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본주의 가치와 사회주의 계급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예언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생산 수단과 노동력이 분리되어 자본가 계급과 사회계급(노동계급)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경제체제이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생산관계는 악화되어 자본주의는 저절로 붕괴하게 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이와같은 마르크스의 논리는 자본주의의 붕괴 과정을 현실적으로 해명하는데 실패했다. 마르크스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좁은 골목에 들어 온 것 같지만 발전의 여지를 자체내에서 지니고 있다.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는 부단히 발전을 거듭해 왔다. 철도나 도로 및 발전소의 건설, 자동차나 선박, 제철공업 등 모든 새로운 생산활동은 카네기, 록펠러와 같은 기업은 끊임없이 창조적 파괴의 과정을 반복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마르크스의 예언과는 달리 자본주의, 특히 미국의 자본주의는 그동안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 왔다. 물론 이런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독점 기업이 생겨날 수 있으며 이 독점의 경향은 흔히 경제의 ‘동맥경화증’ 같은 증상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칼럼 통치자에게 德이 없으면 백성들은 고달프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한비(韓非)의 저서(韓非子)에는 거대한 집단 조직의 최고 관리자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태도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점이 기록돼 있다. 한비는 인간은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동물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기는 애정도 아니고 배려심도 아니며 오로지 이익뿐이다.”라는 냉철하고 일관된 사상을 담고 있다. 한비는 이렇게 말했다. “뱀장어는 뱀과 비슷하고 누에는 애벌래와 비슷하다. 뱀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고 애벌레를 보면 누구나 징그러워한다. 그러나 어부는 맨손으로 뱀장어를 잡고 여자는 맨손으로 누에를 잡는다.”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면 누구든 용감해진다는 말이다. 또 이렇게 말했다.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길 바라고, 관을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이 빨리 죽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전자가 좋은 사람이고 후자가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가난한 사람에게 수레를 팔 수 없는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에게 관을 팔 수 없을 뿐이다. 사람을 증오해서 죽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만 관을 팔 수 있고, 그 만큼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칼럼 올바른 생각이 성공으로 이끌어 준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동일한 조건의 두 여자가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보고 있다고 하자. 한 여자는 “우리 엄마 날 키우느라 고생했으니 이젠 내가 엄마를 돌봐야지.“ 하는데 다른 여자는 ”아이구 지긋지긋해 이렇게 오래 살아 있으니 내가 못살아“ 한다. 이렇게 서로 말이 다른 것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왜 생각이 다를까? 이것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어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생각이 굳으면 성격이 되고 성격이 굳으면 습관(행동)이 되고 습관이 굳으면 사물을 분별하는 가치관이 되고 이 가치관은 삶에 나타난다. 어느 스님과 석공의 이런 대화가 있다. 스님이 길을 가다가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돌을 쪼고 있는 석공을 보자 “지금 무얼 만들고 있습니까?” 하고 묻자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며 기쁘게 대답하는 한다. 스님은 다시 한참동안 걸어 가다가 다른 석공을 만나 같은 질문을 하자 “보면 모릅니까? 딱딱한 돌을 쪼느라 손도 아프고 지겨운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이처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다르다. 왜 다른가? 삶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칼럼 세상적 근심, 거룩한 근심, 돈 없는 걱정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인간은 살아가면서 가끔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다. 죄책감은 자신이 하나님이나 인간의 도덕적 기준을 어겼음을 알 때 나타나는 정서적 반응을 말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정서적 반응을 「죄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그렇게 불러서는 안된다. 대신에 성경이 그것에 대해 사용하는 용어는 「근심(sorrow)」이다. 고린더 후서 7장 9-11절을 보면 이런 근심을 두 가지 형태로 논의하고 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 내었느니라」 사도 바
