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아파트 앞에서 길고 차가운 겨울을 이기고 활짝 핀 목련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바로 이 자리에서 “흔들리지만 흔들리지 않는 삶 그리고 구미”라는 글을 올렸지요. 당시 잔뜩 움츠린 목련을 보며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면 반드시 꽃이 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오늘 하얀 목련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니 반가운 마음과 함께 제 인생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작년에 구미에 사는 고등학교 후배의 친구인 대기업 임원을 만날 일이 있어, 후배에게 당일에 자리를 부탁하고 구미로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날 저녁 자리에서 “갑자기 후배를 통해 만나자고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하니 그 임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친구가 만나자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오는 것이 친구 아닙니까.”
이 말을 들으며 두 사람의 우정이 부럽기도 했고, 관계를 유지하는 힘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힘은 ‘신뢰’일 것입니다. 단순히 믿는 것을 넘어, 상대의 선택이 내 기대와 다르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 즉 ‘승복’까지 포함된 태도 말입니다.
우리는 가족, 친구, 지인과의 신뢰를 통해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신뢰는 승복이다”라는 태도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 돌아보게 됩니다.
정치인은 선거를 통해 신뢰를 위임받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꾸고 발전시키는 일을 맡게 됩니다. 저 역시 구미시민의 선택으로 정치인의 길에 섰지만, “신뢰는 승복이다”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그 대가는 길고 긴 시련과 고통이었습니다. 마치 목련이 차갑고 긴 겨울을 견디는 시간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목련꽃은 결국 피어났습니다. 겨울을 견딘 시간 끝에 꽃으로 답하며 “신뢰는 승복이다”를 스스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자연은 늘 그렇게 변함없이 약속을 지켜왔습니다.
저에게도 “신뢰는 승복이다”를 다시 보여줄 수 있는 회복의 시간이 올 수 있을까요. 목련의 긴 시간을 바라보며, 그 약속이 우리 삶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