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9 (일)

  • 흐림동두천 23.8℃
  • 흐림강릉 26.0℃
  • 서울 24.7℃
  • 구름많음대전 29.3℃
  • 구름조금대구 33.2℃
  • 구름많음울산 29.6℃
  • 구름많음광주 30.1℃
  • 흐림부산 27.1℃
  • 구름많음고창 30.2℃
  • 구름많음제주 30.4℃
  • 흐림강화 24.5℃
  • 구름많음보은 29.8℃
  • 구름많음금산 31.6℃
  • 구름많음강진군 31.0℃
  • 구름많음경주시 31.6℃
  • 구름많음거제 27.5℃
기상청 제공

기획/특집/연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사람은 서로 돕고, 사랑하는 마음, 서로 베푸는 마음으로 산다'

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1838~1910)는 그의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에서 천사 미하일은 “모든 사람은 자신을 살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명예와 영달을 위해 ‘양심’을 거슬러 살며, “피붙이에게 뼈저린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다.

 

경북 문경시 관음리 소재 ‘조선요 망댕이 박물관’에 전통 ‘발 물레’ 이야기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사기장이며, 문경백자 8대종가 조선요 문산 김영식(이하 문산)에 의하면, “조선요의 전통 ‘발 물레’는 1843년, 문산의 6대조부인 김영수가 ‘망댕이 사기요’를 축조하면서 전통 ‘발 물레’도 함께 만들었다”. 그러면서 “조선요의 전통 ‘발 물레’는 문산의 숙부인 ㅇㅇ요의 B씨가 빌려가고 현재까지 되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B씨가 물레를 빌려간 경위는 이렇다. 문산이 고등학교 2학년일 때인 1985년 늦여름, 문경에서 3시 40분 버스를 타고 집에 귀가하니 4시 20분경이었다. 집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평소와 매우 달라 자당에게 분위기가 왜 이런지 물어보았다. 김영식의 선친 김천만(조선요7대종손)은 마루 위에 앉아 그저 담배만 피우고 , 자당은 봉당에 서서 말을 머뭇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잠시 후 문산의 자당은 “야이, 작은 아버지가 물레를 빌려갔다”. 문산이 왜 빌려갔냐고 묻자, 자당은 “작은 아버지가 지금 형편이 매우 어려워 전통 ‘발 물레’를 자신의 생계를 위해 홍보용으로 사용하고 나중에 문산 김영식이 도예가로서 자리를 잡거든 그때 전통 ‘발 물레’를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다”고 한다. 이 약속은 문산의 부모님이 살아생전에 여러 번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문산 은, “그때 당시의 숙부 B씨의 인품으로 봐서는 분명히 나중에 ‘발 물레’를 되돌려 주리라 굳게 믿고 삶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조선요 ‘망댕이’ 사기요 전통 ‘발 물레’,제자리에 되돌아오지 못하고 있어>

 

문경백자 조선요 망댕이 8대종손 문산의 부모님이 모두 타계하자 숙부 B씨의 마음이 바뀌었다. B씨의 본인 육성이 담겨있는 녹취록에 의하면, “김영식의 부모님에게 조선요의 전통 ‘발 물레’를 빌려간 것도 사실이고, 되돌려주기로 약속한 것도 사실이다”고 밝혔다.

 

문산은 “숙부 B씨가 분명 ‘발 물레’를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지만, 2019년 7월인 현재까지 숙부 B씨는 무형문화재가 되어서 ‘발 물레’를 되돌려주지 못 한다고 억지 주장을 한다.”고 말했다

 

또한,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B씨가 조선요의 전통 ‘발 물레’가 문산김영식의 선친 것이 아니라는 생떼를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켜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무형문화재라는 타이틀과 동시에 명예를 얻었으면, 예술문화계에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분이 구체적인 증거와 증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 물레를 되돌려주지 않고, 원래 김영식의 선친 것이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요 망댕이 박물관에는 원작 물레는 B씨가 빌려간 채 되돌려 주지 않고 있고, 이미테이션 물레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이미테이션 물레는 1985년 당시 B씨가 전통 ‘발 물레’를 빌려간 후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김영식의 고종 사촌형이 철공소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이미테이션 ‘발 물레’를 제작하여 망댕이 사기요 작업장에 두었다.

