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성공단 언젠가는 재앙으로 돌아온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2014년 북한의 일방적인 근로자 철수로 개성공단을 폐쇄 하느냐 유지하느냐 하는 기로에 선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기업은 철수한 상태였다. 그런데 폐쇄를 접고 재계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당시 류길재 통일장관은 북한을 향해 대화의 장에 나와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라고 했고, 자유총연맹이 나서서 개성공단가동 중단 철회를 외치며 대규모 기자회견을 했다. 친.종북세력들은 북한에 특사를 보내자 하고, 김정은에 출구명분을 주어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굴종을 종용하고 했다. 참으로 어리숙하고 자존심 상한다. 일부 언론도 ‘대북특사 파견해야, 각계 호소 잇따라’ 등의 제목으로 개성공단 제개를 부추겼고 정치권. 노동계. 시민사회 등 각계 인사 18명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살리고 전쟁을 막기 위해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남북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당시(4.11.17;00) 개성에는 한국인 250명만 잔류하고 있었고 53,000명의 북 근로자들은 모두 공단에서 철수한 상태였다. 북한은 이렇게 해놓고 박근혜 대통령을 우롱했다. 공단폐쇄는 박근혜의 대
칼럼 한국 대통령은 거목(巨木)이라야 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구조를 견지하고 있는 미국은 두 당 모두 200년을 존속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정당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특히 당명을 빈번하게 바꾸는 야당을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든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 마치 한(漢)나라가 조조, 손권, 유비로 쪼개지듯이 문재인. 천정배. 안철수로 갈라지면서 문재인은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었다. 이름도 정당스럽지 못하다. 이처럼 들풀처럼 쉽게 생겨나고 낙엽처럼 쉽게 당명이 사라지는 우리나라 정당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나는 관상에 일가견이 있는데 현역 정치인들 중에 국가를 이끌어 갈만한 관상을 가진 대물(大物)이 없다. 그러다 보니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영입설이 솔솔 나오고 있다. 이승만 박사나 조병옥 박사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거기에 근접할 만한 인물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혹여 인물이 있어서 물어보면 혼탁한 정치판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시정이 이렇다 보니 다들 그렇고 그런 사람이 기(氣)를 세우고 대통령 후보에 나설려고 하는 모양새다. 서울경제신문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자
칼럼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수없이 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있었지만, 같은 시기에 남극 대륙에서는 생명을 구조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었다. 영국계 아일랜드인인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과 그의 대원들은 자신들이 타고 있던 인듀어런스호가 총빙(바다에 떠다니는 얼음이 모여서 언덕처럼 얼어붙은 것)에 부딪쳐 침몰하자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섀클턴은 간신히 대원들을 이끌고 그나마 안전한 피난처인 남대서양의 엘리펀트 섬에 도착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섀클턴은 사우스조지아 섬에 있는 포경 기지에 가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그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섬은 110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으며, 그가 가진 배라고는 인듀어런스호에서 건져 낸 7미터 길이의 구명정이 전부였다. 그들은 생존할 가망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섀클턴과 몇 명의 대원들은 17일간의 사투 끝에 1916년 5월 10일 사우스조지아 섬에 다다랐다. 그러나 험한 바다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섬의 반대편에 배를 대야 했다. 그들은 지도도 없이 눈 덮인 산길
권우상 칼럼 정규전보다 무서운 용간(用間) 권우상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용간(用間)이란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첩자를 부리는 것인데 현대에 와서는 월남의 패망을 들 수 있고 고대에서는 백제 개로왕 패전을 들 수 있다. 용간에는 항간(巷間), 내간(內間), 반간(反間), 사간(詐間), 생간(生間) 등 다섯가지 방도가 있는데 항간은 그 지역의 사람을 꾀어 이용하는 것이며, 내간은 적국의 관리를 꾀어 이용하는 것이며. 반간은 적의 간첩을 꾀어 역이용 하는 것이며, 사간은 거짓 정보를 아군의 첩자에게 흘려 적이 믿도록 하는 것이며, 생간은 적진에 들어가 일을 꾸며 놓고 되돌아 와서 보고 하는 것이다.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에 보낼 사람을 찾았는데 그때 선뜻 나선 사람은 승려 도림이었다. 도림은 장수왕에게 말했다. “소승이 원래 도는 알지 못하지만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옵니다. 원하옵건데 대왕께서 소인을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마시고 일을 시켜 주시면 신명을 다 바치겠사옵고 절대로 왕명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장수왕은 도림(道林)을 대해 보니 적합한 인물임을 알고 도림을 첩자로 백제에 보냈다. 도림은 죄를 지어 도망해 온 척하고 백제에 잠입하여 개로
