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세용 구미시장(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씁쓸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장 후보의 발언 핵심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결국 국민의 힘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는 역사적 설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일부 정치세력은 전체 맥락은 제거한 채 특정 표현만 부각시키며 전혀 다른 의미로 몰아가고 있다. 특히 김장호 구미시장(국민의힘) 후보 측은 기자회견과 규탄대회까지 열어서 이번 논란을 정치적 프레임 대결 구도로 키우고 있다. 지역사회 통합보다 시민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갈등과 양극화를 확대시키는 모습은 매우 우려스럽다. 정치적 비판은 당연히 가능하다. 하지만 최소한 발언사실과 같은 맥락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상대의 말을 일부만 잘라내고 “망언”, “역사 왜곡” 같은 자극적 단어를 반복하며 시민 분노를 유도하는 방식은 건강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정치가 결국 지역사회를 둘로 갈라놓는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경제와 민생, 일자리와 미래 산업을 이야기해주길 원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과거 인물을 둘러싼 감정 대립에 기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 인물이다. 그렇기
다가오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미 정치권에서 또다시 ‘뜨내기’라는 말이 등장했다. 한 후보가 상대를 향해 던진 이 표현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구미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시민의 선택을 흔드는 위험한 인식이다. 우리는 이미 한 가지 분명한 사례를 알고 있다.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구미을)을 지낸 장석춘 국회의원이다. 그는 예천군 용궁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다녔다. 이후 LG전자에 노동자로 입사해 노조위원장을 거쳐 한국노총 위원장까지 역임했다. 그리고 구미을에서 당당히 국회의원으로 선택받았다. 만약 지금의 기준대로라면, 그는 과연 “자격 있는 후보”였는가. 출신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는 처음부터 배제되어야 할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미 시민의 선택은 달랐다. 사람의 이력과 능력, 그리고 책임을 보고 판단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분명히 짚어야 한다. 정치는 출신 경쟁이 아니라, 책임 경쟁이다. 구미는 도농복합도시이자 산업단지 도시다. 수많은 외지 인구(약60~65%)가 유입되어 지금의 구미를 만들었다. 더군다나 진미, 인동, 양포동은 80%에 달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구의 상당수가 타지역 출신이라는 현실 속에서 ‘뜨
박정희 대통령을 단순히 ‘보수의 상징’으로 규정하는 것은 편의적 해석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념보다 성과를 앞세운 실용주의자였고, 필요하다면 체제와 방법을 가리지 않은 혁명가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화학공업 육성, 수출 중심 정책은 시장에만 맡긴 결과가 아니다. 국가는 강하게 개입했고 방향을 설계했다. 여기에 새마을운동이 더해지며 한국은 가난을 벗어나 부국강병의 길로 빠르게 나아갔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 경제를 설계하고 밀어붙인 경제 전략가였다. 이 방식은 전통적 보수주의의 ‘작은 정부’와는 거리가 있다. 당시 현실에 맞춘 국가주도형 발전 전략, 즉 목표 지향적 실용주의였다. 정치적으로도 박정희 대통령은 기존 질서를 지키는 데 머물지 않았다. 스스로 질서를 뒤흔들고 재편했다. 군사 쿠데타와 헌정 질서의 변화는 ‘안정’이 아닌 ‘변화’를 택한 결과였다. 구미 시민이 박정희 대통령을 보수의 상징으로 결집하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선거 때마다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을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정 진영의 상징으로 고정되는 순간, 그의 본질은 흐려진다. 박정희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의 틀로 가둘 수 없는 인물이다. 시대를 밀어붙인 실용주의
언론은 왜 존재하는가. 권력을 감시하고, 공공의 이익을 지키며, 시민의 알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다. 이 원칙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흔들릴 수 없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다. 일본에서는 언론의 집요한 검증과 보도가 결국 총리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든 대표적 사례가 있다. 2007년 아베 신조 1차 내각 당시, 정치자금 스캔들과 각료들의 잇따른 부적절한 행위가 언론을 통해 연속적으로 폭로됐다. 특히 연금 기록 누락 문제와 정치자금 의혹은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언론은 이를 끈질기게 추적·보도했다. 그 결과 지지율은 급락했고, 결국 총리는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사임에 이르렀다. 이 과정은 단순한 정치 공방이 아니라, 언론의 감시와 국민 여론이 결합해 권력에 책임을 묻는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보여준 사례였다. 그런데 최근 구미 지역에서 모시장 후보가 “지역 언론은 필요 없다” 며 "시민 A모씨가 인스타에 올리고, 페이스북에 올리면 다 홍보된다." 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는 이야기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적 표현을 넘어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인식이기 때문이다. 