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조업의 중심지였던 경북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통계 자료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제조업 비중, 즉 전국 제조업에서 경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12.5%를 정점으로 2010년 11.1%, 2016년 9.8%, 2022년 7.79%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주력산업의 국내외 이전, 판교·용인 등 수도권으로의 신산업 집중화가 주요 원인이다. 이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경북 제조업이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한 구조적·추세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의 산업정책을 넘어서는 새로운 성장전략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해법으로 나는 “경북산업비즈니스벨트” 조성을 제안한다. 기존의 산업벨트가 산업단지와 도로망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에 머물렀다면, 경북산업비즈니스벨트는 산업단지, 비즈니스 기능, 교통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광역 산업혁신 전략이다. 이를 통해 기존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고부가가치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경북산업비즈니스벨트는 도시별 생산 기능과 연구개발 기능을 연하고, 사업화·금융·데이터 플랫폼 등 비즈니스 기능을 융합하며, 도시 간 물류와 인적 교류를 순환 교통망으로 연결하는
해 질 녘 산사의 은은한 목탁 소리와 도심 성당과 교회의 깊은 종소리는 우리 마음의 가장 낮은 곳을 두드린다. 불교의 불공과 기독교의 기도는 겉보기에 절대자를 향한 간절한 매달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이 삶을 대하는 두 가지 숭고한 방식이 깃들어 있다. 법당과 예배당, 서로 다른 공간에서 피어나는 두 의식은 결국 하나의 본질을 향해 걷는 인간의 여정이다. 비워냄으로써 채워지는 불공의 미학 불교에서 올리는 불공은 사실 '나'를 지워가는 과정이다. 향을 피우고 정성스레 꽃을 올리는 행위는 부처라는 대상에게 복을 구걸하는 기복(祈福)이 아니다. 내 안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탐욕과 집착의 먼지를 털어내는 몸짓에 가깝다. 우리가 불상 앞에 가장 낮은 자세로 몸을 굽힐 때, 비로소 '아상(我相)'이라는 오만의 벽이 허물어진다. "이것을 이루어 주소서"라는 간구 너머에는, 내 마음의 소란함을 잠재우고 우주의 이치에 순응하겠다는 고요한 결단이 있다. 결국 불공의 끝은 '텅 빈 충만함'이다. 내가 비워진 자리에 타인을 향한 자비가 고이고, 세상의 모든 인연이 소중하게 들어앉는다. 나를 낮춤으로써 역설적으로 온 세상을 품게 되는 것이다. 부름으로써 응답받는 기
초여름의 길목에 들어선 요즘, 부쩍 거리에 활기가 넘치고 시민들의 이동도 잦아졌다. 최근 구미시의 버스 승강장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세계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현대식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엉덩이를 녹여주는 온열 의자가,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이 가동된다. 따가운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차양막은 물론, 버스가 언제 오는지 전 정류장 출발 상황까지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버스정보시스템(BIS)은 시민의 발을 한층 더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버스를 타는 재미도 쏠쏠하다. 카드를 단말기에 대면 들려오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친절한 음성은 승객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게다가 버스를 이용하면 정류장까지 걷고, 버스 번호를 확인해야 하니 자가용을 몰 때보다 다리와 뇌 건강에도 이롭다. 차창 밖으로 천천히 흐르는 구미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현대식 대중교통의 이면에는 씁쓸한 그늘이 있다. 최근 만난 버스 기사들은 입을 모아 “언제 사고가 날지 몰라 늘 파리 목숨 같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하소연한다. 기사들의 직무 스트레스와 피로는 고스란히 승객의 안전 위협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함성과 화려한 현수막이 가득하지만, 정작 그 이면에는 상대를 향한 날 선 비난과 손가락질이 난무합니다. 국민은 희망을 보고 싶어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누가 더 나쁜가'를 다투는 소모적인 공방뿐입니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우리는 2천 년 전 낮은 곳에서 진리의 빛을 밝히셨던 스승 예수의 삶을 다시금 소환해 봅니다. 1. 비난의 손가락을 거두고 '사랑과 관용'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명쾌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선거판에서 여야 후보는 서로를 무너뜨려야 할 '적'으로 규정하곤 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장에서 상대 당은 경쟁자일 뿐, 함께 나라를 이끌어갈 동반자입니다. 상대의 허물을 찾아내어 손가락질하기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갈등을 부추겨 얻는 승리는 절반의 승리일 뿐이지만, 존중과 이해로 얻는 마음은 온전한 승리가 됩니다. 2. 군림하는 권력이 아닌 '섬김의 리더십'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며 진정한 리더십의 본질이 '겸손'에 있음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 후보자들이 추구하는 권력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스스로를 높이며
해마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학교 담장 너머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오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교실의 풍경은 시리고 투명한 유리 같은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머물러야 할 자리는 ‘통화 녹음 어플’과 ‘법률 대리인’의 서류 뭉치가 대신하고, 교사는 스승이라는 이름 대신 ‘민원 처리반’ 혹은 ‘감정 쓰레기통’으로 전락한 채 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1. 팽팽한 긴장 속에 박제된 교실 지금의 학교는 거대한 ‘폐쇄회로 카메라(CCTV)’와 같다. 극심한 경쟁과 불평등은 서로를 향한 불신을 낳았고, 모든 눈은 감시자가 되었다. 예민한 아이에게 보낸 눈길 한 번이 ‘아동학대’ 신고로 돌아오고, 수업 방해를 막으려는 훈육이 ‘정서적 학대’라는 이름의 고소장으로 변모한다. 한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수개월 동안 1,500건에 달하는 연락과 “콩밥을 먹이겠다”는 폭언에 시달리다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능했던 한 교육자의 삶이 무너지는 동안 학교 시스템은 침묵했고, 동료들은 ‘나만 아니면 된다’는 무기력 속에 피눈물을 삼켰다. 교사 6명 중 1명이 우울증을 앓고, 매일 아침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란다는 이
