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간의 길흉사 언제 왔다 가는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청년이 이웃 노파에게 슬그머니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성적(性的) 충동은 여자가 남자보다 두 배로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할머니! 이 말이 사실일까요?” 그러자 노파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면서 남자가 오히려 여자보다 두배 이상은 성적 충동이 강하다고 우겼다. 청년이 일부러 노파의 감정을 돋우면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은 체 하자 노파는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그러면 실제로 실험하여 한번 증명해 보기로 하자” 노파는 청년의 유인 작전에 넘어가고 말았다. 노파의 말을 들은 청년은 작전이 성공하여 속으로 좋아하면서 못이기는 체 그렇게 해 보자고 동의했다. 노파를 눕혀 옷을 벗겨 놓고, 한참동안 몸을 만져 분위기를 돋우어 놓은 다음 제안 하기를 “할머니! 제가 최선을 다해 기분을 돋우는 동안 저는 ‘어모장군용양위부사직(禦侮將軍龍驤衛副司直)이란 말을 계속 외울테니 할머니는 ’한강변암소방울 딸랑딸랑‘이라는 말을 계속 외워서 끝까지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결정 합시다.” 하고 말하자 노파도 좋다고 대답해 약속이 성립되었다. 청년이 노파의 배위에서 운동을 전개하자 노파는
칼럼 인내 앞에선 어떤 인생도 굴복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받아야 들려야 하는 숙명적인 희생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인생의 체험은 단순하지 않으며, 늘 변화하고 바뀌면서 일생중의 하루 하루는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며, 사물을 판단하는 자신의 결정 방식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방법으로 삶이란 형태로 접근해 온다. 혹여 인생을 단 하나의 체험이라고 해석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대부분 행복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은 자기의 인생을 항상 뒤돌아보며 평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라는 것은 일련의 목적지의 연속, 바꿔 말하면 여러 가지 사건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출생∼학생∼성적∼졸업∼취업∼결혼∼등과 같은 사건은 모두 내 인생의 목적지에 가는 일련의 과정이지 목적은 아니다. 내가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한 역(驛)에서 또 다른 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나의 인생 전체는 연속되는 여행이며, 그 순간 순간은 내가 체험하기
권우상 명리학자의 얼굴의 운명 <239> 큰 입 입의 폭이 눈폭의 1.5배 보다 더 넓게 생겼다. 또한 두 눈의 검은자위 안쪽 너비보다 더 넓거나 자기 손가락 검지, 중지, 무명지, 셋을 합친 아랫부분의 너비 보다 넓은 모양이고 거기에 비례해서 입술도 두둑하게 생긴 모양새이다. 성격이 호탕하고 결단력이 있고 대담한 일처리로 많은 재물을 모으고 산다. 과욕으로 인한 고통이나 재앙이 생길 수 있다. 여성은 활동적이면서 극성스러워 실패가 많은 상이다.
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54회 다라국의 후예들 “효자의 집에서 벼슬이 났다. 그는 어버이를 섬기듯이 임금님을 섬겨서 장차 큰 충신이 될 것이다.” “자고로 효자가 충신된다 했으니 더 이를 말이오. 더구나 최송빈은 하늘이 내신 효자니까 하늘이 감탄하실 나라의 큰 충신이 될 거야.” 이런 말들이 마을에 퍼지면서 일시에 이름이 높아지자 그의 효행도 더욱 빛을 내게 되었다. 거연무왕은 내심 최송빈을 큰 재목으로 키울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왕의 뜻은 곧 허무러지고 말았다. 왕은 병이 들어 사망했다. 거연무왕(巨淵武王)이 사망하자 윤화의 소생인 거우위(巨優位)가 20살의 젊음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이 분이 다라국의 제3대 왕이다. 거우위(巨優位)는 왕위에 오른 이듬해 결혼하였다. 원래 윤화(允花)는 부왕인 거타지왕의 후실이었으나 노년에 얻은 터이라 자식이 없던 차에 부왕이 죽자 거연무왕(巨淵武王)는 젊고 아름다운 윤화(允花)를 자신의 후실로 삼았던 것이다. 이때 거연무의 정비(正妃) 매씨(梅氏)는 윤화가 자식을 낳을 때까지 아들을 낳지 못했는데 윤화가 먼저 자식을 낳았다. 그러나 딸(공주)이라 사실상 왕통을 이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비 매씨
권우상 명리학자의 얼굴의 운명 <238> 끝이 갈라진 법령 법령이 중간에서 가지치듯 갈라져서 끝이 두 가닥씩 된 모양새이다. 중도에 직업을 바꾸거나 동시에 두 가지 직업을 갖게 된다. 만일 갈라진 지선이 보조전 역할을 한 모양새라면 그 부분만큼 나이에서 사업이 발전한다.