칼럼 탈무드, 세속의 권위를 억제하는 유대인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세속의 권위를 억제하려는 노력을 해 왔다. 고대 아시리아나 그리스 등의 국가 왕권은 매우 강력했지만 유대 사회의 왕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만 했다. 이것은 유대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예외가 아니었다. 「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있다. 성서에 따르면 모세는 귀족 가문의 한 사람으로 이집트의 궁전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당시에는 귀족과 노예 신분이 자연스런 일이었다. 일부는 자유인으로 태어나고, 또 다른 일부는 태어날 때부터 노예인 시대였다. 노예와 자유인의 차이는 보잘 것 없는 쇠붙이와 존귀한 금의 차이처럼 여겨졌다. 쇠를 금으로 바꿀 수 없듯이 노예가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의 지배 계급이나 현인들 조차 이와 같은 일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일신의 쾌락만 위해서 살지 않았다. 그는 역경의 환경에 놓여 있는 노예의 처지를 매우 가슴 아파했다. 혹사 당하는 노예를 위로하고 어루만지며 모세가 말했다. “나는 당신들 때문에 괴롭다. 당신들을 위해서라면 죽음이라도 기꺼이 감수하겠다.“ 모세는 노예
칼럼 지식을 쌓아 인생을 큰 눈으로 관조하라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어느날 공자(孔子)가 마차를 타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지방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한 꼬마가 흙으로 만든 성안에 오두카니 앉아 있었다. “네 이놈! 마차가 지나갈 수 있게 길을 비켜야지, 그렇게 앉아 있으면 어떡하느냐?” 하고 호통을 치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듣기에 공자께서는 하늘과 땅의 도리에 능통하고 사람 사는 이치에 밝다고 하던데, 지금 제가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고로 마차가 성(城)을 비켜가는 것이지 어찌 성(城)이 마차를 비켜 준단 말입니까?” 맹랑한 아이의 말에 공자는 깜짝 놀라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인고?” “항탁(項橐)이라고 하옵니다.” “네 재주가 몹시 뛰어나구나. 내가 문제를 낼테니 한반 맞혀 보아라. 산은 산인데 돌이 없는 산은 무엇인고? 물은 물인데 고기가 없는 물은? 문은 문인데 빗장이 없는 문은? 수레는 수레인데 바뀌가 없는 수레는? 소는 소인데 송아지를 낳지 못하는 소는? 말은 말인데 망아지를 낳지 못하는 말은? 칼은 칼인데 칼집이 없는 칼은? 불은 불인데 연기가 없는 불은 무엇이냐? 남자는 남자인데 부인
칼럼 군주가 충신을 멀리하면 망한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굴원은 초나라 왕족으로 초나라 희왕 때에 좌도(보좌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학문이 높고 식견이 뛰어나 정치가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쌓았다. 궁중에서는 왕의 상담역으로서 나랏일을 도모하고 외교면에서도 탁월한 식견을 가져 왕의 신임이 매우 두터웠다. 그런데 조정의 중신들 중에는 굴원을 시기하고 모함하려는 간신들이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인 상관 대부는 굴원을 죽일려고 기회를 노렸다. 어느날 굴원은 희왕으로부터 법령의 초안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다. 초안이 거의 완성될 무렵, 상관 대부가 찾아와서 초안을 강제로 왕에게 가져가려고 하여 이를 거부하자 그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께서는 법령을 작성할 때 언제나 굴원에게 명하십니다. 그런데 그는 법령이 공포될 적마다 이것은 내가 만든 것이다. 내가 없으면 왕께서는 무엇 하나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하고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희왕은 매우 불쾌한 표정이었다. 그 뒤로부터는 왕은 굴원을 가까이 하지 않게 되자 굴원은 몹시 화가 났다. 왕은 모략 중상이나 아첨을 받아 들이고 신하들이 건의해도 옳고 그름을 간파하지 못하였다. 간신들이 나
칼럼 패전을 인정한 푸틴, 그러나 항복은 다른 문제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최근 러-우전쟁에서 러시아 푸틴은 패전을 인정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서방세계에서는 이를 기정 사실화 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푸틴의 패전설은 아직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 우크라이나·서방의 분석과 전장 지표에 근거한 ‘현실화 가능성이 큰 전망’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러시아군은 막대한 사상자와 병력 부족, 후방 타격, 내부 불만 등 패배 요인을 안고 있지만, 푸틴 정권은 여전히 승리를 주장하며 장기전을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러시아 신병 생존 시간 평균은20~35분 이라고 하니 전투 효율성 악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자료는 아니므로, 실제 손실 규모는 검증이 어렵다. 다만 외신들을 종합해 보면 공통적으로 “러시아군 손실이 매우 크다”는 방향은 여러 경로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단순 사망자뿐 아니라 부상·실종을 포함한 누적 손실이 새 병력 충원을 빠르게 흡수한다는 점이다. 즉 병력을 전선에 투입하는 족족 죽어 나온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가 제시한 올해 누적 손실 23만8650명은 같은 기간 러시아군