칼럼 대륙 백제, 그 실존을 말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삼국사기」에 대륙 백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렇다 보니 역사교과서에도 대륙 백제가 빠져 있다. 중국 사서에서 백제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은 남북조시대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송서(宋書)」이다. 「송서」는 남조 제나라 무제 연간인 488년에 ‘심약’이라는 사람이 무제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책인데 권97 열전 제57 이만(夷蠻)편에서 백제에 대한 기록은 이렇다. 「백제국은 본디 고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1천여 리에 있었으며 그 뒤에 고려는 요동을 공략하여 갖게 되었고 백제는 요서를 공략하여 다스리던 지역을 일컬어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진평군이라는 지명까지 기록돼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가 대륙의 요서지역을 다스린 것이 분명하다. 당나라 태종 연간이 636년에 편찬한 「양서(梁書)」는 남조의 양나라 역사를 기록한 것인데 이렇게 돼 있다. 「백제는 본래 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었으나 진(晋)나라 때 구려가 이미 요동을 공략하여 영토로 하자 백제 역시 요서군과 진평군의 땅에 자리 잡고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양서」는 백제가 요서지역을 차지한 때를 진(晋)나라 때라고 밝
칼럼 삼재 무용론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필자는 삼재(三災) 무용론(無用論)을 주장한다. 실제로 간명(看命)할 때도 삼재는 전연 보지 않는다. 아마 제대로 명리학을 공부한 분이라면 누구나 삼재 무용론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오늘날에도 삼재를 주장하는 분이 있어 이에 대해 확실하게 해명하고자 한다. 삼재(三災)는 申子辰(신자진 : 원숭이띠. 쥐띠. 용띠) 년(年)에 태어난 사람은 ◆ 寅卯辰(인묘진 범띠. 토끼띠. 용띠)의 3년간이 삼재에 해당되며, 寅午戌(인오술 : 범띠. 말띠. 개띠) 년에 태어난 사람은 ◆ 申酉戌(신유술 : 원숭이띠. 닭띠. 개띠)의 3년간이 삼재에 해당되며, 巳酉丑(사유축 : 뱀띠. 닭띠. 소띠) 년에 태어난 사람은 ◆ 亥子丑(해자축 : 돼지띠. 쥐띠, 소띠)의 3년간이 삼재에 해당되며, 亥卯未(해묘미 : 돼지띠. 토끼띠. 양띠) 년에 태어난 사람은 ◆ 巳午未(사오미 : 뱀띠. 말띠. 양띠)의 3년간 삼재(三災)에 해당 된다는 것이다. 삼재년(三災年)이 되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거나 부적(符籍)을 몸에 지니기도 한다. 이런 일을 부추기면서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삼재(三災)는
칼럼 장비 처우개선으로 소방관 사기 높혀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경남 산청군 사천면 중태마을에서 벌집을 제거하다 소방관이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벌집 퇴치는 위험임무가 아니기 때문에 순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방관이 말벌에 쏘인 건 지난 9월 7일 경남 산청군의 한 과수원에서 동료와 함께 벌집 제거작업을 하던 중이었는데 곧바로 응급조치를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유족들은 인사혁신처에 '순직을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벌집 제거는 위험 임무가 아니라'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순직은 재난. 재해 등 인명구조작업 중 숨졌을 경우 인정되는 것으로 말벌 제거는 순직이 아니라 단순 '공무상 사망'으로 판단한 것이다. 순직한 소방관의 부인은 인재 육성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향토장학금 1000만 원을 군청에 기탁하면서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이야기한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상(喪)중에 주위로부터 도움받은 일부를 장학금으로 내놓게 됐다”고 한다. 올해 8월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민간인 7명이 말벌에 쏘여 사망했다. 이처럼 말벌이
칼럼 계체천황, 백제 영토임을 서약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무령왕이 즉위할 때(501년), 왜지(倭地)의 나라백제(奈良百濟)는 499년, 무열천황(武烈天皇)이 폭정을 일삼고 있었다. 무열천황은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갈라 그 태를 보고 사람의 생손톱을 뽑아서 산마(山魔)를 케도록 하였으며 머리털을 뽑고 그 사람을 나무위에 올라가게 한 뒤에 나무 밑둥치를 베어 나무위의 사람이 떨어져 죽도록 하기도 했으며, 하천 수문에 사람을 집어넣고 수문을 열어 센 물살에 흘러나오는 사람을 삼지창으로 찔러 죽이는 행동을 자행하는가 하면 나무위에 사람을 올려놓고 발가벗겨 활을 쏘아 죽이고 여자를 발가벗겨 판자위에 앉히고 말을 끌고 앞으로 가서 교접을 시키고 여자의 음부를 보고 정액을 흘린자는 죽이고 흘리지 않는 자는 관노로 삼는 등 극악무도한 짓을 서슴치 않았다. 게다가 매일같이 창기(娼妓)들을 불러 놓고 음란한 짓거리를 하거나 나체춤을 추게하는 등 사람이 할 수 없는 변태적인 행위를 일삼으며 주색에 빠져 지내기까지 했다. 501년 11월, 백제 출신의 왕족 의다량(義茤良)이 살해되자 무령왕은 나라백제의 무열천황 소행이라고 판단하고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부여씨