칼럼 거대한 빙하처럼 움직여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침착성(composure)은 처세술(savoir vivre)의 기본이며, 이는 어느 재능보다도 매우 중요하다. 어떠한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도 침착성과 냉철함을 잃지 않는 사람은 재능의 크고 작음과는 상관없이 큰 일을 성취할 수 있다. 반면에 능력은 우수하고 뛰어나지만 사소한 일에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침착성은 다양한 사례에서도 증명된다. 침착하지 못한 사람은 낯선 사람들 앞에서 곧잘 부끄러운 모습을 한다. 말이나 행동에 혹여 실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나머니 최대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회피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중이 모인 공공장소에서 발언할 기회라도 주어지면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라 하면서 실수할까 봐 여간해서는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려한다. 이처럼 작은 난관도 제대로 돌파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큰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그저 별 볼일 없이 작은 인물로 구석진 곳에서 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또한 침착하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평소에는 대체적으로 침착하게 일을 처리하거나 능숙하게 사람을 대하면서도 돌발 사고라도 발생하면 머리가 혼란스러워 제대
칼럼 큰 인물도 주변 정세를 잘 파악해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큰 인물은 대개가 청소년 시절에 인생의 목표(target)를 세운다. 그 다음에는 꾸준히 목표를 향해 부단한 노력을 쏟아 붓는다. 나폴레옹은 학생시절 걸핏하면 사고나 치는 거칠게 행동하는 작은 악당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목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의 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 난 훌륭한 군사전략가가 될 소질이 있다. 난 이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자가 될 것이다.” 그날부터 나폴레옹은 권력을 향해 가파른 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첫걸음이 16세 때 포병학교에 들어가 장교의 길을 걸었고, 사단장과 포병사령관을 거쳐 35세가 되던 해 프랑스 황제의 권좌에 올랐다. 하지만 황제가 되기 전에는 중상과 모략으로 감옥살이도 했다. 옛날 여러 제후국이 패권을 다투던 춘추시대였다. 맹(孟)씨 가(家)와 시(施)씨 가(家)는 담장을 사이에 둔 이웃이었다. 맹씨가와 시씨가는 똑 같은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두 집안 모두 큰 아들은 학문을 닦고, 둘째 아들은 무술을 연마했다. 맹씨가의 두 아들은 장성하자 각자 청운의 꿈을 안고 집을 떠났다. 큰 아들은 진(秦)나라를 찾아가
칼럼 일본의 문물은 백제가 전파한 것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백제 동성왕의 사망으로 왕위에 오른 무녕왕은 개로왕의 아들이며 곤지(困支)의 양자이다. 462년 왜지(倭地)에 있는 나라백제(奈良百濟)로 가는 도상인 각라도(各羅島)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융(隆)이다. 태어난 후 줄곳 나라백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일본어로 시마(島) 또는 사마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를 사마왕(斯麻王)이라고도 하였다. 이는 왜지에 또 하나의 백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바로 나라백제이다. 나라백제는 근초고왕 때 건국되었는데 당시 근초고왕은 대륙 백제, 한반도 백제, 왜지의 나라백제 세 지역을 통치하면서 대제국 황제였다. 대륙에서 한반도는 거리가 가깝지만 왜지는 대륙에서 거리가 멀고 당시는 해상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라 왜의 나라백제를 자치적으로 통치하는 왕을 두었는데 이를 천황이라 불렀는데 총독과 같았다. 사마는 그가 태어나자 생모와 함께 대륙 백제로 돌아갔지만 정치적 상황이 매우 불안하여 나라백제에 있는 곤지(昆支)에게 다시 보내졌다. 이처럼 백제 왕실에서 왕자를 마음대로 왜지의 나라백제에 보내기도 하고 데려오기도 한 것은 나라백제(奈良百濟)는 백제가 지배하는
명리학자 권우상의 얼굴의 운명 <237> 입을 접해 있는 법령 뻐령이 입의 양쪽 끝을 접하면서 턱으로 뻗어내려간 모양새이다. 처음 결혼한 사람과는 오래도록 살지 못하고 이별한다. 또한 입 끝에 따로 있는 주름도 이와 같은 운을 나타낸다.