칼럼 세상 어디에도 영원한 즐거움은 없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사람은 누구나 일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다. 「꽃도 백일동안씩 피는 꽃도 없다」고 하는 말은 무상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인생무상, 그것은 흘러지나고 변한다는 뜻이다.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무정, 유정 등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인생무상이란 것은 보편적 의미를 갖고 있다. 삼라만상 모든 일과 만물은 어느 것이나 무상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무상」 그것은 곧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좋은 상품들이 수 없이 많지만 ‘무상(無常)‘이기 때문에 완벽한 것은 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세월이 흘러가면 부서지며, 「젊음」도 세월이 가면 「늙음」으로 변하게 된다. 아름다운 청춘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고, 재산이나 권력, 명예도 영원히 누릴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마치 영원히 갖고 누릴 수 있는 듯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돈이란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이고, 심지어 「나」 자신의 육신도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같지 않으며, 오늘의 「나」도 내일의 「나」가 아니다. 끓임없이 흘러가고 쉴새없이 형태가 변
칼럼 부끄러움 없고 깨끗하게 돈을 벌어야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부(富)에 대한 욕심으로 자신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인류의 모습을 닮은 원숭이의 탐욕을 연상케 한다. 알제리의 커바(kabyle)일족 농부는 원숭이를 잡기 위해 호리병을 나무에 아주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고 그 안에 쌀을 조금 넣어둔다. 호리병 주둥이의 크기는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 갈 정도이다. 원숭이는 밤에 나무에 와서 손을 집어 넣고는 쌀을 꽉 움켜쥔다. 쌀을 쥔 채로 손을 다시 빼려고 하면 빠지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원숭이는 쌀을 도로 놓고 손을 빼낼 지혜가 없다. 그렇게 쌀을 손에 쥔 채로 아침이 될 때까지 그대로 있다가 사람에게 붙잡히고 만다. 이 작은 이야기가 인간에게는 주는 교훈은 아주 광범위 하게 적용될 수 있다. 경제학 분야의 획기적 저서인 「자본론」을 집필한 ‘칼.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분리되어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계급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경제체제이며, 바로 그 때문에 생산력은 향상되나 생산관계가 악화돼 자본주의는 저절로 붕괴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자본주의의 붕괴 과정을 현실적으로
칼럼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은 부유하고 화려한 생활이 진정한 행복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지 보려고 일종의 실험을 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내 눈이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지 않았다. 어떠한 즐거움에 대해서도 내 마음을 금하지 않았다」(전도서 1:13; 2:10.) 엄청난 재물을 모은 솔로몬은 웅장한 집들을 짓고 아름다운 정원과 연못들을 만들고 수많은 하인을 거느렸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었다. 결국 무엇을 깨달았을까? 이런 실험을 통해 솔로몬이 어느 정도 행복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모든 것이 헛되어 아무것도 이로운 것이 없었다」라고 썼다. 심지어 사는 것조차 싫어졌다. (전도서 2:11, 17, 18) 솔로몬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누려도 결국 공허함과 허탈감만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 연구 저널」(Journal of Happiness Studies)이라는 학술지에 실린 기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면, 그 이상의 수입은 개인의 주관적 복지 증진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러 조사에 따르면, 소비가 늘어날 때 오
칼럼 인간이 사회계층으로 나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계급이 없는 사회, 즉 계층의 구분이 없는 사회는 가능할까? 미국의 제2대 대통령이 된 ‘존 애덤스’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독립 선언서에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이 자명한 진리를 옹호한다. 정신과 몸의 불평등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본성을 만드실 때 너무나 확고하게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어떤 기술이나 정책으로도 결코 그것을 완전히 평등하게 만들 수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역사를 통틀어 인류가 꿈꾼 평등주의 사회가 나타난 적은 없었다. 인간은 전혀 평등하지 않으며, 계층 간의 차별은 여전히 사회의 뚜렷한 특징이 되고 있다. 그러한 계층 간의 차별로 인해 사회 전반에 어떤 유익도 얻지 못했다. 사회 계층에 차별을 두는 제도는 사람들을 분열시켜서, 시기와 증오와 상심과 많은 유혈 사태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한때 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 존재했던 백인 우월주의 사고방식은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왔다. 그중에는 반디멘스랜드(지금의 태즈메이니아)에서 자행된 원주민 학살 행위도 포함된다. 유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