지역 언론은 중앙 언론이 담아내지 못하는 삶의 현장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경북도당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이 지역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구미시, 김천시, 경산시, 울릉군 등 4개 지역의 시장·군수 후보를 단수공천으로 확정하고, 일부 도의원 선거구에서는 책임당원만(기존에는 일반시민과 일반당원을 포함한 방식)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통해 이미 경선을 마치고 후보자를 확정했기 때문이다. 공천은 정당의 고유 권한이다. 그러나 그 권한은 어디까지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전제로 할 때 정당성을 갖는다. 특정 지역을 단수공천으로 묶고, 경선 방식마저 제한적으로 운영했다면 이는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공정성’을 희생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기에 충분하다. 특히 도의원 경선에서 일반 시민이 아닌 책임당원만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후보자를 확정한 방식은 대표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지방선거는 특정 정당의 내부 행사가 아니라 지역 주민 전체의 삶과 직결된 공적 과정이다. 그럼에도 후보 선출 과정에서 일반 유권자의 의사가 배제된다면, 이는 곧 민심과 괴리된 후보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예비후보들의 반발 역시 단순한 ‘불만’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이들은 일정한 기준과 경쟁을
6월 지방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대구·경북의 공천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화려한 공약들. 그러나 이제 유권자들은 묻고 있다. “그 약속, 과연 지킬 수 있는가”라고. 정치는 말이 아니라 실행이다. 재원과 일정, 추진 방법이 담긴 실천 가능한 공약, 이른바 메니페스토가 아닌 공약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듣기 좋은 말로 채워진 빈 공약은 지역 발전이 아니라 또 다른 실망만 남길 뿐이다. 대구·경북이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실현 가능한 약속’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여전히 반복되는 네거티브 선거 역시 사라져야 할 구태다. 상대 후보의 흠집을 부각시키는 데 몰두하는 정치로는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지금 대구·경북에 필요한 것은 비방이 아니라 비전이며, 공격이 아니라 해법이다. 선거철만 되면 SNS를 가득 채우고 허리를 깊이 숙이며 유권자 앞에 서지만, 당선 이후 고개를 들고 권력을 행사하는 모습 또한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은 군림이 아니라 봉사이며, 자리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 한편, 후보자의 인성 또한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부모를 공경하는지,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지와
한때 밤이 깊어도 불빛이 꺼지지 않던 산업도시 구미. 공장의 굴뚝에서는 쉼 없이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 연기는 곧 성장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도시는 감정이 아닌 데이터로 조용한 경고음을 내고 있다. 연기는 옅어졌고, 그 자리를 불안과 침묵이 대신하고 있다. 최근 4년간 구미상공회의소 경제동향 자료를 살펴보면, 이 변화는 일시적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흐름임이 분명해진다. 구미국가산업단지의 제조업 가동률은 60%대 후반에서 70% 초반 수준에 머물며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일부 시기에는 60%대 중반까지 하락하며 ‘정상 가동’이라 보기 어려운 상태가 이어진다. 생산 역시 업종별 편차 속에 감소 구간이 반복되며 산업 기반의 체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용 지표는 더 냉정하다. 산업단지 고용은 2022년 약 8만5천 명 수준에서 2024년 약 8만1천500명 수준으로 줄었고, 전체 취업자 수도 완만한 감소세를 보인다. 특히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도시 구조를 감안하면, 이 감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도시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공단 곳곳에 붙은 ‘임대’ 현수막은 경기의 일시적 위축이 아니라, 생태계 연결이 느슨해지고
최근 매일신문에 발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66%를 기록했다. 취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며, 부정 평가와의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특정 지역이 아니라 모든 지역에서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변화는 대구·경북(TK)에서 나타난 흐름이다.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했던 이 지역에서도 긍정 평가가 절반에 가까운 수준까지 올라왔다. 단순한 수치 이상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대구·경북의 민심은 늘 분명했다. 정치적 성향도 뚜렷했고 선택도 명확했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을 보면 예전처럼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정치 지형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국민은 이제 이념보다 성과와 실용을 기준으로 정치와 정부를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지역 발전과 민생을 얼마나 해결할 수 있는가가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 구조 변화, 인구 감소, 지방 소멸 위기라는 현실 속에서 지역이 원하는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해법이다. 