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새누리당이 서울 충청에서 참패한 까닭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360年 대 연(燕)나라는 몰락하기 시작했고, 저족의 부씨 일족이 세운 진(秦)나라가 북방으로 세력을 확대해 오고 있었는데 모용 선비의 급격한 몰락은 하북성, 산서성 등 북쪽으로 진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던 대륙백제 근초고왕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기회는 중국대륙에서 남진을 노리는 고구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대륙백제와 고구려의 군사적 충돌은 당연한 일이었다.
백제 근초고왕은 병력을 중강하면서 이미 고구려와의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던 터이라 대륙백제에 주둔한 병력의 수가 기마병은 3만5천, 보병은 1만이나 되었다. 근초고왕은 용맹한 진백(眞伯), 막고해(莫古解), 해두진(解豆辰) 등 걸출한 대장수를 선봉에 세우고, 진백을 총사령관으로 막고해는 상군 지휘관, 해두진은 하군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총 3만5천의 병력을 1만5천씩 상군(上軍), 하군(下軍)으로 편성하여 고구려군과 맞서 싸우기로 하였다. 총사령관 진백 장군은 진씨 왕후의 친척으로 거구(巨軀)의 지혜롭고 용맹한 장수였다. 모든 전투준비가 완료되고 이제 남은 것은 고구려가 먼저 공격하느냐 아니면 대륙백제가 먼저 공격하느냐는 것이었는데 363년 9월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보병과 기마병 2만을 직접거느리고 치양성을 선제 공격했다.
고구려군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대륙백제군의 총사령관 진백 장군은 고구려군의 붉은 깃발부대를 총공격했다. 대륙백제군이 쏘는 화살은 비오듯이 고구려 군영에 떨어졌고, 두 나라 기마병들이 휘두르는 창검이 햇볕에 섬광처럼 번쩍거리면서 죽이고 죽는 혈전이 벌어지면서 고구려군의 머리는 추풍낙엽처럼 땅에 떨어졌다.
고구려군의 붉은 깃발부대는 대륙백제군에게 집중적인 공격을 당하자 순식간에 무너졌다. 대륙백제군이 고구려의 붉은 깃발 부대를 집중 공격한 것은 고구려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결국 대륙백제군은 5천여 명의 적병의 머리를 베는 대승을 낚아 올렸다. 승기를 잡은 대륙백제군은 달아나는 고구려군을 후미를 치면서 평양성 부근에 이르렀다.
이 전쟁에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대륙백제군이 쏜 화살에 가슴을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 붉은 깃발 정예군도 무너지고 붉은 깃발 군대 외에는 숫자를 많이 보이기 위해 위장한 가짜 군대라 싸울 수 없는 데다가 왕까지 치명상을 입자 고구려군은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자 태자 구부(九夫 : 소수림왕)의 지휘 아래 고구려군은 철군을 하였고, 환도(還都)한 고국원왕은 화살의 상처가 심해 숨을 거두었다.
고구려에서는 군대의 수를 많이 보이도록 가짜를 군대를 세우고 정예군만 붉은 깃발을 들었는데 이런 첩보를 입수한 대륙백제의 진백 사령관은 붉은 깃발을 든 고구려군을 집중 공격하여 대승을 낡아 올린 것이었다.
지난 6. 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서울과 충청도에서 참패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자와 대적할 만한 인물을 출전시키지 않고 누가 봐도 패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을 내세워 참패한 것이다. 선거에 있어서 전략공천이 때로는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정몽준은 전략도 없고 재벌이란 점이다. 재벌이 권력을 거머진다는 것은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특히 정몽준은 지난 대선에서 패한 경험이 있다. 옛부터 전쟁에 나가 한번 패한 장군은 두 번 다시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 이런 기본도 모르는 새누리당이 가소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