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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독재자 압살롬과 북괴 김정은

 

          

칼럼


                      독재자 압살롬과 북괴 김정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이 아버지의 왕권을 찬탈하려다 결국 죽음을 자초하였다. 아버지를 배반한 압살롬은 권력에 불탄 야욕에 아버지인 다윗의 왕위를 찬탈하기로 작정했다. 압살롬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 했다. 그럴듯한 공약을 내세우고 인정 많은 척하면서 백성들의 환심을 산 것이다. 그는 백성들의 복지에 진정으로 관심 있는 것처럼 위장하려고 백성들을 끌어안고 그들에게 입 맞추곤 했다. (사무엘 둘째 15:2-6) 심지어 그는 다윗이 신뢰하던 절친한 벗인 아히도벨까지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결국 아히도벨 역시 다윗을 배신하고 반란에 가담했다. (사무엘 둘째 15:31) 그렇게 배신을 당한 다윗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시편 3편과 55편에 나와 있다. (3:1-8; 55:12-14) 압살롬은 여호와께서 임명하신 왕을 대적하여 야심에 찬 음모를 꾸밈으로, 뻔뻔스럽게 하느님의 주권을 무시한다는 것을 드러냈다. (역대 첫째 28:5) 결국 반란은 실패했다. 전투가 벌어지고 압살롬의 군대는 패배했다.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도망가다가 숱이 길고 많은 머리카락이 큰 나무의 아래쪽 가지에 얽히고 만다. 그가 그곳에 무기력하게 매달려 있을 때 요압이 창 세 자루를 그의 심장에 박아 죽인다. (사무엘 둘째 18:6-17.)



다윗은 자신의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듣고 기뻐할까? 그렇지 않다. 다윗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울며 이렇게 부르짖는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 내가, 차라리 내가 너 대신에 죽었더라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사무엘 둘째 18:24-33) 다윗은 요압의 말을 듣고 나서야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서 벗어난다. 압살롬은 참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는 권력 야망에 눈이 멀어 자신의 아버지이자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인 다윗을 배신하고 대항해 싸우다가 죽음을 자초하였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 다음으로 왕권에 오르게 될 요나단은 다윗에게 왕권을 양보하고 오히려 다윗을 온전히 도와준 사람인데 요나단은 다윗보다 30세가 위인데도 그렇게 했다. 21세기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북한처럼 일인 독재체제의 국가도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세상의 여러 형태의 정부가 백성들로부터 반항과 비판의 소리와 질타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합당한 정도로 자유와 평화를 보장해 주고 안정된 생활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백성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백성들이 어떤 이유로인가 통치자에 대한 확신을 잃게 되면 오래 가지 않아 다른 누군가가 대신 권좌를 차지하게 될 수 있다. 강력한 통치자가 갑자기 권좌에서 참형되거나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상황들 중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첫째는 열악한 생활환경이다. 18세기 말경 프랑스의 국민들은 세금은 많고 식품은 부족한 가운데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되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왕 루이 16세가 1793년에 참형되었다. 둘째는 전쟁이다. 1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몇몇 황제의 통치가 막을 내리게 하였다. 1917년에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전쟁으로 발생한 식량 부족이 2월 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폭동으로 인해 황제인 니콜라이 2세가 왕위에서 물러나고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191811월에 독일은 평화를 원하였지만 연합국들은 그 나라의 통치자가 바뀌지 않는 한 전쟁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셋째는 새로운 정치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이다.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 받은 김정은은 유엔의 경제압박에 못이겨 핵폐기에 대한 구체적인 말은 없고 한반도 비핵화라면서 얼버무리고, 문재인은 김정은에게 협조하듯 군사분계선에 대북방송도 없애고, 대북 삐라 살포도 못하게 했다. 그러나 돈과 물자는 김정은에게 주고 싶어 안달하는 모양새다. 대북지원을 할려면 북한 주민에게 직접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대북지원 물자를 북한 정권에 주면 군사용으로 전용하거나 특권층의 배만 불려 북한 주민들은 잘 사는 놈들에게만 준다고 오히려 한국 정부를 더욱 원망하게 될 것이다.

 

 

 

 

 <본 칼럼은 구미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리스트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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