특히 구미를 비롯한 경북의 산업 도시들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지방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훌륭한 지도자 한 사람은 지역을 살리지만, 자질없는 지도자 한 사람은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한자가 있다. 바로 감옥을 뜻하는 ‘옥(獄)’ 자다. 예전에는 범죄자를 가두는 곳을 감옥 또는 옥이라 불렀다. 이 옥(獄) 자를 보면 두 마리의 개를 뜻하는 견(犬) 자와 말 언(言) 자가 결합된 모습이다. 마치 두 마리의 개가 서로 으르렁거리며 다투는 형상처럼 보인다. 옥(獄)의 본래 의미는 시비를 가리고 논쟁하는 곳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서로 자신이 옳다며 끝없이 다투는 모습을 공격적인 개의 모습에 비유해 만든 글자라는 해석도 있다. 결국 책임 없는 말과 행동이 쌓이면 그 끝은 스스로를 옥(獄)으로 몰아넣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선거철이 되면 그럴듯한 말과 약속(공약)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지도자는 말이 아니라 책임으로 평가받는다. 시민들은 화려한 언변보다 진정으로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한편 최근 구미지역 농협 이사 선거에서 일부 후보들이 대의원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지역사회에 회자되고 있다. 사
지난 3월 1일 열린 구미 박정희 마라톤대회는 외형적으로 성공한 행사였다. 전국에서 모인 참가자들로 도시는 활기를 띠었고, 김장호 구미시장이 강조해 온 ‘관광문화 도시 구미’ 비전도 일정 부분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축제의 평가는 인원수에서 끝나지 않는다. 현장에서 제기된 홍보부스 조기 철수, 화장실 부족 논란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행정 운영의 점검 대상이다. 마지막 시민이 떠날 때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축제를 완주하는 행정이다. 구미시는 이제 흥행 성과를 자평하기보다 운영 기준을 제도화해야 한다. 행사 종료 기준을 명확히 하고, 부서별 현장 평가를 공개하며, 시민 만족도 조사 결과를 정례적으로 발표해야 한다. 흥행은 시작일 뿐, 신뢰는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지난해 11월 7일부터 3일간 열린 구미 라면축제 역시 많은 방문객을 모으며 성공 축제로 홍보됐다. 더구나 문화체육관광부 ‘2026~2027 문화관광축제 예비축제’로 선정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성과다. 이는 축제의 성장 가능성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국가 지정이 곧 구조적 완성까지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예비축제 선정은 출발선이지 면책특권이 아니다. 방문객
대구경북통합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이는 단순히 통합 노력이 중단된 문제가 아니다. 대구경북의 재도약 기회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뼈아프다. 통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수도권 일극 체제가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대구와 경북이 각자도생으로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적이지 않다. 행정통합은 규모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산업·교육·교통 인프라를 재설계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길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가로막혀 있다. 일부 정치인들의 욕심과 계산이 지역의 미래보다 앞서는 듯한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특히 통합을 위해 사력을 다해온 이철우 경북도지사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현실은 대단히 잘못되었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보완책을 논의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사퇴 요구라는 극단적 방식이 과연 지역 발전에 어떤 울림을 주는가. 용기라 이름 붙인 칼을 함부로 뽑는다고 해서 정치가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칼에 베이고 쓰러져 남는 것은 대구경북의 상처와 분열뿐이다. 특히 지역의 지도자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 공방이 아니라 성찰과 연대다. 대구와 경북의 원로·중진·청년
조류학자들은 성격이 가장 고약한 새로 바우어새 수컷을 꼽는다. 수컷 바우어새는 화려한 장식품을 만드는 유일한 조류로 알려져 있다. 나뭇가지와 잎, 열매를 모아 형형색색의 집을 짓고 과일로 색을 칠한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치밀한 노력이다. 그 모습만 보면 자연의 예술가요, 최고의 로맨티스트다. 그러나 암컷이 짝이 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수컷은 폭군으로 돌변해 암컷을 괴롭히고, 새끼 양육은 모두 암컷의 몫으로 남긴 채 또 다른 짝을 찾아 떠난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공허하다. 결국 수컷 바우어새는 늘 외롭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선거 때는 달콤한 말과 화려한 공약으로 시민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막상 권한을 쥔 뒤 책임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리더십이 아니다. 약속은 사라지고, 책임은 희미해지며, 남는 것은 시민의 피로와 불신뿐이다. 방황과 무책임의 종착역에는 언제나 ‘허무’와 ‘후회’의 녹슨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도시 역시 그렇다. 정치적 리더십이 부재하면 행정은 방향을 잃고, 배는 산으로 간다. 겉으로는 사업이 많아 보여도 중심 철학이 없다면 그것은 표류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묻는다. 민선9기 구미시장 후보에게 바란다. 구미시는 산업도시의 자존심을