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9 (월)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패망전 월남과 빼닮은 부패한 모습

 

칼럼

 

                           패망전 월남과 빼닮은 부패한 모습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건국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아온 필자는 한국이 패망한 월남을 닮아간다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당시 자유월남은 같은 민족인 공산주의 월맹과 대화하고 협상해서 평화적인 통일을 하자는 여론이 번져갔다. 이른바 반전평화(反戰平和) 여론을 이끌고 간 대표적 집단은 종교인들이었다. 결국 평화란 슬로건 속에서 월남은 73년 공산월맹과 평화협정을 맺었고 주월미군이 철수했다.

 

인간은 누구나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라는 개념이 불교는 자비(慈悲), 기독교는 박애(博愛)로 불리는 것을 볼 때 종교인들이 평화를 말하는 것은 더욱 당연하다. 70년대 월남에서도 틱찌광(Thich Tri Quang) 승려, 짠후탄(Tran Huu Thanh) 신부가 자유월남의 구국평화회복반부패운동 조직을 이끄는 등 수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앞장서 평화메시지를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민족· 평화· 화해· 협력· 교류를 강조했고 국방과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혹은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다.

 

당시 반공을 외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우익인사들은 얼마 안 가서 타살체로 발견됐는데 73년까지 연평균 무려 840여 명이나 암살당할 정도였다고 한다. 마침내 월맹공산군이 남침총공세를 감행했을 때 반전평화 무드에 젖어 전의를 상실한 남월군은 신무기마저도 모두 내버린 채 패주를 거듭했고 미국도 월남이라는 밑빠진 독에 더 이상 물을 붓지 않고 손을 떼고 물러났다. 월남은 당시 세계 4위의 군사대국이었지만 주적(主敵) 개념이 없어진 상태에서 그 누구도 월맹공산군이 남침 총공세를 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고 그것이 결국 국방을 소홀히 하도록 하면서 부패와 연결돼 월남을 공산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67년 월남에서 대통령선거를 할 때 11명의 대통령 후보가 난립했는데 그중 변호사 출신 쭝 딘쥬(Truong Dinh Azu)가 대표적이다. 그는 “우리 민족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하고 외세마저 끌어들여 시체는 쌓여 산을 이루고 피는 흘러 내를 이루고 있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는 북폭을 즉각 중지시키고 월북과 대화를 통해서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연설하여 유권자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비록 대선에서는 실패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했는데 결국 그가 거물급 비밀공산 프락치였다는 것이 월남 패망 후인 78년 미국 FBI가 그를 공산간첩협의로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 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을 때 밝혀졌다.

 

패망전의 월남 상황을 우리는 꼭 명심해야 한다. 정부, 군부대, 지식인, 언론계, 교육, 대학가 등 각계각층에 간첩과 교묘하게 위장된 월맹추종파들이 관료들과 결탁 해 부정부패를 조장하는 등 사실상 정부 기능을 마비시켰다. 특히 공직자의 부패는 매우 심각하여 미군의 군수물자가 월맹군으로 넘어가 월맹군이 미군무기로 싸우는 꼴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거의 매일 반정부 반체제 시위로 여론을 분열시키고 혼란을 조장하였으며 73년 월남국민들은 월맹의 위장 평화협정에 속았고 정부와 국민들은 유사시 미국이 도와줄 거라는 안일함에 빠진 상태에서 매일 데모와 쿠데타로 날을 보냈다.

 

당시 월남에서 활동하는 공산월맹 간첩들이 정부를 불신하는 시민, 종교단체, 언론 등에 침투하여 반정부 시위를 선동했다. 더구나 정부 핵심요직에서 공산프락치들이 침투되어 있어 월남정부의 모든 정보가 월맹으로 흘러 들어갔다. 심지어 월남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티우의 비서실장도 간첩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월남 패망후 월맹의 수괴 레둑토는 월남정부 인사 등 600여만 명이 처형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부패의 온상이었던 관료들을 가장 먼저 색출하여 처형하였다.

 

이는 관피아로 부패의 싹을 키우는 한국 관료들이 유념해 봐야할 대목이다. 한국 상황에서 34년전 월남 패망의 교훈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와 같이 남과 북으로 분단돼 전쟁을 치르다 공산화로 통일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 이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대한민국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