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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방석영칼럼-절이 싫으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중이 절이 싫다고 훌쩍 떠나기만 하면 별무소용이다. 그렇게 떠나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여기서 중이라 함은 비단 승려뿐만이 아니며, 절은 단지 사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모든 단체, 조직 등 이세상이 절이고, 그 속에서 인연맺고 있는 모든 구성원이 바로 중이라는 비유로 알아들어야 한다.

 

절이 싫어질 만큼 절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 상황에 대처하는 중의 유형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상황으로 나눠 서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절에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알면서도, 못된 주지 옆에 바짝 붙어서 신도들을 기만하고 등치는데 앞장서는 중이 있다. 제일 문제가 심각한 중이다. 이런 부류의 자들이야말로 제 자신의 호의호식을 위한 방편으로 중질을 한다고 해도 구업이 되지 않을 만큼 하는 불교 내 독버섯으로 하루빨리 제거돼야 할 마구니들이다.

 

둘째, 절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등등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절 밥만 축내는 중이 두 번째로 딱한 중이다. 이 같은 중은 할 일 없는 무심 도인이 아니라 정견, 정사, 정어, 정행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있으나마나 한 물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절에 무엇이 문제이고,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줄 잘 알면서도, 당장 먹고 잘 곳이 마땅치 않아 절을 떠날 용기도 없으면서, ‘구시렁구시렁’ 불평불만을 토해내는 중이 세 번째로 한심한 중이다.

 

넷째, 절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아는 까닭에, 어떠한 집착이나 갈등도 하지 않고 미련 없이 절을 떠나는 중도 있다. 바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경우에 해당된다. 새로운 인연 처에 뿌리를 내리고 올곧게 불법을 나누는 삶을 산다면 그뿐으로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 다섯째, 절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정확하게 꿰뚫어 볼 뿐만 아니라, 절의 문제들을 능히 풀 수 있는 반야 지혜를 가지고 계시는 스님도 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가장 바람직한 중은 바로 부처님의 지혜를 깨달아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정견(正見)한 뒤, 즉각적인 보살행이 가능한 다섯 번째의 경우일 것이다. 굳이 절을 떠날 필요조차 없이,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파사현정함으로써 자각각타(自覺覺他)하는 보살행을 실천할 뿐이다. 나는 몇 번째 유형에 해당되는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없어야 할 사람인가? 있으나마나 한 사람인가? 아니면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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