니다.

 

“목사님 솔직히 내가 예수 믿고, 몸이 이렇게 아프다 보니 내 아내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아들들을 통하여 혼자 살아가고 있는 아내의 소식을 들은 영수씨, 20년 가까운 세월을 원망하며 살아온 그 아내를 용서한다고 합니다.

 

저도 저를 버린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주검을 부둥켜안고서야 때늦은 용서를 했습니다만, 용서는 빠를 수록 좋습니다.

 

영수씨가 여기 온 지 3년째 되던 해, 그만 위암 3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수술도 못 하고 항암치료를 받기 위하여 이곳을 퇴소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영수씨는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연락이 왔습니다. 집으로 간답니다. 아니, 집이 없는데 어디 집이냐는 했더니, “목사님, 마누라가 오랍니다.”라며 좋아하는 그 목소리를 듣고 너무나 반갑고 고마워서 울컥했습니다.

 

서로 모든 것을 용서하고 이제 이 세상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위암 3기의 남편을 자신의 곁으로 데리고 가는 그의 아내가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고생을 함께 겪어온 아내를 조강지처(糟糠之妻)라고 하는데, 죽음을 앞둔 남편을 거두어 주는 아내 역시 조강지처(糟糠之妻)입니다.

 

영수씨는 이곳을 퇴소하고 항암치료를 받던 중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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