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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독자 기고문] TK가 제 고향입니다.

김무경 실로암요양원(장애인거주시설) 원목/상담지원팀장

‘TK’라고 하면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대구·경북을 일컫는 말입니다. 언제부턴가 자부심의 단어가 아니라 독재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저는 경상북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조상 때부터 경상북도 금릉군 어모면이 원적이며, 성이 의성 김가입니다. 의성에 6촌들이 살고 있다는 얘긴 들었지만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경기도 포천에서 살다가 할머니 손에 이끌려 정착하게 된 게 아버지의 고향인 경상북도 금릉군 개령면 동부동 272번지였습니다.

 

시력이 약해지기 시작하여 맹학교로 오기까지 10여 년 그곳에 살았는데 나이 60이 되어 돌아보니, 제겐 잊을 수 없는 고향 중의 고향입니다.

 

그 당시, 눈이 사시였던 저를 사팔이라고 놀리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곁에서 늘 놀리는 녀석들과 맞서주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대구로 전학 간 술도가집 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된 임대목집 손자입니다. 그리고 함께 교회를 다녔던 양규, 수영이, 종호 등등 여럿이 있습니다.

 

술도가집 아들은 그 당시 동네에 텔레비전이 있는 곳이 몇 집 안 됐는데 늘 나를 불러다 TV를 보여줬습니다. 그 당시 ‘여로’라는 연속극을 잘 봤습니다. 임대목집 손자는 나를 놀리는 아이들을 향하여 대신 나서서 싸워 준 친구입니다.

 

또 저를 아껴주셨던 분들을 꼽자면 당연히 개령초등학교(국민)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눈도 안 보이는 저를 맨 앞자리에 앉혀주셨던 1,2학년 담임을 하셨던 박세련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모든 선생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눈도 안 보이는 녀석이 총기가 있었다는 거지요. 독서대회에 학교대표로도 나가고 오르간(풍금)도 잘 치고, 운동장에서 뛰는 것 말고는 잘 해냈습니다. 자랑이 아니고요. 시각장애를 가진 녀석이 눈을 찡그리고 책을 읽고 글쓰는 모습이 그렇게 기특하더랍니다.

 

불행하게도 할머니가 고혈압으로 돌아가시고, 부모님(계모)과 헤어지게 되면서 그곳을 떠나 맹아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고생했습니다. 그러다 귀인(선교사)을 만나 눈을 수술하여 한쪽이지만 현재는 운전할 정도로 잘 보고 다닙니다.

 

그곳을 떠난 지 47년이 지났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네 번이나 변했으니, 아마도 희미하게 각인 된 동네가 그대로 있을까요? 제가 살던 집은 그대로 있을까요?

 

금오산을 읊은 한 구절의 시처럼 ‘산천은 의구하고 인걸은 간데없네’라는 시처럼, 집 마당에서 금오산을 바라보던 그 모습이 눈에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개령에서 바라다 보이는 금오산을 노적봉이라고 했다는데, 그 금오산은 그대로 있겠지요?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그냥 얼버무렸습니다.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서 4,5살 까지 살긴 했지만, 어머니가 집을 나가는 아픔과 내가 눈이 안 보이게 될 무렵이었으므로 그리 좋은 기억은 없고, 엄마에게 맞던 기억, 화장실에 빠져서 똥독이 올라서 다 죽어가던 기억이며, 하여튼 그리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개령은 아이들의 놀림도 심했지만, 맞서 싸워주는 친구들과 학교의 선생님들과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들의 사랑과 배려가 있었던, 정말 잊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렇게 두서없이 글을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만남’의 소중 때문입니다. SNS를 통하여 구미일보 이안성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얼굴을 대면하여 본 것은 아니지만, 글로 댓글로 전화통화를 하면서 애써 잊으려고 했던 고향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대표님은 곧 뵙게 될 것입니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마음이 설레는 곳입니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언행들은 삼가야 하겠지만, 고향은 좋은 추억이든, 안 좋은 추억이든 누구나 마음 한편에 깊게 자리한 곳이기에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 소개가 빠졌습니다. 저는 현재 목사안수를 받고 실로암시각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사회복지사 겸 원목으로 활동합니다. 부모님과 아내가 시각장애인으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시각장애인과의 인연으로 죽을 때까지 이들을 섬기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아울러 ‘구미일보’가 대구·경북의 건강한 언론으로 지금까지 달려온 것처럼 많은 소외된 이웃들의 대변자가 되어 주시고 칭찬할 것은 가차 없이 하시고, 잘못하는 것도 바로 지적하여 잘 사는 구미 더 나아가 TK 더 나아가 우리의 조국이 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해주시기를 응원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제 고향은 TK, 대구·경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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