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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연재

창간 특집/ 구미공단의 어제와 오늘

낙동강 시골마을서 ‘최첨단 산업도시’로 성장
시 승격 30년 맞아 세계 IT 중심 도시로 재도약 부푼 꿈

 
▲ 2007년 구미공단 
1969년 공단조성 계기 ‘구미읍’으로 승격
공단 조성 40년, 국내 IT산업 메카로 ‘우뚝’

우리나라 수출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구미시가 올해로 시승격 30주년을 맞았다.
1972년 제 1단지가 조성되기 전 한적한 시골마을에 불과했던 구미시는 지난 30여년간 전국 최고 수준의 최첨단산업도시로 급성장했다.

‘구미의 역사가 한국 경제의 역사’란 신조어를 만들만큼 숨가프게 달려온 구미시는 시 승격 30주년을 맞아 ‘제 2의 도약’을 꿈꾸며 세계적산업단지로의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편집자주>

■ 구미의 변천

지금의 지명이 된 구미는 선산군에 속한 작은 마을이었다.
고려 성종 때 문헌에 따르면 별 다른 뜻이 없는 ‘구며’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가 지금의 구미(龜尾)로 변천됐다.

근대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구미에 역(驛)이 들어서고 1969년부터 공단조성이 본격화되면서 구미는 선산군 구미읍으로 격상되기에 이른다.

이어 1977년 2월 15일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관할로 한 ‘경상북도 구미지구출장소’가 설치됐으며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의한 전자 및 수출공업단지 조성에 따른 신흥산업도시의 행정수요를 효율적으로 관리 운영해 나가기위한 조치로 1978년 2월 15일 마침내 시로 승격됐다.

이후 1995년 1월 비로소 선산군과 구미시가 통합, 역사와 전통, 쾌적한 자연환경과 첨단산업이 조화를 이루는 전국 최고의 도농복합도시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 인구 및 행정

시 승격 원년인 1978년 구미시의 인구는 7만2천37명(남자 3만3천207명, 여자 3만8천830명)이었으며 120.11㎢의 면적에 총 가구수는 1만2천 531호였다.

선산군과 통합된 1995년 인구는 31만1,431명(남 15만7천820명, 여15만3천611명), 617.28㎢에 총 가구수는 8만6천019호이며 외국인 수도 1천804명으로 집계됐다.

현재의 인구는 2008년 7월말을 기준으로 39만2,782명(남 19만9천640명, 여 19만3천142명)이며 총 가구수는 14만8천410호이다.

78년, 시 개청과 함께 개편된 행정조직은 시장과 부시장 1건설담당관 3실, 14과 1비상대책관, 21개 행정 읍면동의 기구로 조직됐으며 공무원 수는 487명이었다.

2008년 현재 행정조직은 40만 시민의 행정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1실·4국 (6담당관 21과), 1출장소(4과), 1의회사무국, 3직속기관(4과 1지소), 8사업소(5과), 2읍 6면 19동이며 공무원 수는 1천510명으로 늘어났다.

재정 규모도 78년, 총 78억원(일반회계 30억원, 특별회계 48억원)에서 2008년 총 7,001억원(일반회계 5천205억원, 특별회계 1천976억원)으로 약 90배 정도가 증가했다.

구미시는 현재 재정자립도 44.8%, 1인당 지역내 총생산량인 GRDP 4만5천32달러로 경제적 자립이 전국 최고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 2008년 구미공단 
■ 구미공단 변천

구미의 공단은 총 24.9㎢로 구미공단 1.2.3단지 17.8㎢, 4단지 6.8㎢ 그리고 0.34㎢의 농공단지가 있다.

기업체 수는 1,772개사 (대기업 61, 중소 1,711)이며 근로자는 총 9만4천279명이다. 수출되는 제품으로는 전자제품 77%, 광학제품 12%, 섬유 3% 순이다.

2007년 44조원의 생산을 했던 구미시는 올해 생산목표를 52조원으로 잡고 있으며 수출목표를 380억불로 설정했다. 이는 경북수출(450억달러)의 77.8%, 전국(3천715억달러)의 9.4%에 해당하는 수치다.

무역수지 흑자 또한 235억달러로 전국 148억달러의 159%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수출경제의 중심이 되는 구미공단은 1969년 전자공업진흥법이 제정되고 1970년 8월 24일 구미전자공업전문단지 조성이 결정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갔다.

구미공단 제1단지는 경상북도가 주도한 일반단지 제1, 2공구와 한국전자공업공단이 주도한 전자단지 제1, 2, 3공구로 나뉘어져 연차적으로 조성됐다.

1973년 11월에 완료된 전자단지 제3공구 개발사업은 강 중심에 있었던 3.4㎢의 신만주섬을 매립하여 4.6㎢라는 거대한 부지를 조성함으로써 낙동강의 지도를 바꿔놓은 대 역사로 기록됐다.

당시 폴리에스텔을 중심으로 한 섬유산업이 전국 최고를 달리던 구미에는 코오롱과 제일합섬 등 굴지의 업체와 전자부문의 대들보라 할 수 있는 금성사와 삼성, 대우의 전신인 대한전선이 들어섰다.

1976년, 1단지의 낙동강 건너편인 임수동, 황상동, 구포동 일대에 제2단지 조성이 결정됐고 1978년 7월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1981년 10월 2.3㎢의 단지 조성이 완료됐다.

■ 30주년은 구미경제 제2도약의 원년

남유진 구미시장은 시 승격 30주년을 맞는 2008년도를 구미국가산업단지의 체계적인 종합 진단과 R&D역량 강화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단지로 특화시킬 수 있는 구미경제 제2의 도약기로 정했다.

남시장은 “구미공단을 비롯한 구미시 역사는 우리나라 경제의 역사입니다. 세계가 경쟁하는 글로벌시대에 첨단 IT산업의 메카 구미시야말로 국가 경제의 핵심 성장동력입니다. 기업하기 가장 좋은 도시, 누구나 살고 싶고 살기 좋은 도시,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이루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 시장 취임 후 2년간 1, 2, 3, 4 단지 24.6㎢에 비견될 19.8㎢ 추가 공단 조성은 구미 공단 40년의 지형을 바꿀 역사의 한 장으로 기록될 만한 쾌거를 이뤄냈다.

내륙 최초로 지정된 ‘경제자유구역 구미디지털산업지구’는 산동면 일대 6.24㎢ (188만평)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첨단IT산업, 외국인 정주시설, 외국인병원·학교 등이 들어서게 된다.

국내 최대 전자산업단지로써 고급연구 인력의 이탈을 방지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복합형의 ‘배후지원단지’는 2015년까지 산동, 옥계동 일원 2.46㎢(744천평)에 사업비 8천778억원을 투입, 친환경적인 단지로 건설해 도시 자족성을 확보할 것이다.

특히 최근 행평면 일원에 ‘구미 국가 5공단’조성이 확정됨으로써 명실공히 구미공단은 새롭게 첨단 IT산업, 신재생에너지 등의 성장동력산업을 유치하고 한국디지털IT전자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첨단산업리더도시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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