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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탐욕과 행복은 다르다



칼럼

 

 

                         탐욕과 행복은 다르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인간을 화육(化育)하는 길은 다기다양하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개체적인 빛을 안으로 발산하기도 하지만 밖에서 빛을 홉수하기도 한다. 안으로 발산하는 빛이 자각의식의 길이라고 한다면 밖으로부터 받는 것은 역사의식의 투쟁인 것이다. 역사는 인간의 발자취이다. 이 발자취에서 인간은 성숙되어 왔고 문화를 가꾸고 발전시켜 왔다. 문화는 정신적인 내분비적 자양분이 핵으로 응결되어 개체와 전체에게 영양하고, 또한 조화된 문화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문화체의 중심은 인간사고의 차원을 창조와 화합으로 인도하는 일심(一心)에서 기원한다. 인간의 마음이 항상 불변의 일심에 자리하게 하는 힘은 믿음에서 생성된다. 이 믿음을 우리는 종교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정신문화 형성의 기초적 핵인 것이다. 오늘날의 인간들은 물질적인 향유로 정신문화를 등한시 해 왔다. 그리고 물질문명은 인간 최대의 욕망과 쾌락을 누리는 것이고 행복 증강의 길이라고 확신하였다. 종교는 인간 전체를 형성하는 길이며, 본래 선재하였던 존재를 본 모습 그대로 존립케 하려는 화합의 율동이다. 그것이 기도, 발원, 노래, 찬탄, 고행, 참회 등 그 무엇으로 표현될지라도 그것은 인간 마음의 자리를 태양처럼 존재시키려는 힘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상실하려고 하고 또 망각하려고 한다. 종교는 인간의 심성을 정화(淨化)시키는 구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정화(淨化)란 무엇인가? 그것은 순수의 결성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또 불순물이나 불결성을 제거하는 것을 정화작용이라 한다. 흙탕물로써 증류수를 만들면 좀처럼 흐려지지 않는다. 물리작용의 묘미가 이렇다면 심리작용은 이것보다 더 웃돌게 되어야 한다. 정화가 되고 나면 정화 이전도 정화 이후도 없어야 한다. 세상이 혼탁할수록 종교는 원래의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 종교가 원래의 위치에서 이탈하면 그것은 세속화 된 것이다. 세상이 혼탁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 혼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도 청정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면 국토도 청정하지 못한다. 아니 청정할 수가 없다. 이렇게 청정하지 못한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탐욕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탐욕은 그 처음이 어딘가도 모르며 그 끝도 아득하다. 그러므로 탐욕을 벗어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인간은 탐욕의 그물에 메달려 살면서 그것이 탐욕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탐욕의 그물을 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물을 더 탄탄하게 동여매고자 온갖 노력을 다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면 갈수록 탐욕은 하나의 소유물로 화현되어 자기 소유가 되지 않는 것을 배척하게 된다. 인간의 가장 큰 약점 중에 하나는 모든 존재가 자기 내재율속에 존재하고 소유물이 되기를 원하고 있고 그 원한바를 실천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갈등의 능선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형국이다. ()와 빈()의 갈등을 비롯하여 이념적 갈등은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그러므로 화합의 중요성이 제기 되고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화합이란 물에 기름을 타는 것이 아니라 물에 우유를 섞는 것이라고 하였다. 분열의식, 대립의식이 야기되는 것을 자기의식이라고 뽐내고 있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겨자씨앗 보다 더 작은 지식이 아닐까. 지혜의 문전에 들어가면 지식은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식은 지혜의 아들이다. 지식인 아들이 지혜의 아버지를 능가하다는 것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위에서 나무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발전한 물질문명은 인간을 물질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물질에 대해 주인이 되지 않을 때 노예가 되는 것이다. 물질에 유혹된 의식은 바르게 인식할 수 없다. 탐욕의 뿌리를 완전하게 뽑아버린 사람이라야 자비를 구현 할 수 있다. 탐욕은 가지려는 사람의 몸부림이요, 자비는 주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부림이다. 가지고자 하는 욕망의 불을 끄면 주고자 하는 침묵의 삼매를 누린다. 자비와 구원이 내속에 샘솟아 오르는 소리의 합창이 지구 저쪽 이쪽에서 메아리 칠 때 세상은 한층 더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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