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은 한명회와 처음 상면하는 자리에서 하루에 대궐을 드나드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느냐고 묻자 한명회는 두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수양대군이 어째서 두 사람이냐고 묻자 나으리에게 득이 되는 사람과 해가 되는 사람 두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 당시 대궐에는 하루에 2,000 - 3,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이 문답으로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가신으로 삼았고, 한명회는 계유정난의 주도적인 인물로 수양대군이 왕위(세조)에 오르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 후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신임을 얻어 영의정까지 올랐고 세종, 예종, 성종 3대에 걸쳐 왕 다음으로 큰 영광을 누렸다. 과거시험에 6번이나 낙방하고 수양대군의 천거로 겨우 경덕궁 궁지기에 들어간 한명회는 38살의 나이에 영의정까지 올랐으니 대단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출중한 인물이라도 좋은 운이 따르지 않으면 뜻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
남이(南怡)는 이시애난을 평정한 장수로 왕(세조)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유자광의 모함으로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남이가 이시애난을 평정하고 두만강을 바라보면서 지은 시를 문제 삼은 것이다. -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모두 없애고 / 두만강 물은 말에 먹여서 없애리라 / 남자 나이 20세가 되어 나라가 평정하지 못하면 /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를 것인가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唯稱大丈夫) - 라는 내용이었다. 이 시에서 문제가 된 것은 男兒二十未平國이었다.
男兒二十未平國을 男兒二十末得國으로 즉 미(未)를 득(得)로 고쳐놓고 남자나이 20세가 되어 나라를 얻지 못하면 누구를 대장부라고 부를 것인가로 해석한 것이다. 이 문제로 남이는 반역을 도모한 죄로 참형되었다.
유자광이 남이의 시(詩)를 미(未)자를 득(得)자로 고쳐 반역죄로 모함한 것이다. 한명회가 너무 긴 세월동안 영의정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남이를 죽이기 위해 한명회가 유자광을 사주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펴는 역사학자들도 있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운에서 발생한다. 길운일 때는 나에게 득(得)이 되는 사람을 만나 좋은 일이 발생하지만 흉운일 때는 나에게 해(害)가 되는 사람을 만나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는 경우는 옛날이나 같다.
따라서 흉운일 때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분석해야 한다. 새로운 일을 벌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사업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기에 같은 자금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어떤 사람은 성공을 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를 할까? 하는 점이다. 사업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의욕이나 출발은 같았는데 결과는 왜 차이가 나는 것일까. 실패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를 거론한다.
즉 사업 실패의 이유로 시기가 좋지 않아서, 돈이 모자라서, 업종 선택을 잘못해서 등 여러 가지가 열거된다. 하지만 그것은 변명일 뿐이다. 만일 돈을 많이 가진 사람만이 사업에 성공한다면 돈이 적은 중소기업이나 작은 가게는 다 망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사업실패의 진정한 이유는 운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사업뿐만 아니라 결혼도 운이 좋아야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지만 운이 나쁘면 불행하게 살거나 헤어지고 만다. 운은 쉬지 않고 돌면서 길운과 흉운은 60번씩 바뀐다.
우리는 늘 많은 사람들과 섞여서 살고 있다. 그런데 득(得)과 해(害)만 따진다면 나에게 득(得)이 되는 사람과 해(害)가 되는 두 사람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먹고 살 수 있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왜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많을까? 그것은 자신의 운로를 모르고 욕망만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타고날 때부터 운로가 다른데 남이 성공하니 나도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의 운로를 알고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