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화)

  • 구름많음동두천 7.0℃
  • 맑음강릉 9.4℃
  • 구름조금서울 7.1℃
  • 대전 5.9℃
  • 흐림대구 9.3℃
  • 흐림울산 11.2℃
  • 흐림광주 8.4℃
  • 흐림부산 11.0℃
  • 흐림고창 8.8℃
  • 구름많음제주 11.4℃
  • 구름많음강화 7.3℃
  • 흐림보은 5.1℃
  • 흐림금산 4.6℃
  • 구름많음강진군 9.6℃
  • 구름많음경주시 10.3℃
  • 구름많음거제 12.0℃
기상청 제공

나를 깨우는 부처님 법문

[연화사 원조도안 주지스님 법문] -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85)·(86)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85)

실체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
그래서 마음의 실체도 없다.
역시 나라는 존재도 실체가 없는 “무아”다.

집이란 것도 나무와 흙, 지붕과 주춧돌이 모여 집을 이룬다.
화나고 분노하고 슬프고 기쁜 것이 마음을 만든다.
나란 존재도 부모의 인연으로 지·수·화·풍이 모여 내가 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실체의 본성을 알면, 모든 인연들이 바람으로 와서 바람으로 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햇빛과 안개의 시절 인연이 맞아야 구름이 일고, 구름이 바람을 만나면 비가 내린다.
모든 법계의 이치가 인연이 모여 비도 되고 구름도 된다는 말이다.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무아였던 내가 시절부터 인연이 도래하여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나지만 내가 없는 가정은 불행해진다.
아내가 없다면, 어머니가 없다면, 그 가정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때로는 보잘 것 없고 부족하고 모자라는 나지만

나를 인연하는 가족에게는 가장 소중한 나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하늘보다 높고 귀한 것이 자기인 것이다.
혼자인 나보다 가족이 있는 내가 더 가치있고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대승에서는 팔만 사천 번뇌가 불법이요!
탐·진·치 삼독이 불법 자체라 한다.
연꽃이 진흙을 의지해서 피어나는 이치라는 뜻이다.

고통과 땀의 노력이 소산의 실체다.
시련과 고통 희생이 가정의 행복을 가져 오는 소산의 실체다.
내가 없고, 내아닌 것도 없고, 모자라고 부족한 나도 없고, 잘나고 도도한 나도 없다.
“무아, 무인, 무중생상, 무수자상”이 없어야 비로소 참보살이라 한다.

온통 뉴스 전반이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생명 경시 풍조가 팽배하다.

문화와 자유에 사람의 지성이 따라가지 못하여 벌어지는 형상인가!

아무리 좋은 사회라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짐승처럼 살게 된다.

연지 찍고 분바르는 것이 책을 읽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식과 손자 가족의 행복을 원한다면 화장대에 매달 새로운 책이 있어야 한다. 
재물과 사치와 보석은 절대 자식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마음이 향기로운사람(86)

믿음 

믿음을 가지고 살자.
좋은 마음 중에 제일이 “신심”이다. 
참고 인욕하는 마음이 “신심”이다.
확실히 이해하는 마음이 “신심”이다.
부동심, 유혹되지 않아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신심”이다. 
확실한 믿음이 “신심”이다.
“신심”은 즐겁게 하는 마음이 없는 “정심”(바른마음)이 생긴다.
“신심”으로 꾸준히 닦는 것이 바른 불자다. 
“신심”으로 마음을 닦다 보면 해탈이 얻어진다.
“신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사량·분별·번뇌·망상을 항복받도록 정진 수행해야 한다.

“진여”와 불·법·승 삼보를 믿는 것이 “신심”이다.
모든 사람은 탐욕을 위하여 자기 몸을 받친다.
무엇이라 해도 활동의 목표가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무슨 소리를 해도 자기 이익만을 엄두에 두는 것이 인간사이다.
탐욕을 위해 몸을 버리는 우리들의 삶이다.
탐욕을 위해 끝없이 욕망하는 것, 누구라 할 것 없이 갖는 인간의 본질이다.

부처님은 탐욕이 아닌 “해탈”을 얻기 위해 사신 분이다.
생사가 없는 자기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신 분이 부처님의 삶이었다.
부처님은 탐욕을 취하는 방법이 아니고, 탐욕을 정화시키는 방편으로 사신 분이다.
사람, 우리들은 탐욕심을 죽어서도 가져가려 한다.
이생에 이루지 못한 욕망의 한을 가지고

래생에 이루려는 끝없는 윤회를 가지고 가기까지 한다.
그래서 끝없는 “고해”가 중생인 우리들 삶의 모습이다.

모든 탐욕과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열반”이라 하고, “진여”라 한다.

충족하려 하면 고뇌가 생긴다.
충족하려는 욕망의 마음을 정화하는 방법이 염불·염법·염승을 믿고 따르는 일이다.

 

탐욕심을 정화하면 “지혜심”이 나타난다.
부처님의 위대성은 탐욕심을 잠재우는 정화를 통해서

중생들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데 있다.
“승보”를 믿고 따라야 한다.
믿음의 연속성을 주는 것이 “승보”요!
“승보”로 말미암아 오늘날까지 부처님의 “법”이 이어져옴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악법도 법이요! 선법도 법이다.
잘 수행하시는 스님도 계시고 사회에 지탄받을 스님들도 있다.
“선법”을 택할 것인지, “악법”을 택할 것인지는 자기 판단에 달렸다.
믿는 사람은 즐거움이 많고, 믿지 않은 사람은 늘 “불평”속에 살게 된다.

믿음은 “불생불멸”의 길로 들어서는 “요긴한 문”이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