우리 몸을 서서히 망가뜨리는 설탕과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지방선거는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당장 입안을 즐겁게 하는 설탕에 중독되면 건강을 잃듯, 후보자의 화려한 언변과 선심성 공약이라는 '정치적 당분'에 매몰되면 민주주의의 기초 체력은 고갈되고 맙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가 투표용지를 대하는 자세가 설탕을 줄이는 식단 관리와 같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1. 식품 라벨을 읽듯 ‘정책 이면’을 정독하라 설탕 섭취를 줄이는 첫걸음은 가공식품의 성분 표기 명을 꼼꼼히 읽는 것입니다.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후보자의 매끄러운 이미지나 지연·학연이라는 포장지 대신, 그 안에 담긴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봐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해 주겠다."는 화려한 약속은 가공식품 속에 숨겨진 과당과 같습니다. 예산 확보 방안이 구체적인지,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차가운 머리'로 성분 분석을 마칠 때, 우리는 비로소 정치적 비만을 막고 건강한 지방 자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찍었으니 또 찍는 것이 아니라 찍어도 그대로면 선택을 달리 해야 합니다. 2. 설탕 대체재를 찾듯 ‘전략적 선택’의 가치를 믿어라 완벽한 무설탕 식단이 어렵다면 꿀이나 스테비아 같은 건강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1809~1865). 미국 제16대 대통령이자 켄터키 시골 통나무집 출신의 고난을 이겨낸 인물. 큰 키에 마른 체구, 높은 모자를 쓴 채 깊고 울리는 목소리로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을 이끈 그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존경받는 리더로 기억된다. 링컨 리더십의 정수(精髓)는 세 가지 원칙으로 요약된다. 바로 정직, 진실성, 그리고 공정함이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닌 실천적 가치였다. 그는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옳은 길을 택했고, ‘정직한 에이브(Honest Abe)’라는 별명은 그 삶의 궤적이 낳은 훈장이었다. 지위와 배경에 상관없이 타인을 존중했던 그의 공정함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연합을 보전하고 인류애를 실현하는 동력이 되었다. 2026년 지방선거를 27일 앞둔 지금, 링컨의 유산은 우리 시대 리더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교훈을 던진다. 그는 소통의 대가였다. 단 2분의 게티스버그 연설로 전쟁의 비극적 의미를 승화시켰고, 다섯 아들을 잃은 비크스비 여사에게 보낸 편지에는 진심 어린 공감과 슬픔이 녹아 있었다. 이러한 공감적 소통은 국민과의 신뢰를 쌓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또한, 반대파까지
싱가포르의 분리 독립은 축복이 아닌 생존의 벼랑 끝에서 시작된 비극적 출발이었다. 그러나 그 절망적인 결핍은 오히려 국가를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사례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시사점을 던진다. 싱가포르의 초기 지도부에게 부패 척결은 단순한 윤리적 선택이 아니었다. 자원도, 영토도, 군사력도 부족한 작은 도시국가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면 곧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부패를 관습이나 불가피한 현실로 용인하지 않고, 국가를 좀먹는 치명적인 요소로 규정했다. 공직자의 부패는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국가의 존립을 흔드는 행위로 인식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 역시 단호했다. 특히 부패 연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매우 엄격했다. 공직자가 부패에 연루되는 순간 정치적 생명은 물론 사회적 신뢰까지 완전히 상실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는 단순한 처벌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는 강력한 도덕적 기준이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싱가포르는 특정 지도자의 의지에 의존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함으로써 청렴성을 지속 가능한 국가
어느덧 봄이 우리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계절은 어느새 연초록 잎을 틔우며 신록의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계절의 변화는 단순한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자연의 질서가 자리하고 있다. 자연의 변화가 시간의 흐름에 따른 필연이라면, 사회의 변화는 인간의 선택과 의지의 산물이다. 법과 제도, 관습을 바꾸는 노력 속에서 사회는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정치가 있다.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치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 그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정치인의 능력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과 수준 높은 정책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말은 생각의 표현이며, 결국 행동으로 이어진다. 정치인의 말이 가벼워지면 신뢰는 무너진다. 정책은 더 중요하다. 정책은 세상을 바꾸는 구체적 방법이자 실행 전략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치인의 자질이다. 정치철학자 막스 베버는 자신의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의 요건으로 소명 의식, 균형감각, 책임감을 제시한 바 있다. 소명 의식은 왜 정치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자 답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이 원칙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질서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이 당연한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 핵심은 일관성과 신뢰다. 과거 우리는 헌법적 가치에 따라 최고 권력자에게까지 책임을 물으며 법치주의의 원칙을 확인해 왔다. 이는 민주주의가 성숙해 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같은 법과 헌법을 두고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과 적용이 달라지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법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기준이 아니라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다. 특히 헌법 제84조를 둘러싼 논쟁은 이 같은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해당 조항은 국가 운영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한적 규정이다. 그럼에도 이를 확대 해석하여 개인의 법적 책임을 유보하거나 사법 절차 자체를 멈추려는 시도는 법치주의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법은 결코 권력의 크기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강자에게 유연하고 약자에게 엄격한 법은 정의가 아니다. 권력자일수록 더욱 엄정한 기준이 적용될 때, 국민은 비로소 법을 신뢰하게 된다. 또한 권력 분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