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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명작소설 = 분노의 계절 제2회



권우상(權禹相) 명작소설 - 분노의 계절 제2

 

 

          분노의 세월

 


이 무렵 고구려의 요동 서북방 일대에서는 선비족의 모용부 추장 모용외가 크게 세력을 키우면서 고구려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들은 부여왕을 죽인 후 유주流州 방면으로 진출하여 세력을 강화한 후 진()나라와 고구려의 변방을 노략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봉상왕의 폭정으로 고구려의 조정이 혼란에 빠지고 민심이 이반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이를 기회로 선비족의 모용부 추장 모용외가 6천의 기마병을 이끌고 쳐들어 왔다. 이때가 서기 2938월이었다.

모용외의 기마병은 고구려를 기습 공격했다. 모용외의 칼이 허공을 가르면서 부하들에게 공격을 알리자 모용외의 기마병은 일제히 달려 나가면서 싸움이 붙었다. 고구려의 날쎈 5천 기병대도 일제히 적진을 향해 돌풍처럼 밀고 들어갔다. ! 하는 함성과 함께 고구려 기마병의 말발굽에서는 뽀얀 먼지가 구름처럼 일었다. 전투가 시작되면서 군사들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칼과 칼이 부딪치고 양쪽 진영의 군사들이 격돌했다.

고구려의 장수 여불如不이 모용외를 상대해 보니 칼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잠시 싸우던 여불如不은 일부러 힘이 부치는 척 하면서 뒷걸음질치며 한쪽 구석으로 모용외를 유인한 후 번개처럼 모용외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목이 달아날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때 모용외의 부하 장수 모부다가 달려와 여불의 목을 칼로 내리쳤다. 여불은 목이 잘리면서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장수 여불을 잃은 고구려군은 크게 분노했다. 양쪽 군사들이 뒤범벅이 되어 싸웠다. 고구려의 장수 양빈梁彬은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모용외 군사들을 향해 칼을 힘껏 내리쳤다. 군사의 피가 솟구치면서 양빈의 몸을 붉게 물들었다. 피차간 악귀와 같은 모습이었다.

모용외는 후진에 배치해 놓은 군사들은 전진으로 배치하면서 고구려군은 점점 위기에 몰렸다. 고구려 조정은 일단 봉상왕을 북방의 신성으로 도피시키고 수비 태세를 취했다. 그러자 모용외는 말머리를 북방으로 돌려 신성新城을 향해 진격하고 모용외의 군사는 기동력이 뛰어난 기마병을 이용하여 봉상왕의 도피 행렬을 추격하였다.

이 때문에 봉상왕과 조정 신하들은 깊은 산속으로 도피하면서 위기에 직면하자 신성의 관리로 있던 북부 변방의 소형 고노자는 급히 군대를 몰아 봉상왕을 맞이하는 한편 기마병 5천을 출동시켜 모용외의 군사와 맞서 싸웠다. 모용외의 군사들은 원래 말을 잘 다루었지만 고노자의 기마병에게는 당할 수가 없었다. 고노자의 기마병들은 말 위에서 양쪽 창 끝에 칼날이 달린 긴 창을 휘두르며 적과 싸우는데 반해 모용외의 군사들은 창의 길이가 짧아 가깝게 접근해야 적을 찌를 수 있는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고노자의 뛰어난 전술과 통솔력에 밀려 모용외의 군사들은 크게 패하여 도주하고 말았다. 모용외의 군사들이 대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봉상왕은 고노자의 작위를 태대형太大兄으로 높이고 곡림谷林 지역을 식읍으로 내려 전공을 크게 치하 하였다.

그리고 봉상왕은 도성으로 돌아왔다. 환궁한 봉상왕은 백성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봉상왕은 이런 소식을 누군가가 왕위를 찬탈할 목적으로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의심하면서 불안감에 시달려 친동생인 돌고乭高에게 역모의 죄를 뒤집어 씌워 스스로 자결하도록 명령하자 돌고는 바통해 하면서 칼로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이때 돌고乭高의 아들인 을불乙佛은 아버지가 억울하게 역모로 몰려 죽자 시골로 야반 도주하여 몸을 숨긴 덕에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민심은 더욱 흉흉해져 백성들의 입에서는 곧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가운데 조정의 버팀목이던 국상인 상추尙秋가 병으로 죽었다. 그러자 봉상왕은 고구려의 남부南部 지역을 맡고 있던 대사자大使者 창조리를 국상國相으로 임명하고 작위를 대주부大主簿로 격상시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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