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독일군 군인참가법 도입 필요하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나는 62년에서 65년까지 강원도 양구 최전방 부대에서 군복무를 했다. 신임병으로 처음 부대 배치를 받고 보니 화장실 청소는 나의 독과점 폼목이었고 고참병의 개인 심부름. 말하자면 군화는 광이 나도록 닦아야 하고, 밥 때가 되면 밥도 타다줘야 하고, 취침 시간이면 잠자리도 펴줘야 하는 것이 신임병의 몫이었다. 더구나 말뚝(하사 이상 직업군인)의 경우에는 겨울이면 세숫물도 데워줘야 한다. 이런 것들을 제대도 하지 않으면 괜히 터집을 잡아 수시로 구타를 한다.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원산폭격. 한강철교. 김일성고지 탈환 등은 일상화된 기합이었다. 아파도 참고 참아 보지만 화가 나서 총으로 쏴 죽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3년만 참으면 이런 생지옥을 벗어난다는 각오로 눈물을 참고 또 참으면서 군생활을 한 것이 당시 나의 신임병 시절이었다. 아마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군생활은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고참병이 되자 지난날 신임병 시절에 고참병에게 구타를 당한 분노가 나 자신도 모르게 신임병에게 분풀이로 되돌려주고 싶은 것은 어찌 나만의 생각이겠는가.
고참병의 구타도 고통이지만 배가 고픈 것도 고통이었다. 밥은 늘 적량(당시 500그람)에도 미치지 못했고 콩나물이며 두부국은 콩나물과 두부는 어느 전쟁에 나가서 죽었는지 보이지 않고 보기 힘들고 부서진 조각들 몇 개만 떠다닌다. 그런데 G-4에 근무하면서 배고픔은 면했지만 군량미 등 소모품 일부가 외부로 유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근무하는 부대는 그랬다. 특히 군량미는 소모품이라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막상 한 예하부대에 급식 검열을 나가보면 밥을 죽처럼 만들어 저울의 중량만 늘리는 수법을 쓰는 것이 당시 취사병의 태도였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부족해진 군량미를 보충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왜 부족한기? 매일 전출과 전입된 병력수와 병참지원 병력일보를 대조해 보면 군량미 수량이 맞아야 한다. 그런데 배식 현장에서 수량이 틀린다는 것은 유출됐다는 말과 같다. 군량미가 부족하다 보니 각개 병사에게 돌아갈 량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엔 연대장급 이상 지휘관에게는 ‘따까리’라고 하여 사병이 지휘관 숙소와 부대를 왕래하며 지휘관 개인의 사적인 심부름을 하는 당번병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다면 없애야 한다.
반세기의 세월이 지난 지금 28사단에서의 엽기적인 신임병 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을 보면서 내가 전방에서 군생활을 하던 50년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침식문화는 많이 개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엣날 엽전 군대의 병영문화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어딘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다고 골백번도 더 약속을 하지만 한 달이 멀다하고 연이어 터지는 모습에 더 이상 국민은 정부를 믿을 수가 없게 됐다.
이제는 언어가 아니라 행동으로 병영문화 개선을 해야 한다. 병영생활을 군에서 감독한다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이다. 따라서 민간인으로 하여금 병영 감독기관을 구성하여 군량미를 비롯하여 군수품이 정확에게 각개 병사에게 정확하게 지급되고 있는지 감독해야 한다. 또한 독일군의 군인참가법과 같이 각 부대 단위에서 각 계급을 대표하는 대표 위원을 선출하고 선출된 대표 위원이 지휘권을 제외한 군생활 전반에 대하여 의견을 제출하거나 애로와 고충을 직접 청취하고 장병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시흉만 하는 솜방망이 처벌을 없애기 위해서는 군형법 형량을 대폭 높히고 사단급과 군단급 지휘관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더 이상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