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정치판 다시 새롭게 짜야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이조 영조때 장사꾼 배봉출은 제주 목사 장경문에게 돈 천 냥쯤 쓰면 비장 벼슬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상놈이 벼슬자리를 얻자면 뇌물을 쓰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면접시험을 보러갔다. 젊은이들은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섰다가 한 사람이 사랑방 댓돌 밑으로 나가면 장경문은 긴 장죽으로 손짓을 하며 인물을 심사하는 것이었다. 장경문은 배봉출에게 종이 쪽지를 하나 보여 주었다. 종이에는 이방 900냥, 호방 800냥, 예방 700냥, 공방 600냥, 그리고 행을 바꾸어 형방 800냥, 등등이 쓰여져 있었다. 배봉출이 훑어보니 다른 자리엔 각각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데 이미 팔렸다는 표시고 예방과 형방만이 빈 자리였다. 벼슬을 할려면 돈을 쓰라는 것이었다. 배봉출은 100냥을 더 쓰면 육방의 우두머리 이방을 차지할 수 있는데 벌써 팔려 나갔으니 할 수 없이 800냥을 주고 형방을 사서 비장이 되었다. 역사에 나오는 배비장이 바로 그 인물이다.
또한 이조 순조때 가난한 장사꾼 임상옥은 권력가인 박종옥 대감과 만나 큰 부자가 되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정경유착이다. 첫 상면을 할 때 장사꾼 임상옥이 큰 절을 하면서 엎드려 있는데 박종옥 대감이 “남대문으로 하루에 들어 오고 나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물었다. 당시 남대문에는 하루에 2000 - 6000명이 왕래했다. 박종옥 대감의 질문에 임상옥은 “단 두 명 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왜 두 명 뿐인가?” 하고 박종옥 대감이 묻자 임상옥은 “대감에게 이로운 사람과 해로운 사람 두 사람 아니겠습니까?” 하고 대답했다. 이 문답으로 장사꾼 임상옥은 박종옥 대감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인삼 독점권을 따내어 큰 돈을 벌었다.
가난한 장사꾼이 임금의 외숙이며 막강한 권력을 거머쥔 박종옥 대감을 상면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임상옥은 안먹고 안쓰고 한 푼 두 푼 모아서 박종옥 대감에게 거액의 뇌물을 준 것이었다. 패망하기전 월남은 군(軍) 수뇌부 등 정부 관료들의 부패가 심해 미군이 지원한 월남군의 전투장비가 암거래로 월맹군에 넘어가 월맹군이 미군 장비로 전쟁을 하는 꼴이 됐다. 월남의 부패가 심각한 이유는 정부, 군부대, 지식인, 언론계, 교육계 등 각계에 남파된 간첩과 교묘하게 위장된 월맹 추종파들이 관료들을 뇌물로 매수해 부정부패를 조장하는 등 사실상 정부 기능을 마비시켰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부 핵심 요직의 관료들이 뇌물을 받고 정부의 군사기밀 정보를 월맹에 넘기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부패를 그냥 볼 수 없어 미군은 월남이 월맹과 평화협정을 맺은 것을 명분으로 철수했고 월남이 패망하자 월맹의 수괴 레둑토는 월남 부패의 중심에 서 있던 정부 관료와 군 장성 등 600여만 명을 처형했다. 지금 한국의 부패상을 보면 마치 34년전 월남을 보는 것 같다. 방산 비리에 이어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부정부패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부패는 경제성장률을 갉아 먹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은행(WB) 등 국제기구는 물론 국내외 경제학계에서도 부패 척결이 지속성장의 정도라며 시급성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부터 박근혜정부까지 부정부패 척결을 부르짖지만 한국의 부패지수는 제자리 걸음이다. ‘부패 후진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는 이유다. 1995년 이후 각국의 부패인식지수(CPI)를 발표하는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부패지수는 55점으로 43위다. 가장 투명하고 깨끗한 100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은 금융위기 직후인 1999년 38점, 50위에서 2008년 56점, 40위까지 개선됐지만 이후 7년째 정체 상태다.
통영함 등 군납비리를 비롯하여 세월호의 해운비리, 포스코비리 등으로 이어지고 죽은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의 정치권 로비사건이 일파만파로 파장을 몰고 오면서 정치권의 부패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더는 이대로는 안된다. 부패는 사회를 혼란에 빠뜨려 국론을 분열시키고 정부기능을 마비시켜 국가를 패망시킨다. 이 기회에 부패된 정치인은 모두 들어내고 정치판을 다시 새롭게 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