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53회 다라국의 후예들 나라에서는 호랑이를 잡은 송빈에게 상품으로 많은 쌀과 비단이 전달되었다. 송빈은 그 영광을 아버지 묘전에 보고하고 새로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런 나라의 은상(恩賞)으로 어머니의 3년간 생활도 보장되었기 때문에 송빈은 안심하고 시묘살이를 했다. 어느 날 밝은 밤에 묘막에 엎드려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아버지가 나타나서 평소에 좋아하던 시(詩) 한 수를 읊었다. 숲을 헤치고 여기 효자의 묘막을 와서 보니 기쁨과 슬픔에 넘쳐 흐르는 눈물이 한량 없구나 날마다 다듬는 봉분에 흙이 새로우니 여기 오는 달도 밝고 바람도 맑도다 살아서 봉양하고 죽어서는 시묘를 지켜주니 시종여일한 효도가 없다는 말을 누가 할소냐 “아버지!” 송빈은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 들었다. 그 순간 자기 음성에 놀라 눈을 뜨고 보니 산중에서는 밝은 달빛이 흐를 뿐이었다. ‘아! 아버지 영혼도 내가 이렇게 묘막에서 모시는 정성을 알아 주셨구나!’ 그에게는 세상 사람 모두가 자기의 효성을 몰라준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의 영혼이 편하게 쉴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무한한 행복이라고 송빈은 생각했다. 또한 세상에서 아무리 효자라
칼럼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위대한 힘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인간의 마음속에는 「위대한 힘」이 간직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마음속에 그런 힘이 있는지 조차 모르며, 거의 사용할 줄도 모른다. 만일 이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인간의 소망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미국의 H. 웹스터라는 화가는 애리조나 주 탁손 시에서 화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그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화가가 되었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시카고에서 일어난 어떤 일 때문입니다.” 그의 눈은 생기가 넘치고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 같은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있었다. 그는 다시 말했다. "내 나이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어느 거리에선가 그림을 그려 파는 사람이 눈에 띄었는데, 그의 그림은 첫눈에 반할만큼 아주 아름답고 훌륭한 그림이었습니다. 나는 깊은 감명을 받고 멈추어 서서 그림을 그리는 그를 정신없이 쳐다보았습니다. 아버지가 가자고 재촉하자 나는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그때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화가가 되겠다고 혼자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대학교수였기에 나를 교육자로 키울 생각이었지만 나는 화가가 되겠다는 고집을
칼럼 인생을 영위해 나가는 말과 행동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동일한 조건의 두 여자가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보고 있다고 하자. 한 여자는 “우리 엄마 날 키우느라 고생했으니 이젠 내가 엄마를 돌봐야지.“ 하는데 다른 여자는 ”아이구 지긋지긋해 이렇게 오래 살아 있으니 내가 못살아“ 한다. 이렇게 서로 말이 다른 것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왜 생각이 다를까? 이것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어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생각이 굳으면 성격이 되고 성격이 굳으면 습관(행동)이 되고 습관이 굳으면 사물을 분별하는 가치관이 되고 이 가치관은 삶에 나타난다. 어느 스님과 석공의 이런 대화가 있다. 스님이 길을 가다가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돌을 쪼고 있는 석공을 보자 “지금 무얼 만들고 있습니까?” 하고 묻자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며 기쁘게 대답하는 한다. 스님은 다시 한참동안 걸어 가다가 다른 석공을 만나 같은 질문을 하자 “보면 모릅니까? 딱딱한 돌을 쪼느라 손도 아프고 지겨운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이처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다르다. 왜 다른가? 삶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