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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 중편 연재소설 = 미녀 노아 제1부 제3회


권우상 중편 연재소설 제1부 제3회     

 

미녀 노아



모환은 무사히 안으로 낚았지만 급히 몸을 기울이는 바람에 말()이 중심을 잃고 말았다. 말이 쓰러지면 끝장이었다. 이네 중심을 잃은 말은 휘청거리며 옆으로 빗실 넘어 가려고 했다. 그러나 말이 쓰러지기 전에 박시량의 손이 크게 원을 그렸고, 국장을 떠난 모환은 힘차게 날아 5십보나 떨어진 홍문 속으로 신속이 빨려 들었다.

백완타(百完打)!”

! 하는 환호성이 구름처럼 일었다.

 


박시량은 비록 낙마하고 말았지만 그 전에 이미 모환을 날렸으므로 무사히 격구(擊毬)를 마친 셈이었다. 박시량의 군영에서는 환호성에 휩싸였고, 석고진 군영은 물을 끼얹는 듯 조용하기만 했다.

박시량과 석고진은 기마 교위 앞으로...”

심사를 숙의하던 군() 수뇌부에서 돌연 박시량과 석고진을 호명했다. 기마(騎馬) 교위(校尉)는 시립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수뇌부로서 결정한 일을 전달했다.

 

 

주상 전하께서 격구로서 도총관으로 대장군에 보임하겠다는 하명을 내리신바 있으나 격국으로서는 우열을 가리기 매우 힘드니 너희 두 사람은 다시 마상 궁술로 승부를 가리도록 하라.”

왕의 지엄한 분부인 모양이었다. 검술(劍術)이나 궁술(弓術)이라면 석고진은 박시량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말을 타고 겨루는 마상(馬上) 궁술(弓術)이라면 말위에서 자란 거란족의 후예인 석고진이 우세할 것만 같았다. 석고진은 아버지가 거란족인데 아버지와 함께 조선으로 귀화한 사람이었다. 석고진과 박시량은 한 차례 눈싸움을 교환하고 나서 마장(馬場)으로 향했다.

 


박시량은 찬찬히 말을 살핀 후 활을 메고 말위에 올랐다. 마상 궁술은 두 사람이 동시에 출발해서 과녁을 차례로 맞추게 된다. 박시량은 단상 높은 곳에서 궁술장으로 내려다 보고 있는 왕(성종)에게 시선을 돌렸다. 왕 옆에는 왕비 공혜왕후를 비롯하여 여러 후빈들과 왕족들이 앉아 있었다.

 

 

북소리가 둥둥둥! 나고 드디어 깃발이 높이 올랐다. 박시량은 첫 번째 과녁을 향해 힘껏 말을 몰았다. 석고진은 무리하지 않으면서 박시량의 뒤를 바짝 따랐다. 말을 달리면서 화살을 날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내에 바람의 방향을 파악해야 하며 흔들림도 감안을 해야 했다.

개울 너머로 첫 번째 과녁이 보이기 시작하자, 석고진이 앞으로 나섰다. 박시량은 무리하지 않았다. 아직 살을 날리기에는 먼 거리였지만 박시량은 2백보까지는 접근할 요량이었다. 아직 3백보도 넘는 거리였지만 석고진이 첫 번째 화살을 날렸다. 비록 과녁을 벗어났지만 상당히 근접해 있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명중시킬 것 같았다.

 

꾸물거릴 틈이 없었다. 박시량은 급히 화살을 먹이고 과녁을 향해 시위를 힘껏 당겼다. 25십보 거리였는데 화살은 바람을 가르며 정확하게 과녁을 명중시켰다. 간발의 차이를 두고 석고진의 화살은 과녁에 꽃혔다. 석고진이 무리해서 화살을 날리지 않았던들 석고진에게 기회를 놓칠뻔 했다. 근소한 차이로 첫 번째 과녁에서 박시량은 승리했다. 하지만 아직도 과녁은 두 개나 남아 있었다. 박시량은 두 번째 과녁을 향해 말을 달렸다. 두 번째 과녁은 우뚝 서 있었던 첫 번째 과녁과는 달리 바닥에 붙어 있다시피 낮게 세워져 있었다. 2백보도 무리였고, 제대로 겨냥하기 위해서는 1백보까지 근접해야 할 듯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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