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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대담-‘묵적(墨跡)’수집의 대가 이대선 선생

조선시대 선현들 묵적 4천여점 소장

 
▲ 묵적 수집에 일평생을 받쳐 온 백록문예박물관(白鹿文藝博物館) 설립준비위원회 이대선(李大善) 회장 
남효온-조광조-이황-류성룡, 기대승 등 대학자 작품 망라
항일 독립운동가 작품 1천여점도 포함, 연구학술적 가치 높아

‘좋은 작품 있다면 한달음에 달려가 모아 온 30여년 땀의 자산’
‘남은 소망있다면 뜻있는 지자체 등 만나 묵적박물관 세우는 일’

선현들의 자취가 묻어있는 한 첩의 묵적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단순한 과거로의 시, 공간적 여행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세월의 더께가 켜켜히 쌓인 묵적. 그 깨알같은 글들을 통해 우리는 옛 선조들과 소통하고 교우하며 그 시대의 소중한 정신문화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정신 문화의 소산인 옛 것들을 잘 가꾸고 보존하는 일은 우리의 역사적 사명이자 책무일지도 모를 일이다.

본지는 무자년 새해를 맞아 묵적 수집에 일평생을 받쳐 온 백록문예박물관(白鹿文藝博物館) 설립준비위원회 이대선(李大善) 회장을 직접 만나 묵적 수집의 동기와 배경, 그리고 세세한 소장품 현황 및 향후 보존 대책 등을 직접 들어보았다.

▲묵적의 개념과 의미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묵적(墨跡)이라 함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편지나 현인들의 가집(家集) 일부를 족자(簇子)나 필첩(筆帖)으로 쓰려고 적당한 크기로 오려낸 쪽지를 말합니다.

단순한 뜻 풀이로 보자면, 한자(漢字) 그대로 ‘묵의 자취’라는 뜻이지만, 일반적으로 문서(文書)하면 떠올리게 되는 서예(書藝)와 차별하고 고문서(古文書)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개념으로 묵적이란 용어를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 묵적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된 때와 동기는
노산 이은상 선생을 친구 소개로 서울에서 만나게 됐는데, 그 분이 하는 말씀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고려청자나 이조백자 금불상 수집에 대한 관심은 높은 데, 묵적에 대한 그것은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짙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니 당신이 성격상 맞을 것 같으니, 글씨를 전문으로 연구 수집해 봐라” 하시더군요. 그 것이 계기가 되어 묵적을 접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조선조의 퇴계, 율곡, 서애, 고봉, 월천, 갈암 선생 같은 선현들을 만나 대화하면서부터 묵적이 주는 매력에 점차 빠져 들어 이렇게 30여년간 이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 퇴계일지 
▲ 현재 수집한 묵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현재 제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조선조 시작무렵인 1400년경부터 1900년대까지의 작품 4천여점입니다.

물론 모두 전문가의 감정을 다 거친 작품이구요. 이들 작품 중에는 생육신 남효은,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 고봉 기대승 등 기라성같은 분들의 작품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또 소장품 중에는 우리 항일 운동사에 큰 업적을 남기신 운동가들의 작품 1천여점도 포함되어있습니다.

문중 소장 문서로는 대구 옻골 경주 최씨 백불암 최흥원 선생의 간찰 5백여점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생육신인 남효온,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그리고 그 제자 기대승 선생의 작품은 영남 사림의 맥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 작품들이란 점에서 무척이나 귀하고 소중한 자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허위, 유필영, 송병선 등 우리 항일운동사를 이끈 인물들의 작품들 역시 항일운동사를 연구하고 밝히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료들이 된다고 판단됩니다.

▲소장한 묵적들을 돈으로 환산한다는 그 가치는
우선 선조들의 혼이 담긴 묵적을 돈으로 환산하고 평가 할 수는 없습니다.
묵적이란 서예와는 달리, 그 글씨를 잘 썼느냐 못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간찰을 쓴 사람이 누구며 그 사람의 인품은 어떠했으며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의 작품이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만큼 유명한 학자나 선비, 출중한 명필 등의 간찰은 호가하는 것이 곧 값일 정도로 그 가치가 높습니다.
반면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 하더라도 역사상 별 유명하지 않은 사람의 작품이라면 그 값은 거의 없다고 봐 무방할 것입니다.

굳이 묵적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자면, ‘인위명(人爲名)하고 호위피(虎爲皮)’ 즉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 옛 명언이 묵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묵적 수집에 임해왔는지
좋은 묵적이 있다고 하면 거리와 금액에 관계없이 찾아가서 구입하곤 했습니다.
돈이 모자랄 때는 친지에게 빌려서라도 꼭 구입해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남이 안가진 좋은 작품을 한점 구입하고나면 기분이 너무 좋아 거의 1년간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내가 사두지 못하면 소중한 묵적들이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고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돈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뛰어 다닌 게 오늘에 이르게 됐습니다.

▲묵적을 수집하는동안 어려웠던 점은
묵적을 수집하는 동안 말로는 다하지 못할 어려움을 겪은 만큼 에피소드도 많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흑석사 유물 사건이라든가 예천권씨 종가집 유물이 일본으로 건너가기 직전 찾아 온 사건 등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임진왜란 때의 정탁장군 유물도난 사건 같은 경우는 정말 큰 사건이었는데, 많은 노력 끝에 되찾아온 기억도 새롭습니다.

흑석사 불상 복장 유물 사건 때는 본의와 다르게 말 못할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모 경북도의원이 15년간 보관했던 작품이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라 팔아달라고 부탁해와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가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에 불려다닌 경험은 말로는 다 하지 못할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 요즘 근황은
구입한 묵적을 정리하기도 하고, 감정 요청이 오면 갔다 오고, 어디 좋은 작품이 있다고 하면 사러가기도 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바라는 일이 있다면
애써 모아 둔 묵적들이 흩어지지 않게 잘 보존하고 우리전통 문화에 대한 이해와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묵적 박물관과 다도 박물관, 석물 박물관을 한자리에 모아 만드는 게 마지막 남은 꿈입니다.

시대가 변해 정신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이 희석됐다고는 하나, 문화란 인류의 보편적 가치입니다.

예를 들어, 퇴계 이황의 학문은 이제 국내를 벗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 더 각광받을 정도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 중인 것로 압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나라는 동상 몇 개, 그림 몇점 걸어 놓고, 문화도시입네, 전통도시 입네, 말하고 있으니,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울 노릇입니다.

국민 소득 2만불 시대에 맞는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과 가치 판단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언젠가는 저의 소망이 이뤄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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