칼럼 나라백제 계체천황 반란은 실패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백제는 무령왕이 죽자 523년 5월, 성왕이 왕위에 올랐다. 무령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순타(淳陀)는 장남이자 태자이다. 513년 8월 왜지의 나라백제(奈良百濟)에서 죽고 차남 사아(斯我)는 나라백제에 머무르면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는 백제가 나라백제를 통치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사아(斯我)의 아들은 법사군(法師君)이다. 성왕은 지혜와 식견이 뛰어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결단성이 있었다. 가야(伽倻)가 섭라지역을 백제에 빼앗기자 가야분국들이 연합군을 구성하여 백제에 대항했으나 대패하자 가야는 백제에 등을 돌리고 신라와 손을 잡았다. 또한 왜지의 나라백제가 섭라의 영유권이 백제에 있다고 주장하자 가야는 나라백제와도 등을 돌렸다. 백제에게 섭라(涉羅)와 임나(任那 : 대마도) 4개현을 빼앗긴 가야는 신라와 더욱 돈독한 우호관계를 맺자 백제 성왕은 가야를 칠 움직임을 보였다. 백제는 고구려와 대치하는 상항에 있었기에 왜지의 나라백제(奈良百濟) 군사를 움직여 가야를 칠려고 하자 나라백제의 조정은 이 문제로 내분이 일어났는데 근강모야(近江毛野) 세력은 백제를
칼럼 일본 의봉(衣縫) 원조는 백제인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백제 동성왕의 사망으로 왕위에 오른 무녕왕은 개로왕의 아들이며 곤지(困支)의 양자이다. 462년 왜지(倭地)에 있는 나라백제(奈良百濟)로 가는 도상인 각라도(各羅島)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융(隆)이다. 태어난 후 줄곳 나라백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일본어로 시마(島) 또는 사마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를 사마왕(斯麻王)이라고도 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 외에 왜지에 또 하나의 백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나라백제이다. 나라백제는 근초고왕 때 건국되었는데 당시 근초고왕은 대륙 백제, 한반도 백제, 왜지의 나라백제 세 지역을 통치하면서 대제국 황제였다. 대륙에서 한반도는 거리가 가깝지만 왜지는 대륙에서 거리가 멀고 당시는 해상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라 왜의 나라백제를 자치적으로 통치하는 왕을 두었는데 이를 천황이라 불렀는데 총독과 같았다. 사마는 그가 태어나자 생모와 함께 대륙 백제로 돌아갔지만 정치적 상황이 매우 불안하여 나라백제에 있는 곤지(昆支)에게 다시 보내졌다. 이처럼 백제 왕실에서 왕자를 마음대로 왜지의 나라백제에 보내기도 하고 데려오
칼럼 생각이 달라져야 삶이 달라진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환경 *유전적인 요인 *태도 중에서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느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환경을 선택하면서 행복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돈이 더 많이 있어야 한다. *남부럽지 않은 결혼생활을 해야 한다. *건강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태도가 환경이나 유전적 요인보다 행복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 그럴까? 환경이나 유전적 요인은 우리가 거의 또는 전혀 조절할 수 없지만 자신의 태도는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잠언에 이러한 말이 나온다. “기뻐하는 마음은 좋은 약이지만, 꺾인 영은 힘이 빠지게 한다.”(잠언 17:22) 바꾸어 말하면 태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태도는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 또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행복하게 살 것인지 아니면 불행하게 살 것인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견해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힘든 일을 겪을 때 낙관적인 생각을 해서 현실을 외면해야
칼럼 선거구 법안 빨리 결정돼야 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는 시·도의 관할 구역안에서 인구·행정구역·교통 등의 조건을 고려하여 구·시·군을 단위로 획정하는데 이 경우 하나의 구·시·군의 일부를 분할하여 다른 국회의원 지역구에 속하게 할 수 없다. 보통의 선거구는 행정 구역상을 기준으로 정하여지게 되는데, 이렇다보니 인구가 밀집한 행정구역과 인구가 과부족한 행정구역상의 인구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 물론 투표가치의 평등은 모든 투표가 선거의 결과에 미치는 기여도 내지 영향력에 있어서 숫자적으로 완전히 동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거구간 인구수의 지나친 인구 편차를 허용한다면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본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선거구별 평균 인구 수를 기준으로 상하 50%이상이 발생하는 선거구는 평등선거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위헌으로 판단했지만 인구 편차의 허용한계가 33.3%가 바람직하나 현실상황에서 이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앞으로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에는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의 인구편차가 2 : 1을 넘지 않도록 선거구를 정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