 

문산은 “이미테이션 물레가 원작인 조선요의 전통 ‘발 물레’를 대신해 자리 잡고 있으니 매우 안타깝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며 “조선요의 선조들께서도 전통 ‘발 물레’가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실 거라 굳게 믿고 있다” 고 하소연했다.

 

한편 문산은 “한국 차인 연합회 차인지 잡지(2017.9) 기사에 ㅇㅇ요의 B씨가 소유하고 있는 조선요의 전통 ‘발 물레’가 선친 김교수(조선요 6대조)에게 물려받았다 고 기사화되어있지만, 이것은 사실과 전혀 다른 주장이다”. 며 “이 잘못된 내용을 모든 차인과 도자기애호가들에게 전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도 조선요의 전통 ‘발 물레’가 잘못된 위치인 ㅇㅇ요가 아닌 본래의 위치인 ‘조선요’에 되돌아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미일보는 7월31일 ㅇㅇ요의 B씨의 자녀C씨(대리인이라고함)에게 이메일로 ‘발물레’에 관한 입장을 묻고자 질의 하였으나, 개인 신상으로 아직 구체적 답변을 받지 못하였고, 카카오로 문산과는 서로 상반된 답변을 받은 상태다.

C씨는 “ 조선요가 주장하는 ‘발물레’는 김영수 선조사기장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충북 단양 방곡리에서 도자제작업을 시작하셨던 1대 선조 김취정 사기장님께서 제작한 것이며, 이후 가마를 이동하실때마다 사용하던 물레도 함께 이동 하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난 8월4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상에서는 “‘발물레’는 관음리 조선요에서 문산의 선친과 ㅇㅇ요의 B씨가 형제간에 도자작업을 하면서 ㅇㅇ요의 B씨가 주로 사용했기에 분가하면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물레에 대한 얘기를 들은 문경시 소재 3대도예가 노병수 선생에 의하면 “발물레는 조선요 제자리에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반론보도> 김정옥 씨 측 “‘발 물레’의 소유권은 김교수 선생으로부터 도예가업을 정통 계승한 백산 김정옥 선생에게 있다.”

 

 

본보는 지난 7월 17일자(문화․예술면) “보기만 해도 가슴 뛰는 명품, 명장도자기 문경백자 8대종가 조선요 문산 김영식 장인” 제하의 기사 및 8월 13일자(문화․예술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제하의 기사에서 「문경백자 가문의 정통계승자가 김영식 선생이고, ‘발 물레’의 소유권이 김영식에게 있으며 이를 백산 김정옥 사기장이 빌려가 반납하지 않는다」 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정옥 선생 측은 “6대 김교수 선생으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은 정통 계승자는 문산 김영식 선생이 아니라 그의 숙부인 백산 김정옥 사기장이며, 이는 김정옥 선생에 대한 연구논문(정명호 교수의 1995년 논문 ‘沙器匠 名稱과 제조기술에 관한 연구’), 한창기 선생이 <샘이깊은물(1987년 11월호)>에 쓴 글, 일본인 도예가 고바야시 도오고 씨의 영상취재 자료(2012년),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국립문화재연구소, 1999) 등 다수의 자료와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김정옥 선생 측은 ‘발 물레’와 관련하여 “백산 김정옥 사기장은 17세 무렵인 1957년부터 그의 선친인 김교수 사기장에게서 도자 제작기술을 전수 받음과 동시에 그 ‘발 물레’를 이어 받아 사용해 온 것으로, 조선요가 개요하기 35년 전인 1957년부터 사용해왔으므로 백산 김정옥 사기장에게 ‘발 물레’를 보유할 정당한 권한이 있으며 이는 김교수 사기장의 생존 후손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본보는 김정옥 선생의 자녀인 C씨가 ‘발 물레’와 관련하여 김영식 선생과 상반된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C씨는 “당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경황이 없어 차후에 답변서를 제출하여 그 입장을 명확히 하기로 합의하였으나 그대로 보도가 이루어졌으며, 김정옥 선생 측의 입장이라고 보도된 내용은 정식 인터뷰를 통한 결과물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